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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Oct 24. 2023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

보편적이고 개별적인 것의 양립(兩立)

나이가 들어서 많이 적응했다고 생각하는데도 가끔은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있다. 바로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너무도 다르다는 것.


지난주 나는 상식선에서 당연히 지켜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요청이 거절당하는 경험을 했고, 그 사람의 결정이 어떤 면에서는 윤리적이지 않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상대가 자존심이 상했던지 기분이 상해서 돌아올 여파는 고려하지 않고 진행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가 피해를 볼 수도 있는 일이었건만 한 사람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미치자 회의감과 자괴감이 왔다.


시간이 지나자 곧 이런 자괴감과 회의감이 왜 오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세상 사람 모두가 나와 같지는 않은데 내가 느껴야 하는 감정들이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의 윤리가 그의 윤리가 아니고 나의 상식이 그녀의 상식이 아님에도. 그저 내가 생각한 바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리고 기저에는 내가 맞았고 옳았다는 오만한 생각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도 나도 결국 에고가 중요해 이렇게 번뇌에 휩싸인 중생이 된 것은 아닐까.


우리는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인 세계를 창조한다.


전 세계에 80억 명이 동시대를 살고 있고, 동일한 역사적 사건을 목도하고 있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함께 존재하지만 각자의 세계를 물들인 색깔이 다르다. 평화로운 공원에서 누군가는 아름다운 핑크빛 세계에서 설렘을 느끼고, 누군가는 근심 걱정으로 회색빛 세상을 누린다. 또 누군가는 분노에 차서 붉은빛 세상 속에서 산다. 여기에 우리가 지구라는 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 외에 공통점이란 있을까.


이런 점 때문에 우리는 아마도 타인에게서 때로 낯섦은 느끼고 각자가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 테다. '너와 나 사이, 건널 수 없는 강이 흐르고 있어. 근본적으로 우리는 하나가 아니야.' 그렇기에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영원의 약속이 그토록 로맨스 소설의 단골 소재로 등장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더 깊은 차원으로 생각해 보자면 우리 모두는 별반 다르지 않기도 하다. 같은 종(種)으로 태어나 두 발로 걷고, 뛰고, 두 손으로 서로를 만지고, 무엇인가를 만들고 비슷한 음식을 먹고 살아가며, 동일한 종류의 장기(臟器)와 생물학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감정 또한 뿌리로 들어가면 동류의 것에 우리는 울고 웃는다. 행복을 원하고 두려움과 불안을 기피하며, 존중받기를 원하고 사랑받기를 원한다. 우리의 깊은 본능은 동색(同色)이다. 깊은 차원에서 우리가 서로 연결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환경과 기질, 경험의 다양성은 모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결국 우리 모두는 보편적이면서도 상대적이고 특수하다.


이런 까닭에,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부딪힐 때에는 타인의 세계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내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외롭지 않게. 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근본적으로 같다는 것을 느끼며 사람을 사랑하되, 그들이 그들의 세계에 살 권리가 있음을 알아주는 것이다.


그리고 나 또한 근본적으로 나 자신이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평등하며 같음을 인정해 주길 바라면서도, 나의 세계가 그들과 같지 않음도 타인이 이해해 주길 바란다.


이런 생각으로 그날의 자괴감과 회의감을 내려놓았다.


'그는 그의 상식으로 살아갈 권리를 지니며, 나는 그가 만든 세계에 대해 책임도, 권한도 없다. 자신의 내면을 책임지는 것은 오롯이 자신의 몫이며 이해시키고, 설득하고 싶은 이 마음을 내려놓고 나의 삶으로 시선을 돌려야 할 때다.'


 (물론 충분한 설득과 노력을 이미 한 뒤였지만 말이다. 그저 그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머릿속에서 묻고 또 묻고 있는 나 자신에게 하는 위로의 속삭임이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 나의 연결성을 느끼면서도 타인과 나 사이의 선을 담담한 시선으로 지켜가는 것. 어쩌면 이것이 어른의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말이다.


2023년 10월, 어른의 경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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