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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Oct 23. 2023

밥 먹는 일과 운명의 상관관계

삼시 세끼에 대해 진지합니다.

요사이 나의 관심사는 밥이다. 밥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상당히 오래되었다. 처음에는 요가를 배우면서 밥이 나를 키우고, 내가 먹는 것이 내가 된다는 이야기에 무엇인가 깨어났다. 무엇을 먹느냐는 내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느냐에 일조한다는 것. 이것은 먹는 것에 대한 관점의 변화를 불러왔었다.


음식에 대한 조급한 갈구함, 그것은 무엇인가?


주말이 되면 폭식을 하고 1인 1 닭을 먹는 것을 자랑처럼 우스개 소리로 말하던 시절 처음으로 요가를 시작했다. 요가를 하고 나오면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어서 끝내고 들어가서 피자를 시켜 먹어야지. 치킨까지 같이 시켜 먹을까? 하.. 진짜 맛있겠다!' 끝나지 않은 식탐이 폭식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때에 조금 무엇인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이 조급한 갈구함은 무엇이며 이것의 끝은 무엇인가.


요가를 하고 마음이 편안해지고 내면의 갈등이 명상으로 치유되기 시작하면서 폭식의 증상이 줄었다. 예전처럼 무턱대고 먹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음식 앞에서 무의식적으로 빨리 먹거나 허겁지겁 먹는 버릇은 여전했다. 하지만 알아차리기만 하고 그대로 두었다.


작년 밖에서 사 먹는 점심이 지겨워질 무렵에 요가원 친구들과 함께 채식에 2주 간 도전했다. 지금 다니는 직장에 들어오기 전에 1달 정도를 생채식을 했던 경험이 있었고, 그때 변화가 좋았던 경험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실험이 어쩌다 보니 점심은 샐러드 도시락을 싸서 먹게 되는 시작이 되었다. 병아리콩과 렌틸콩, 오이, 파프리카, 양파 등으로 구성된 도시락은 내가 원하는 만큼 양껏 싸 오다 보니 그 양이 방대해 '코끼리 도시락'이라는 별칭을 동료들에게 얻게 되었다. 그렇게 점심은 될 수 있으면 코끼리 도시락을 먹고 저녁엔 요가를 하고 저녁 식사를 거르고 넘어가는 빈도가 잦아졌고 그렇게 하루 1끼는 어쩌다 보니 생채식을 하게 되는 날이 늘어갔다.


운명을 개척하고 싶어도 에너지가 없다면


이것은 나에게 2019년부터 5년에 걸쳐 서서히 온 변화들이다. 그 당시 나는 내가 그토록 가고 싶다고 여겼던 회사를 퇴사하고 번아웃이 온 상태였다. 마음이 지쳐서 원하는 것이 없었다. 일도 하고 싶지 않았고 그냥 쉬고만 싶었다. 마음은 그냥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외쳤고, 아무것도 안 할 것이라고 외쳤다. 그리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면 죽자고까지 생각했다. 굶어 죽어야 한다면 죽자. 삶의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작년이었던 것 같다. 이제 슬슬 무엇인가 하고 싶었다. 내 삶을 다시 세우고 싶었고 능동적으로 삶을 만들어가고 싶었다. 언제까지고 퍼질러 앉아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던 마음은 바뀌었다.


그리고 이 변화가 오기까지 모든 생활 습관이 5년 동안 점진적으로 변했다. 하루에 2-3시간을 운동하는 날이 늘었고, 먹는 것의 종류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고, 샐러드가 너무도 맛있게 느끼기 시작할 때쯤 몸에는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했다. 또 흐리멍덩한 머릿속 안개가 걷히고 명료한 의식과 주의력을 되찾았다. 알 수 없는 짜증과 분노도 줄었다. 10분도 못 뛰던 몸이 10km를 뛰기 시작했고 웬만하면 지치거나 피곤하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활동이 늘었다. 활동이 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폭이 넓어졌고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 시작하면서 삶이 풍요로워졌다. 또 남아도는 힘과 에너지로 하고 싶은 일들이 생기고 그런 일들을 시작할 수 동기와 의도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할 힘까지.


돌이켜보건대 인생의 작은 변화들이 삶의 총체적 변화를 이끄는 것은 틀림이 없다. 삶은 1+1=2가 되는 수학 공식이 아님을 알았다. 삶은 작은 변화 하나가 연쇄작용을 일으키고 그 작용이 다시 긍정적인 피드백으로 돌아온다. 오늘 걸었던 다섯 걸음은 다섯 걸음으로 끝나지 않고 연쇄 작용을 가져오고 그 결과가 원인으로 이어져 나선의 계단을 올라가듯 삶은 긍정적인 방향으로 올라간다. 나는 나의 삶을 반추할 때 이것이 틀렸다고 말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런 총체적 변화의 틈에서 나는 올해 들어 예전부터 생각해 왔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꿨고 이를 이뤘다. 기회는 우연하게 저절로 왔다. 그리고 많은 습관이 바뀌며 TV와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자연스럽게 줄어들고, 독서량은 늘어가고, 주의력이 돌아오고, 집중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변화를 겪었다.


먹는다는 것은 양질의 충만감, 자기 존중감의 발로(發露)다.


최근 지난 5년간 많은 습관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음식을 먹을 때 음식에 주의를 두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입으로 밀어 먹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이번달부터는 먹을 때에는 먹는 것에만 집중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양평 생활은 이것을 도왔다. 배달앱이 안되니 자연스럽게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했고 식재료에 관심을 가졌다.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섭취할 때 행복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야채와 과일에는 내가 그전에 알지 못했던 풍미가 가득했다. 그리고 그런 식재료를 내손으로 씻어서 만들어 먹는 기분은..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알 수 없는 충만함으로 가득 찼다.


음식은 나에게 운동보다도 더 좋은, 양질의 충만감, 자기 존중감을 가져다줬다. 그러고 나니 자연스럽게 좋은 음식을 길러 먹고 싶었고 텃밭이 주는 행복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보존 처리된 가공식품, 통조림, 화학조미료 등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는 햇빛이 길러내는 자연의 일부임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누가 그랬다. 삶은 실험실 속의 화학실험이 아니라고. 깨끗한 증류수와 끓인 물에는 생명이 자라지 못한다고 한다. 무엇인가 추출해서 인공의 형태로 가공한 것들에는 어떤 다양성을 제거한 폭력이 잠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소금의 불순물을 모두 제거하고 남은 염화나트륨은 고혈압만 불러올 뿐 다른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물은 각종 미네랄과 적당한 미생물이 섞여 있어야 살아있는 물이고 몸에 좋다는 말, 어떤 요리사가 말했던 적당한 흙이 묻어 있는 식재료들을 볼 때 식재료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사랑스러움을 느낀다는 말들이 이제야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먹는다는 것이 의식이 될 때


요사이 나는 음식을 먹는 행위가 의식을 치르는 행위처럼 즐겁고 진지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먹는다는 것이 '먹고 해치우는 일'이 되지 않을 때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나 자신에 대한 존중감, 사랑, 내 가족에 대한 사랑, 나눔이 '식사(食事)'를 다른 방식으로 대할 때에 시작된다. 먹는다는 것은 햇빛과 땅이 길러내는 자연을 먹는다는 것이고, 그것을 길러낸 사람들의 땀과 노력을 먹는다는 것이고, 나를 자라게 할 좋은 영양분을 얻는 것이다. 식사는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의무가 아닌 이렇듯 복합적이고 총체적 행위이다. 그리고 섭취하는 좋은 음식들이 나를 만들고 몸의 독소를 없애고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해 몸의 활력이 돌 때에 나의 운명도 바뀐다고 믿는다. 좋은 식사가 주는 양질의 에너지로 나는 사랑하고, 의도로써 일을 하고, 이웃을 아낄 수 있다.


그러므로 점점 더 나는 아주 기쁜 마음으로, 깨어있는 정신으로 음식을 먹고, 음식을 차릴 것이다. 오늘의 음식이 나의 의식을 맑게 하고 몸을 정화해 내일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기에.


2023년 10월, 먹는 것에 대한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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