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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Oct 17. 2023

글이 쓰고 싶은데 뭘 써야 할지 모를 때

다정하고 소소한 노력들

이래저래 공사가 다망했다. 그래서 글을 쓰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내가 기억하는 한) 1주일 이상 글을 쓰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요가를 좀 하다가 말고 글을 쓰려고 앉았다. 무엇인가 적고 싶은 욕망이 떠올라서다. 하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글의 주제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요사이 일어난 일들을 적어보자면 이렇다. 텃밭에 시금치를 심었는데 잡초처럼 생긴 싹이 났다. 싹이 나면 그대로 두면 되는 것인지 알 길이 없어 그대로 뒀다. 그래도 내 손으로 심은 첫 작물이 퍽이나 어여쁘다. 무관심 속에서도 생명을 틔우고 자라나는 새싹이 기특하다. 매일은 아니지만 생각이 나면 한 번씩 가서 본다. 가서 본다고 특별히 하는 일은 없다. 그냥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다가 들어온다. 이렇게만 해도 올 겨울 시금치를 먹을 수 있는 걸까? 알 수 없지만 작은 생명체의 생명력을 믿어본다.


그리고 오늘 라섹 수술을 한다고 멈췄던 새벽 수영을 시작했다. 2주간의 휴식이 몸에 변화를 줬는지 조금만 해도 그새 숨이 차오른다. 오늘 수영은 마음만 조급해지고 물놀이 같지 않고 힘들었다. 여유가 없는 마음으로 수영을 한 탓이다. 다시 여유를 되찾고 물에 적응하기 위해 꾸준함을 발휘해야지. 속으로 다짐을 하며 1년 회원권을 할인한다는 말에 잽싸게 결제했다. 월급 통장이 텅장이 되는 소리가 들렸지만 나를 위해 이 정도는 써야지 하며 애써 위로해 본다.


수영을 끝내고 톡 튀어나온 뱃살을 본다. 자랑스러울 만한 몸은 아니지만 나는 찬찬히 살핀다.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많이도 구박한 몸이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한평생 못생겼다고 구박당한 몸에게 탄탄한 건강을 선물하겠노라 마음속으로 속삭인다. 살을 빼고 건강해지고 싶지만 몸을 미워하면서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운동을 한지 몇 년 만에 온 변화다. 나는 몸에게 지금도 충분히 예쁘다고 말해준다.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고 온전하다고 말해준다. 몸이 사랑하는 음식을 먹고 몸이 좋아하는 움직임을 연습하며 날마다 더 커지는 에너지를 상상한다. 나의 몸은 온전하며 앞으로 더 그럴 것이다. 못생긴 것도 예쁘게 보아줘야 사랑이라 했던가. 부족하기만 한 몸을 온 마음으로 어여삐 봐준다.


새벽 수영 강습으로 일찍 도착한 회사에서 어제저녁 미리 싸둔 과일 도시락을 꺼낸다. 잘 익은 토마토와 사과를 꺼내 한 입 베어문다. 사과의 향과 토마토의 상큼한 즙을 느낀다. 보통이면 카페에서 파니니 한 조각을 먹었을 시간이지만 식습관을 개선해 보기로 했다. 도전하는 과제는 최선을 다해 가공 식품, 합성 식품을 줄이고 자연에서 난 그대로를 즐기는 것이다. 이것은 몸을 위해 내가 약속한 것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면, 자연에서 난 그대로의 음식이 가장 좋다는 어느 배우의 말이 몇 년 전부터 뇌리에 박혔기 때문이다. 좀 더 맑고 깨끗한 음식을 섭취하고 몸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만 선물해 주겠노라 약속했다. 한평생 가지고 태어난 게 당연하듯 여기며 여기저기 부려먹기만 한 몸이다. 몸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존중이며 배려라는 생각에 며칠 전부터 식습관 개선을 약속했다.


그리고 실천해 보니 알겠다. 음식은 중독적인 성향이 있다. 맛에 길들여지면 헤어 나오기가 어렵다. 실제로 양념이 많이 된 음식을 먹고 외식이 잦은 날에는 몸이 무겁고 다음날 붓는 것이 느껴지지만 그런 음식을 섭취한 후 몇 일간은 또다시 그런 자극적인 음식이 당긴다. 무의식적으로 찾아먹거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지켜지지 않는 날들도 있어서 완벽하게 실천은 하지 못한다. 그래도 내가 깨어 있는 한 몸을 돌보겠노라 다짐해 본다.


이런 의도를 많이들 살을 빼려고 하는 노력으로만 본다. 차라리 덜 먹어라부터 다양한 의견을 준다. 그럴 때마다 반박하고 싶은 마음 그냥 좀 놔두라고 하고 싶은 마음 여러 가지 마음이 들지만 스스로에게 다짐할 뿐이다. 그 누구도 내가 허용하지 않는 한 나를 강제할 수는 없다. 그러니 두려워할 것 없다. 그저 존중의 마음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누구를 설득하려고도, 누군가와 함께하려고도, 누군가 이해해 주기를 바라지 말자. 불길처럼 일어나는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한다.


쓰다 보니 주저리주저리 길어졌다. 나는 요새 이런 하루를 보냈다. 소소하지만 의미 있는 하루를. 작은 변화들이 어떤 것들을 이끌지 기대가 된다. 내가 오늘 바꾼 식습관이 얼마나 명료한 의식과 다정한 가슴을 갖게 할지 기대된다. 맑고 명료하고 따뜻한 눈빛을 하게 될 노년의 내가 오늘도 웃으며 나를 응원한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오면 된다고. 그러니 조금씩 깊어지고 넓어져 가 보자. 나의 삶은 지금도 충분하지만 앞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2023년 10월, 기쁜 변화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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