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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Oct 05. 2023

탓을 하는 마음에는 수고로움이 보이지 않는다

한 끗 차이로

“어렸을 때 있잖아. 가끔 엄마가 돈돈돈 한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엄마는 나에게 아빠가 돈을 못 벌어 온다는 이야기를 했어.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생활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였지. 그리고 어느 날은 아빠도 말했어. 주는 월급은 도대체 어디다 다 쓰는 거냐고.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흔한 대사들이지?


그런데 있잖아. 커서 생각해 보니 사실은 둘 다 너무 대단했어. 아빠는 사회생활을 잘하는 성격이 아닌데도 20년 넘게 회사를 다녔어. 실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말이야. 엄마는 한정된 월급 안에서 할아버지를 모시면서 우리를 키우고 항상 아껴 쓰며 저축을 했어. 그것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지. 실은 두 분 다 너무도 성실했고 대단하셨지. 하지만 서로 탓만 하셨던 것 같아. 탓하는 마음에는 타인의 수고로움은 보이지 않는 건가 봐.“


기억과 추억은 왜곡을 낳는다. 나의 기억은 내 방식대로 재편된 것이다. 또 나는 부모의 모든 시간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정확한 기억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어느 날 문득 떠오른 기억이 있었다. 어린 나에게 들려주던 불신과 불만의 이야기들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이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엄마는 더 모으지 못했던 것이 살림을 못한다는 비난처럼 느껴져 괜한 자존심에 아빠의 능력 탓을 하고, 아빠는 유복하게 한 가족을 책임지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괜히 엄마 탓을 한 것일 수도 있다. 아마도 각자 탓을 하며 지키고 싶었던 마음 한 구석의 여린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기회도 있었다. 탓을 하기 전에 무뚝뚝하고 딱딱한 성격에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가며 하루를 마치고 오는 수고로움이 안쓰러워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하고 그 노고를 고마워하는 기회가. 또 행여 위급한 상황에 돈이 없을까 봐 발을 동동 구르며 한 푼 두 푼 모아 자금을 마련하는 모습이 짠하고 지혜로워 칭찬을 아끼지 않을 기회도 있었다. 수고로움을 봐주는 선택 대신 자신의 노고를 생각하고 타인의 못남을 탓하는 선택을 했다.


행복과 불행은 이렇게 한 끗차이로 갈리는 것이다. 한 끗 차이의 생각과 한 끗 차이의 태도와 한 끗 차이의 선택으로. 이 작은 선택들이 모여 우리 사이에는 건너지 못할 거대한 강이 흘렀다. 사랑과 다정함은 때때로 갈 곳을 잃었고 무엇이 서운한지 무엇이 문제인지 모를 때에 와서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음을 알았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여수 바닷가에서 우리 가족은 함께 산책을 했다. 그 사진이 클라우드에 저장되어 있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 수많은 세월 이런 시간 한번 갖지도 못하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나. 알 수가 없었다. 우리의 불행에는 너무도 많은 이유가 있어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퇴사를 앞둔 친구에게 말했다.


”인생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것 같아. 모든 인생은 다 그런 것 같아. 다만 그 알 수 없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축복처럼 여길지, 두려움과 불안으로 여길지만 있는 것 같아.“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먼 아마도 이 지점부터가 아닐까. 작은 생각, 관점의 차이. 무엇을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생각을 택할 것인가. 그 한 끗의 차이가 행불행을 가르고 삶의 의미를 가른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것이 아니다. 일어난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바라볼지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선택할 수 없지만 그 일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선택할 수 있다. 때문에 행복과 불행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2023년 9월, 한 끗 차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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