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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긍정윤 Nov 08. 2023

운동과 트라우마

운동을 하며 마주하는 기억들

몸은 억눌러버린 감정과 기억도 저장하고 있는 것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내 세포 아래에는 이제는 잊고 있었던 감정과 기억들이 여전히 생생히 살아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그렇지 않다면 모두 잊었다고 생각했던 그때의 그 일들이 왜 또 떠올라 나를 그때의 그 상황으로 데려가는 것일까.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은 아닐 수 있지만, 최근에 감정과 신체 통증에 대한 긴밀한 상관관계를 설명하는 존 사노 박사에 대한 글을 읽었다. 뉴욕대학교 의과대학 재활의학과 교수이자, 러스크 재활의학연구소 소속 의사로 일하고 있는 존 사노 박사는 심신의학의 개척자라 불린다. 그는 긴장성 근육통 증후군 (Tension Myositis Syndrome, TMS)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확립하여 수술이나 약물, 물리치료의 필요성을 일체 부인하고 30년 이상 심리 교육만으로, 또는 정신요법을 가미해서 수천 명의 심각한 통증 환자를 성공적으로 치료했다고 한다. (출처: '통증혁명' 책의 작가 소개)


그리고 그의 연구에 따르면 대부분의 통증을 유발하는 원인이 물리적 신체의 기능과 구조의 악화가 아니라 억눌린 감정이라는 것이다. (물론 종양 등 심각한 신체질환의 경우는 제외한다.) 인간은 대면하기 꺼려하는 감정을 무의식에 감춰버리고 대신 감정이 아닌 신체로 자신의 주의를 돌리도록 통증을 유발한다는 것. 쉽게 말해 통증은 감정을 회피하고 억압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


이 글을 읽으니 예전에 읽었던 또 다른 책이 생각난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저)> 책에서는 아동기 우울증의 경우에는 감정적 분출보다는 신체적 반응으로 나타나기 쉽다는 구절이 있었다. 소아기 때는 감정에 대한 인지 능력 발달이 더디기 때문에 이유 없는 복통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것도 우울증의 반응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우울한 아이'의 전형적인 모습은 실제로는 환상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유명한 저자의 말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직관적으로 감정은 신체와 연결되어 있음을 안다. 사랑을 잃으면 가슴이 아프다고 표현하고, 근심 걱정이 많으면 머리를 싸맨다고 표현한다. 위가 아프고 소화가 안된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마음 복잡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한다. 이외에도 감정을 표현하는데 신체의 통증을 빗댄 표현은 얼마나 많은가.


운동을 하다 문득 떠오른 기억, 운동장에서 홀로 서 있는 기분


몸과 마음이 이처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일까. 나는 가끔 운동을 하다가 예전에 잊고 있었던, 하지만 여전히 내 안에서 생생하게 존재했음을 알게 되는 감정이나 기억과 마주하고는 한다.


요가를 하면서는 묻어버리고 넘어가 버린 사회생활을 하면서 겪었던 상처와 스트레스를 마주하기도 했고, 어렸을 적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일은 부지불식간에 문득 떠오르고는 한다.


최근 새벽 수영을 하면서도 있었는지도 몰랐던 어릴 때의 기억과 마주해야만 했다.


요사이 꾸준히 받은 수영 강습덕에 이제 접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배우기 시작한 영법이라 그런지 몸이 잘 따라가지 못했다. 4명이서 줄을 서서 한 명씩 반 바퀴를 접영으로 돌고 오는데 모두들 노련하게 마치 처음부터 알고 있던 사람들처럼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했다. 나만이 긴가민가한 얼굴로 어설프게 동작을 이어갔고 결국 맨 마지막으로 출발선에 도착했다.


미리 한 바퀴를 돈 회원들은 모두들 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모두의 시선은 아직 접영을 하고 있는 나에게로 쏠렸다. 선생님은 내 어설픈 동작을 교정해 주기 위해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초급과 중급을 오고 가며 많은 이들을 케어하는 그는 조금 숨이 찬 목소리로 흥분을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사실 그는 원래 목소리가 컸다.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았다. 하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머리로는 모든 것을 이해하는데 마음속에서 수치심, 당혹스러움, 억울함, 서러움이 올라왔고 갑자기 모든 일에 무기력해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은 나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데려갔다. 새까맣게 잊고 있던 기억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었다. 그날은 전교생이 모여서 운동회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때 학년별로 전체가 함께하는 미션(?) 같은 것이 있었는데 우리 학년은 춤이었다. 말이 춤이지 동요를 따라 움직이는 몸동작 수준이었다.


춤 중에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밝고 도는 동작이 있었는데 잘 되지 않았다. 박차가 틀리고 다리가 꼬여서 휘청 휘청했다. 그날 햇살은 뜨겁고 우리 모두가 힘든 날이었다. 갑자기 운동장 한가운데 놓인 교단 위에 서 있던 선생님이 내 쪽을 향해 소리쳤다. 아마 그녀도 감정이 예민하고 날카로운 날이었을 게다.


"거기! 너! 붉은색 옷 입은 너 말이야!"


나는 그때까지도 그녀가 소리치며 가리키는 것이 나인지 몰랐다. 선생님이 몇 열에 몇 번째 줄인 지까지 말해줬을 때에서야 나인지 알았다. 선생님은 몇 백 명이 되는 전교생을 그 자리에 앉으라고 했다. 나만 빼고. 운동장에 모든 사람은 앉았고 나만 서 있었다. 선생님은 왜 그렇게 못하냐고 소리치며 혼자만 따라 해 보라고 했다.


나는 붉어질 데로 붉어진 얼굴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동작을 이어갔고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꾹 눌러 참았다. 울음까지 터뜨려 더 부끄러울 수는 없었다. 고작 10살도 안된 나에게는 모든 것이 감당하기 어려웠다. 수치스러웠고 서러웠지만 그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조차 몰랐다.


그리고 이때 느꼈던 수치심, 당혹스러움, 억울함, 서러움은 1인 이상의 사람이 있는 곳에서 지적을 받는 것에 민감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나에게 공개적인 망신이란 두렵고, 사람에게 해서는 안될 짓이 되었다.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에게는 이유 없이 과하게 분노했다. 그리고 이런 모든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날 수영장에서도 나는 또다시 그 운동장에 덩그러니 서 있던 그때의 그 여자아이가 되었다.


다행이었다. 충분히 연습해 감정에 깨어 있을 수 있었고 그 즉시 이 감정이 선생님이 일으킨 것이 아님을 알았다. 어떤 반응을 하는 대신 고요히 운동장에서 울긋불긋 단풍처럼 붉게 물든 얼굴을 한 그때의 나와 함께 했다.


수영이 끝나고 샤워를 하면서도, 운전을 하면서도, 그때의 나와 함께했다. 그 운동장에서 함께 서주고 말을 걸어주고 같이 춤을 추고 장난을 쳤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리디큘러스 마법처럼 말이다. 결국 보가트를 끝장내는 것은 웃음뿐이니까.


이 모든 것들이 나의 상상 속에서 일어난 일임에도 나는 깊은 위로를 받았다. 가슴이 후련했다. 그때에 눌렸던 나의 감정은 그렇게 오늘 수면으로 떠올랐고 웃으며 떠나갔다.


그리고 존 사노 박사가 말한 무의식에게 말했다. 괜찮다고. 숨겨두지 않고 의식으로 내보내도 된다고. 내가 감당할 수 있으니 이제 자유로워져도 된다고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사람의 몸과 마음은 참 다정하다. 내가 무서워하는 것 모두, 마음과 몸은 치워주려고 한다. 눈앞에서 보이지 않게 묻어주고 숨겨준다. 그게 내 몸과 마음이 당장 나에게 해줄 수 있는 일들이니까.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없었던 일이었던 척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진실과 끊임없이 대면하는 과정이니까. 그리고 나는 그렇게 만난 진실과의 대면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삶의 질적 차이가 갈린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나의 무의식과 몸에 숨겨진 감정은 여전히 그곳에 남아 눈물을 흘리며 내 옷깃을 잡아끌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알 수 없는 분노로, 때로는 통증으로. 그때의 그 아이들이 자유로워지지 않는 한 나의 몸은 아프고 나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몸과 마음 위에 건설된 나의 삶과 행복은 모래성 위에 지은 집과 같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다정한 몸과 마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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