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딸의 거울일까. 복 없는 인생이라 중얼거리는 말에서 나는 엄마의 오래된 미움을 보았다. 그날 밤 내가 스스로에게 ‘어째 이러고 사냐’며 한숨을 쉬던 것처럼 엄마도 자기 인생을 탓하고 있었다.
인생은 정답이 없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사람들은 좋은 인생에는 정해진 길이 있다고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시야를 넓혀보면, 산다는 것은 정의할 수 없는 일이다.
요즘 나는 엄마와 친구처럼 더 가까워졌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나이를 먹어 좋은 점이 있다면 ‘엄마, 살아보니 그렇더라’는 말을 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보다 두 배쯤 더 살아온 엄마도 이제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날이 왔다.
지금 엄마는 요양원에 계신다. 수술 한 번이면 금방 나을 줄 알았던 다리는 반년이 지나도록 낫지 않았다. 24시간 곁을 지킬 수 없는 우리는 결국 엄마를 요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조금씩 적응해 가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처지가 서러운 듯하다.
“아침에 밥이 나오면 눈물이 난다. 밤새 자식들한테 폐 끼치지 않고 고통 없이 데려가 달라고 기도했는데, 아침이 되면 또 살자고 밥을 먹으니, 딱 죽겠더라. 인자 우울증이 온 건지, 어제는 친구 전화도 받기 싫고 그렇더라.”
엄마의 마음은 거울을 보듯 훤했다. 사람 사는 일이란 거기서 거기인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르고, 다 다른 것 같으면서도 결국엔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엄마의 삶도 내 삶과 다르면서 같고, 같으면서도 달랐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우울하지, 엄마. 그래도 어째. 살아봐야지. 나도 가끔은 딱 죽겠는 날이 있어. 지금 뭐 하고 살고 있는 건지, 이까짓 돈 벌자고 이러고 앉아 있는 게 한심하고, 어이가 없을 때도 있더라고. 그래도 뭐라도 해보겠다고 애쓰고 살고, 그 애씀 덕에 그래도 죽지 않게 인생이 작은 기회라도 자꾸 준다는 게 고맙기도 하고.”
엄마는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내가 엄마의 인생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엄마도 딸인 내가 내 인생을 스스로 좋은 삶이라 여겨주길 바라는 것 같았다.
“맞다, 맞아. 누가 너처럼 살 수 있다냐. 다 제 인생 사는 거지.”
“응, 엄마. 각자 자기 삶을 사는 거야. 다 좋을 것도 없고, 나쁠 것도 없는 것 같아.”
우리는 다 산 노인들처럼 이야기하며 웃는다. 결국 사는 건 태도의 문제다. 산이 크고 높을수록 그늘도 깊기 마련이다. 큰 복은 큰 화를 딛고 만들어지는 법이다. 삶의 양면 앞에서 매일 같이 그늘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다. 산다는 건 균형을 찾는 일과 같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기도 하고, 지금의 행복을 위해선 다른 행복을 내려놓아야 할 때도 있다. 그렇다면 인생이란 건 내 삶을 살기 위해 다른 무언가를 내려놓는 것일 뿐이지, 불쌍한 인생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엄마, 내가 결혼 안 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마. 자식 있고, 직장 있고, 번듯했으면 한 달 동안 엄마랑 이렇게 같이 있지도 못했을 거야. 물론 돈 많은 남편 만나서 생계 걱정 없이 살면 좋겠지만,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내 능력으로 살아가면서 얻은 것도 많았어.”
“아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이 누군 줄 아냐? 지 멋대로 사는 놈이다.”
51년생 우리 엄마는 이렇게 호탕한 사람이다. 나는 엄마의 삶을 통해 내 마지막 길을 가늠해본다. 이제 엄마는 삶의 마지막 챕터로 발을 옮겼다. 걸어온 길은 까마득하게 이어지고, 코앞엔 결승선이 아른거린다. 뒤돌아보면 내 삶이 그랬듯 엄마의 삶도 기쁨만 가득하지 않았고, 슬픔만으로 채워지지도 않았다. 수많은 감정과 기억이 서로 엉켜 한 생을 이루었다.
‘삶에는 양지도 있고 음지도 있어 다채로웠노라. 한 평생, 한 판 놀아보듯 재미있게 살았노라’ 여겼으면 좋겠다. 나는 엄마의 마지막 챕터가 뜨끈한 온돌방 같기를 바란다.
부디, 세상이 엄마에게 엄마의 무릎처럼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천국처럼 느껴졌기를. 내 마지막 챕터 역시 그러하기를 바라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