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쓴다.
글을 쓰는 참 맛
양평에는 황순원 소나기 문학관이 있다. 어느 날 봉사활동을 하지 않겠냐는 말에 문학관을 갔다. 낮은 언덕에 지어진 문학관은 아담한 크기였다.
그날은 강연이 있는 날이었다. 별다르게 하는 일 없이 대표님과 수다만 떨던 나는, 이왕 온 김에 강연도 듣고 가라고 해서 자리에 앉았다. 강사는 윤대녕 작가였다.
자리에 앉자 하얀색 종이가 책상에 놓였다. 그 위에는 <은어낚시통신>과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 소설의 한 구절이 인쇄되어 있었다. 무심코 그 글들을 읽다 보니 어느덧 강연이 시작됐다.
작가는 조용히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을 하다, 그냥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해보자고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누군가의 이야기를 꽤나 진지하고 집중력 있게 들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가로 산다는 것이 낯설지가 않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작가가 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언제나 저 먼발치에 있을 것 같은, 나와는 상관없던 삶이 이해가 된다고 해야 하나.
창작을 한다는 것, 글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내 삶과는 관련이 없을 줄 알았다. 내 평생의 직업은 이미 만들어진 것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일이었다. 기획안을 쓰고, 제안서를 쓸 때에도 그랬다.
최근에는 내가 풀어내는 마케팅 기획안에도 ‘나’와 나의 ‘삶’이 투영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제안서란 진정한 나는 없는 작업 같았다. 순전히 제품이 잘 팔릴 것만 생각하는, 진짜 나와는 분리된 채 하는 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이런 마음 때문에. 그러면서 창작을 하는 삶을 동경했던 것 같다. 나도 무엇인가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할 때만 해도 나는 창작자는 아니었다. 그들의 삶은 온전히 ‘타인의 삶’이었다.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하고, 어떻게 살아야 ‘작가’, 또는 ‘창작자’가 될 수 있을까. 외계인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작가의 삶을 엿보는 여러 권의 책을 읽었다. 조금이라도 그들의 삶을 닮아가고 싶어서였다.
이날 강의가 끝나자 누군가 윤대녕 작가에게 질문했다.
“선생님, 저는 글과 상관없이 살아온 사람인데,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소설을 쓸 수 있을까요?”
좀 더 질문이 길었던 것 같은데 요지는 이것이었다. 소설이란 어떤 사람이 쓰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 그 안에는 자신이 쓸 수 있을지에 대한 초조함이 엿보였다. 그 마음을 알 것 같아서 설핏 웃었다.
“다른 건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해요.”
이 또한 더 긴 답변이었는데 이 말만 기억이 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 글쓰기는 사실 이것에서 시작한다는 것. 작가와 창작자의 삶을 담은 책을 뒤적이며 나 또한 느낀 것이었다.
불현듯 과거의 한때로 생각이 이동했다. 한창 요가인의 삶을 살던 때였다. 직장인이었지만 요가가 주된 관심사였던 시절. 매일 요가를 하고 웬만하면 아침, 저녁으로 명상을 하던 때였다.
그해 연말에는 수련 일지를 적는 이벤트가 있었다. 노트에 이름을 적고, 수련의 의도를 적었다. 요가하며 느낀 점도 수시로 적었다. 매일 요가를 하던 때라 매일 적었던 것 같다.
어쩌다 누군가 내 노트를 보고 말했다.
“회원님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은가 봐요?”
나는 그 말을 의아하게 생각했다. 말이 많다는 뜻일까? 그때 타인의 손에 들린 수련일지가 언듯 보였다. 벌어진 종이 사이로 빼곡히 적힌 익숙한 필체가 보였다. 아, 그런가? 그제야 그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구나. 그래서 언제나 표현하지 못함에 이토록 목 졸린 기분을 느껴야 했을까.
처음 느끼는 낯선 자각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별 것 아닌 말에는, 몰랐던 진실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뒤로 이런저런 글을 썼다. 내보이지 않는 글들도 많았다. 간혹 브런치에도 썼고, 혼자서 소설도 써봤고. 필명을 달아서 플랫폼에도 올려 봤다.
쓰면 쓸수록 글쓰기가 무서웠다. 멀리하고 싶어질 정도로. 하고 싶은 말이 한가득이면서도, 글을 쓰려고 하면 불안하고 초조했다.
또, 또, 그놈의 병 때문이다. 잘하고 싶어지는 병. 으휴, 이놈의 불치병.
그럴 때면 이 말을 생각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수많은 명문들이 ‘네 글은 쓰레기’라고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누구도 읽지 않는 글이라도.
그냥 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언제나 한가득이니까.
그리고, 그냥 쓰는 글이 원래 참 맛이다. (진짜 맛있다.)
거창한 것이 담겨 있지 않아 슴슴하니 좋다.
오늘도 이렇게 속여보는 거다. 히힛,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