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이 점점 끝나가고 있었다. 맴맴 울어대던 매미소리, 덜컥거리며 돌아가는 선풍기. 그 소리들이 인이 박힐 무렵, 여름은 8월의 끝자락에 와 있었다.
여전히 한낮은 가만히 있어도 더웠다. 장판에 쩍 하고 달라붙어 움직일 생각을 못 했다. 끈적한 살들이 바닥에 들러붙고, 등줄기에는 땀이 흘렀다. “밥 먹어!” 하고 엄마가 부르면, 네 식구가 좀비처럼 식탁에 앉았다. 점심은 얼음을 동동 띄운 콩국수였다.
그렇게 한낮을 겨우 보내고 나면 저녁이 찾아온다. 여름 기운이 조금씩 기울어질 저녁 무렵. 더위 속에 시원한 바람이 섞여 있었다. 차가운 수돗물로 말끔하게 씻고, 까슬한 잠옷을 입으면 졸음이 솔솔 쏟아졌다. 매캐한 모기향 냄새를 맡으며, 덜덜거리는 선풍기 앞에 누우면 천국이 따로 없었다.
이렇게 잉여로운 방학 생활도 여름과 함께 끝이 나고 있었다. 개학하기 일주일 전.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밀린 탐구생활은 언제 하지? 일기는? 선생님한테 혼날 텐데.
나는 선생님이 무서웠다. 악몽을 꿀 정도였다. 학년 초, 수업을 듣다가 지우개를 주웠는데 선생님이 불렀다.
“거기 너, 앞으로 나와!”
누구를 부르는 거지? 고개만 두리번거렸다.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 맙소사! 나였어? 당황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익숙지 못한 시선을 받으며 쭈뼛쭈뼛 앞으로 걸어나가 선생님 앞에 섰다.
‘짝!’
커다란 손이 뺨을 치고 지나갔다. 머리가 멍했다. 고개가 돌아가고 뺨이 얼얼했다. 아픈 줄도 몰랐다. 왜 맞았는지도. 발끝에서 올라온 수치심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수업 시간에 헛짓거리를 해.”
화가 난 선생님의 음성. 그제서야 왜 맞았는지를 알았다. 첫 번째 죄는 공부를 못하는 것이요, 두 번째 죄는 그런 주제에 지우개를 주워서였다. 그런 이유로 나는 반에서 ‘뺨 맞은 공부 못하는 애’가 되었다.
이제 방학이 끝나가고 있었다. 머릿속에 무서운 선생님의 얼굴이 그려졌다. 방학 숙제를 다 해오지 않으면 벌을 각오하라고 했는데. 칠판에 발을 올리고 물구나무를 세운다고 했는데. 그것도 한 시간이나.
손이 잘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날부터 조막만 한 손으로 물집이 생기도록 일기를 썼다. 매일매일 한 편의 소설이 완성됐다. 밤을 새우며, 자정이 넘도록 일기를 써도 방학 전날에 다 마치지 못했다.
태어난 지 아홉 해. 처음 괴로움을 알게 됐다.
엄마도 아빠도 다 잠든 새벽이었다. 집 밖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탁상 위 노르스름한 백열등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깊은 잠에 빠진 가족들이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잠결에 그만하고 자라고 중얼거렸다. 새벽 3시가 넘어간 시간. 째깍째깍. 초침 소리만 들려왔다. 그 고요함이 불안하고 무서웠다. 그러다 스르륵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날밤을 새기엔 아홉 살의 몸은 나약했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누군가 깨웠다. 어깨를 흔드는 감각에 눈을 떴다. ‘헉!’ 갑자기 돌아온 의식 때문에 심장이 아프게 뛰기 시작했다.
“아가, 왜 울어?”
다정한 목소리. 엄마의 까슬하고 두꺼운 손이 얼굴을 쓸었다. 후두둑, 부은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왜 이렇게 서럽게 울어. 응?”
안쓰러워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속삭였다. 으흐흑. 가슴속 깊은 곳에 숨겨둔 서러움이 폭발했다. 꿈속에서 밤새 맞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일기도 엉망이고 탐구생활도 엉망이라고. 수업 중에 칠판 앞에서 체벌을 받았다.
그렇게 한참을 울다 등교했다. 그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다. 기억에 남는 것은 그때의 감각뿐이다. 한두 시간밖에 자지 못해 멍했던 머리. 학교를 향해 걷는 내내 불안하게 뛰던 심장. 차가워지는 손과 발. 불안과 긴장으로 느꼈던 괴로움.
그리고 이 일은 오랫동안 내 가슴속에 박혔다. ‘잘하지 않으면 수치스럽다.’ ‘정해진 기간에 완벽하게 하지 않으면 괴롭다.’ ‘비난을 받는다.’ 그렇게 ‘잘하고 싶어지는 병’이 내 안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후로 일과 공부를 할 때면 다시 아홉 살로 돌아가곤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성실함을 배웠다. 맡은 바를 제대로 끝내지 못하면 안 된다는 깨달음도. 그후 나는 성실한 사람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때처럼 악몽을 꾸어 가면서도, 무리한 일정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는 것을 중점으로 해왔다. 괴로움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때 나는 배움을 얻었지만, 즐거움을 잃었다.
일과 공부를 즐기는 방법은 누구에게도 배우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요사이 달리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과정이 즐겁고 싶다. 잘하고 싶은 일을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혹자는 말한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즐겁기만 할 것 같아? 치기 어린 생각이야.
그래도. 그래도, 그러고 싶다.
달리기를 하면서 기록도 중요하지만,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바람, 상쾌함, 기쁨, 자유로움도 중요한 것처럼.
그것이 내가 정말 잘하고 싶어지는 글쓰기일지라도,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잘하고 싶어 이를 앙다물고, 긴장하고, 부담감에 억눌리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은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문득 이 말이 떠올랐다.
어차피 발버둥 쳐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면 그냥 놓아주자. 돈 걱정, 미래의 걱정, 결과에 대한 걱정, 재능이 있을지에 대한 걱정 모두.
그리고 남은 건 하고 있는 지금. 그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 하나.
어설퍼도, 완벽하지 못해도,
편안하게. 즐겁게. 자유롭게.
달리면서 중얼거리는 나만의 만트라.
그래, 그거면 됐지 뭐. 어차피 될 일은 되고, 일어날 일은 일어날 텐데. 다 부처님 손바닥 안 아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