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장을 원한다. 언제나 내가 하는 일들이 어제보다는 오늘이 더 낫고, 오늘보다는 내일 더 잘할 수 있기를 바란다.
동시에 자기계발서를 보면 배알이 꼴린다. 글을 쓰기 위해 매년 200권씩 책을 읽고, 영어를 잘하기 위해 책 한 권을 달달 외우고, 매일 새벽 몇 시에 일어나서 무엇을 하고… 다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도 거부감이 드는 것이다.
오늘도 그랬다.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서 들은 강연이 끝나고 남은 것은 씁쓸함과 거부감, 그리고 스트레스였다. 누군가에게는 좋은 동기부여가 되었겠지만.
하지만 솔직히 우리 작은아버지가 자꾸 생각났다. 명절에 술 마시면 시작되는, 내가 고등학교 때 3~4시간 자고 전교 1등을 하고 학생회장을 역임했다로 시작되는 그 성공 스토리. 솔직히 PTSD가 올 뻔했다. (물론 강연이 훨씬 재미있었지만. 말을 너무 잘하셨고, 순전히 자랑만 있는 건 아니었기에.)
소위 말하는 ‘토나오는 노력’들의 열거가 과연 글을 쓰고 싶게 만들까? 솔직히 모르겠다. 사회생활 좀 해본 내가 이 정도면, 청소년들은 더 듣기 싫을 것 같다. 온 세상이 “열심히 해라, 더 치열하게 살아라, 이 정도는 해야 이긴다”고 말하는데, 노력의 기준도 높고 성공의 기준도 너무 높다.
간만에 동기부여가 아닌 ‘지친다’는 생각을 하고 오면서 (살짝 부장님 만난 기분이었다) 속으로 이런 나도 참 또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쩌자는 거지? 열심히 살고 싶지만, 열심히 살라는 말을 듣기 싫으면.
그럼, 너는 어떤 말을 해주기를 바라는데? 하고 묻게 됐다. 나는 재능은 ‘발현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재능의 기준은 높지 않다.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 분위기를 좋게 하는 사람, 요약 정리를 잘하는 사람, 옆에만 있어도 든든한 사람. 모두 재능이다. 자기 자신이 숨 쉬듯 쉽게 하는 행위 속에 답이 있다. 진짜 능력은 나는 어려운지도 모르게 하는데, 남들은 따라 하기 쉽지 않은 것이 아닐까.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이 가진 어떤 능력을 발현하는 데 기술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자신의 영감을 있는 그대로 영화로 옮기기 위해 정교한 연출 감각이나 카메라에 대한 이해 등이 필요한 것처럼. 이때에는 노력도 필요하다.
하지만 시작부터 심각해질 필요가 있을까? 발현을 위한 단계에서는 ‘즐거움’이 좀 수반돼도 되지 않나? 자신을 자유롭게 열어주고, 자기 자신이 되는 방법을 찾을 때는. 예술이 모든 완벽주의에서만 탄생한다면 나는 숨이 막혔을 것 같다. 때로 신인 감독의 어설픈 연출 실력이 영화를 새롭게 만들기도 하는 법이니까.
요즘 릭 루빈의 『창조적 행위』라는 책을 읽고 있다. 밀리의 서재가 추천해 줘서 읽게 되었는데, 창작을 한다는 것, 창의력과 창조하는 능력은 어떻게 발현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이 중 한 챕터의 구절을 소개한다. 이 챕터는 창작가가 남들의 판단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앞으로 나아갈 수 없거나, 스스로 “나는 좋은 노래를 만들어 낼 수 없다” 같은 의심이 들 때 도움이 되는 저자의 조언이다.
우리는 지금 만드는 작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앞으로 영원히 나를 정의할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관점을 더 정확히 바꾸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즉, 그것이 작은 작품이고 출발점일 뿐이라고 말이다. 이 프로젝트를 완료하고 다음 프로젝트로 옮겨가는 것이 목표다. 다음 작품은 또 그다음 작품으로 가는 디딤돌이다. 이런 식으로 생산적인 리듬이 창조하는 삶 전반에 걸쳐 계속 이어진다.
모든 예술은 진행 중인 작품이다. 지금 만들고 있는 작품을 실험이라고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실험이기에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다음 실험에 도움 되는 유용한 정보가 생길 것이다.
창조를 규칙 없는 자유로운 놀이라고 생각하자. 정답도 오답도 없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출발하면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 즐겁게 몰입하기가 쉬워진다.
이기기 위한 놀이가 아니라 놀이를 위한 놀이가 된다. 누가 뭐래도 놀이는 재미있다. 완벽주의는 재미를 방해한다. 창조 과정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방법을 찾는 것이야말로 뛰어난 예술가의 목표일 것이다. 그래야 막히지 않고 작품을 계속 만들어 내놓을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는 세상에는 너무 중요해서 오히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면 안 되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예술도 거기에 속한다. 시작이 부담스럽지 않도록 기준을 낮추면 결과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놀고 탐구하고 실험할 수 있다.
이는 단지 도움 되는 생각에 그치지 않는다. 자유롭게 놀고 실험하며 행복한 놀라움에 이르는 것은 또한 최고의 예술이 저절로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방법이다.
— 릭 루빈, 『창조적 행위』 중
이 책의 앞단에서 저자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는 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세상과 우주에 대한 열린 감각으로 인식의 범위를 넓히는 것, 삶의 소소한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하나의 연습이라고. 그렇기에 창조자가 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것들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일정 정도 어린아이의 모습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일생에 걸쳐 훌륭한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예술가는 아이의 모습을 잃지 않는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존재 방식을 연습한다면, 그대는 자유로워지고 우주의 시간표와 보조를 맞출 수 있다.” (릭 루빈, 『창조적 행위』 중)
오늘 하루, 애써서 노력하라는 유명인의 말보다 이 구절이 더 위안이 됐다. 물론 뼈를 깎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우리는 때로 그저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삶에 충실할 때 더 위대한 누군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예술을 만드는 것 자체가 아니라 예술을 만들 수밖에 없는 멋진 상태에 놓이는 것을 목표로 삼아라.” — 로버트 헨리 (릭 루빈, 『창조적 행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