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이 늘 슬픈 것만은 아니다
마음이라는 감옥 안에 사는 괴물이 있다. 사람들은 그 괴물이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안다. 그 괴물이 만들어진 순간에는 끔찍했고, 아팠고, 충격적이었다. 모두들 생존에 두려움을 느꼈고, 그래서 그 즉시 괴물을 감옥에 가뒀다.
사람들은 두렵다. 이 마을에 괴물이 산다는 소식이 옆 마을에 전해지기라도 한다면 그나마 오던 여행객들의 발길마저 끊길까 봐. 그나마 보잘것없던 마을을 아껴주던 몇 안 되는 여행객이었는데 그들마저 이 마을이 별 볼일 없다고 떠나버리면 어찌할까 매일매일이 불안하다. 이 마을이 고립될까 봐, 외로울까 봐 두렵다.
괴물의 존재는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 그래서 괴물을 가둬둔 감옥 근처 숲만 지나가도 마을 사람들은 화들짝 놀란다. 숲 근처를 서성인다는 이유만으로도 불같이 화를 내며 이방인을 쫓아낸 적도 있다. 이방인은 미친 사람들 아니냐며 어리둥절 한 표정을 짓는다. 마을 사람들은 겸연쩍지만 그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지 않았소. 여기를 지나가지 말라고! 이 숲을 건들지 마시오. 규칙을 깬 건 당신들이오!”
때로는 여행객을 윽박지르기도 했다. 여행객은 그럴 때마다 황당하다는 듯이 항의를 했다. 잘해주다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영문도 모를 일이라며. 도대체 내가 한 실수가 뭐길래? 하는 표정으로 질린다는 듯이 떠나가 버린다.
그럴 때면 마을 사람들은 모여서 신세한탄을 한다. 그런 표정을 보는 것마저 괴롭다. 마을이 사랑받아 많은 여행객이 오길 바라기에 마을 사람들도 상처를 받는다. 사람들은 서로 이야기한다. 언제까지 저 괴물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느냐고. 모든 게 다 저 괴물 탓이다. 저 괴물을 만들어낸 사람들 탓이다. 사람들은 괴물이 생길 때 만들어진 이야기들을 곱씹고 곱씹으며 불안과 두려움, 괴로움을 잊으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 지진이 난다. 온 땅이 흔들리고 나무들을 쓰러지고 집이 초토화되었다. 대지를 둘로 가르던 지진은 괴물이 살던 감옥도 둘로 갈라버렸다. 사람들은 패닉이 왔고 두려움에 떨었다. ‘괴물이 세상에 까발려졌다.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끝이다.’
무너진 감옥 사이로 형체 모를 괴물은 기어 나왔다. 검은 형체가 엉금엉금 기어 나온다. 온갖 때를 묻히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괴물은 우두커니 서서 사람들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두려움에 고개를 파묻고 바들바들 떤다. 장은 뒤틀리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뛰었으며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세상이 다 끝나는 것만 같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리고 싶어 안달이 난다.
그때 한 용기 있는 자가 일어나 괴물에게 다가간다. 마을에서 가장 호기심이 어린 자이고, 가장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자이다. 마을의 돌 하나, 풀 한 포기까지 아끼는 마음이 지극해 마을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지혜로운 자이다. 그 사람은 괴물에게 다가간다. 때가 끼고 어리둥절한 모습에 측은지심이 든다. ‘너도 살려고 하는 건데’ 이렇게 살아있는 것에 아무런 자리도 내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올라온다.
마음이 따뜻하고 지혜로운 자는 괴물을 데려다 깨끗이 씻긴다. 두려움 대신 사랑과 호기심을 담은 눈으로. 경계를 하던 괴물은 따뜻한 손길에, 다정한 눈빛에 마음을 조금 연다. 괴물은 조금씩 말을 시작한다. 괴물은 마을에 사는 어린아이일 뿐이었다. 어느 날 두려운 사건이 생겼고, 큰 충격과 패닉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람들이 모든 두려움과 아픔과 괴로움과 수치심과 불안을 그 아이에게 투영해 가둬버렸다. 아이의 이야기는 누구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간혹 괴물도 억울한 마음에 감옥에서 탈출해 지나가던 사람들을 불렀지만, 사람들은 귀신을 보듯 공포스러워했다. 행여나 괴물이 아는 척할까 봐 마을로 뛰어가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담배를 피우며 잊기 위해 애를 썼다. 마치 애초에 괴물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럴 때마다 괴물은 실망과 자책과 자조를 안고 골방에 처박혔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원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살리라. 괴물의 이 서러움은 곪고 곪아 한이 되고 응어리가 되어 마을에 더 큰 공포를 심어줬다.
괴물의 말을 들어준 지혜로운 이는 아이를 꼭 안아준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마음도 안아준다. 모두가 그저 두려웠을 뿐이다. 우리는 서로 두려워서 바라보지 못했고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고 들어주지 못했다. 지혜로운 이는 괴물이자 한때 마을 사람이었던 아이의 자리를 마을 안에 마련해 주기로 한다.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때때로 아이는 적응을 못할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도 여전히 아이가 어색하고, 볼 때마다 불편한 마음이 올라와 힘들게 여길지도 모른다. 지혜로운 이는 더욱더 큰 사랑을 내어 이 모든 것이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보살피고 기다려주리라 다짐한다.
마침내 마을에 괴물이 산다는 인식이 희미해져 간다. 사람들도 그 아이가 예전 괴물이었는지도 기억이 희미해져 간다. 괴물이었던 아이는 감옥에서 나와 원래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때때로 웃고, 때때로 울면서 삶을 살아간다. 사람들은 다시 오고 가며 마을은 이 오고 감 속에서, 변화 속에서 더 크고 아름다워진다.
마음의 감옥 안에 살아가는 괴물은 우리들의, 나의, 상처다. 오랜 세월 괴물 취급한 것은 누구였을까. 상처는 놓아줄 때에서야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상처가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그 상처로 인해 배우고 성장한다. 그 상처마저 나의 일부임을 알게 되고, 나의 인생을 구성하는 한 요소임을 알게 된다. 상처가 나를 만들고 나라는 사람의 독특함과 다양성을 만들어 내고 있음을 이해하게 된다. 상처가 떠나갈 때에야 비로소, 그 상처가 실은 고마운 존재였음을 알게 된다. 진실을 마주했을 때에야 우리는 해방된다.
상처는 놓아질 때야말로, 비로소 자신의 역할을 찾는다.
그리고 당신의, 나의, 우리들의 상처가 비로소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를 진심을 다해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