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s ta vie

나의 시대의 얼굴

by 콩작가


나는 나의 시대를 지나고 있소


예전에 회사를 그만두고 한 달을 집에 처박혀 있을 때가 있었다. 무기력하던 어느 날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커튼을 걷고, 방을 닦고, 쓰레기를 버리고 대청소를 했다. 맑게 들어오는 햇빛을 받으며 의자에 멍 때리며 앉아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켠 라디오 소리가 그제야 들렸다.


배철수의 음악캠프였다. 나는 특유의 건조한 목소리로 읽어나간 이야기를 멍하니 듣고 있었다. 어느 작가의 이야기였다. 그 작가는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노력했고 원고를 받은 출판사 담당자가 말한다.


“작가님, 작가님 글은 너무 진지하고 무거워요. 독자들이 읽기에는 어렵다고 느낄 겁니다. 요즘은 말이에요. 다른 책들이 유행이에요. 쉽게 읽히는 책들이 유행이죠. 중간중간에 삽화도 넣고 이런 책들을 독자들이 좋아합니다. 그런 시대예요.”


작가는 그 말을 끝까지 듣고 조용히 말한다.


“나는 나의 시대를 살고 있소.”


나의 시대라..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단어에 나는 순식간에 사유의 세계로 들어갔다. 모두가 처음 맞이하는 자유에 들떠 있는 것만 같은데 혼자만 우울한 시대를 보내던 20대, 주위 지인들 모두가 결혼하고 안정적인 직장과 생활을 이어가던 30대에 빈털터리로 미국에서 돌아와 월세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35살의 어느 날. 독특하게 산다는 말이 마치 이 사회에 내 자리 하나 없는 것 같은 느낌을 갖던 어느 날. 엄마가 항상 하던 ‘남들 모두가 그렇게 산다’는 말들. 왜 너만이 자리를 잡지 못하냐는 말들. 스스로에게 왜 방황하는 사람으로 태어났는지 물었던 질문들. 이 모든 것들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갔다.


그리고 또다시 나는 백수네. 이런 자조 섞인 웃음을 안고 햇살 아래에 앉아 있는 나. 하지만 알겠다. 남들이 뭐라 하던 나는 나의 시대를 걸어왔다. 끊임없는 소음과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과 사랑받고자 하는 욕심으로 남의 눈치를 많이 보던 10대를 지나, 고향을 떠나 삶을 고민하고, 인생과 가족의 의미를 찾던 20대. 무기력과 우울, 방황을 이겨내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보고자 발버둥 쳤던 20대 중후반, 끊임없는 도전으로 진짜 나의 모습과 마주하고 살아야만 했던 30대. 그 약 40년의 세월이 남들이 어떻게 살았던, 모두가 어떻게 살았던 상관없다. 내가 그 인생사를 걸어왔다. 내가 내 내면으로 느끼는 시대만이 사실은 그 시대다.


Vis ta vie (너의 인생을 살아라)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세상에는 마치 그런 것들이 있는 것 같았다. 인생의 교본이라는 것이. 정해진 길이 있는 것만 같았다. 예쁘고 귀여운 딸로 태어나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하고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성실하고 반듯한 청년과 결혼을 하고, 열심히 살며 아이를 키우고 아이는 성장하고, 집안은 하하 호호 웃음꽃이 피고 그 아이가 또 성장해 인자한 할머니가 되어 행복 속에서 살다가는 그런 그림이. 꼭 이런 인생이 아니더라도 세상에는 남들이 인정해 주는 어떤 길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제주도 비자림에서 온전함에 대해 깨달았다. 지금 회사를 들어오기 전 일주일 간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며 혼자 여행을 떠났다. 비자림을 아주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비가 촉촉이 오는 날이었는데 비가 많이 내리는 것도 아니어서 비를 조금씩 맞으며 숲길을 걷고 있었다. 맑고 습한 공기 속에 나무들의 자태는 아름답고 생생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었다. 어떤 나무는 심하게 굽었고 어떤 나무는 키가 크고 어떤 나무는 줄기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하늘을 향해 뻗는 나무가 있는가 하면 심하게 누운 나무도 있었다. 한 나무에서 뻗은 가지마저 모두가 모양이 달라 그 가지들을 눈으로 따라가며 독특한 모양새를 감상하고 있었다.


‘나무가 굽었다고 나무에게 뭐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그냥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굽은 나무도 사랑하고 뻗은 나무도 사랑한다. 제 각각인 나무의 모양은 숲을 풍요롭게 하고 그것을 다람쥐도 풀도, 야생화도 나무라는 법이 없다. 그런데 왜 사람은?이라는 의문이 들었다. 비교하면 무엇이든 지나침이 있고 부족함이 있다. 문제는 이거다. 도대체 무엇이 기준이지? 삶에 진짜 기준이라는 것이 있나? 이 아름다운 원시림의 나무들처럼 그저 그 모양 그대로 온전한 건 아닌가? 그저 내가 가진 모습 그대로 존재하면 되는 것 아닌가?


나는 귀 뒤에 타투를 새겨 넣었다.


‘Vis ta vie’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에 나오는 대사다. 이 영화의 대사처럼 나는 나의 삶을 살기로 했다. 독특한 모양 그대로. 가지고 태어난 모습 그대로. 나는 감정 기복이 있고 사소한 것에도 많은 생각을 하며 때로는 사회에서 필요한 인재라는 소리도 듣지만 때로는 사회에 불필요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는 각자 모양이 독특한 퍼즐이다. 삶에는 우리 모두에게 자리가 있다. 자연은 내치지 않는다. 비자림 숲에 있던 나무들 위로 수많은 벌레가 기어 다니고 나무 줄기를 따라 덩굴들이 휘감겨 있었다. 나무는 불평하지 않는다. 그 모두를 내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우주는 어떤 존재도 내치지 않는다. 그 자리를 준다. 있을 수 있도록 한다. 지구는 아름다운 꽃과 새도 품고 있지만 바퀴벌레도 품고 있으며 독충도 품는다. 어떤 것도 그 모양 그대로 귀중하기 때문이다. 이들을 분류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우리의 비교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그러니 사람에게 자리가 없을 리 없다.


나는 이 세상에 이 모양 그대로 살아갈 권리를 지닌다. 그것은 당신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엉성하기만 한 나의 완벽하지 않는 삶이라도 그 자체로 온전한 법이다. 그것은 당신의 삶도 마찬가지다. 또한 그 모양대로 살아가도 삶으로 연결된 복잡하고 아름다운 자연의 그물망은 견고히 버텨낸다. 내가 못하는 부분은 타인이 채워준다. 다른 생명과 존재가 채워진다. 그러니 찌그러진 퍼즐이라도 괜찮다. 그 모양 그대로 살아라. 가장 나답게, 나의 인생을 살아라. 그때에서야 비로소 진정한 행복, 그저 존재한다는 것 하나로 채워지는 행복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2023년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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