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

양귀자 <모순>

by 콩작가

역시나 빨래를 하는 주말이다.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음 앞에서 글을 쓰는 것은 언제나 즐거움이다.


혼자만 있는 코인 세탁방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갑자기 고등학교 때 읽었던 양귀자 작가의 장편소설 <모순>이 생각이 난다.


아주 자세한 소설의 줄거리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급하게 출판사 서평을 찾아봤다. 맞다. 이 소설은 일란성쌍둥이의 두 여성의 삶을 그린 소설이었다. 온갖 불행과 고난을 헤쳐나가며 사는 안진진의 어머니의 삶은 지루할 틈이 없다. 반면 이모의 삶은 평탄하기만 하다. 부유한 집에서 아무 일도 없이 살아간다.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인생을 살지만 삶의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권태에 잠식당한다.


새삼스런 강조일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란 누구나 각자 해석한 만큼의 생을 살아낸다. 해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는 사전적 정의에 만족하지 말고 그 반대어도 함께 들여다볼 일이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마찬가지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하나의 표제어에 덧붙여지는 반대어는 쌍둥이로 태어난 형제의 이름에 다름 아닌 것이다. - 양귀자 소설 <모순> 작가의 노트 중에서


이 소설을 처음 접하고 살면서 처음으로 남부럽지 않은 인생이란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어떤 삶이든 각자의 자리에서 불행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가 했었다. 그리고 한편 어떤 위로를 주었다. 나의 삶에도 이런 모순은 분명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히는 일이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처럼 자기만 살던 세계를 깨부수고 나오는 일이다.


어렸을 때 나는 나만 그런 줄 알았다. 어떤 불행한 일이 닥치면 저 담장 너머에는 행복이 도사리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래서 담장 밖에 서 있는 나는 불행하고 그 안쪽 어디에 선가는 행복이 도사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살다 보니 나만 그런 것은 없었다. 내가 제일 불행하지도 않았고 내가 겪는 일들이 나만 겪는 것도 아니었다. 나의 삶은 보통의 것이었다.


특히 다양한 이야기들은 세계를 확장시켜 줬다. 인류는 전쟁을 겪었고 그 가운데에서도 삶은 있었다. 기근을 겪고 불합리한 시절을 겪어 지금에 이르렀다. 핍박받는 여성들과 타인들의 삶을 읽고, 자유를 구속당하는 일들을 겪은 삶도 읽고, 개인의 삶은 무참히 버려지고 정치와 이념 논리에 죽는 일들도 읽었다.


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시집을 잘 간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고 승승장구하며 승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강남의 한 고층 빌딩을 가진 남편에게 시집간 누구는 어머님이 그 집이 언제나 자신이 해 준 집이라는 생각에 사생활 보호가 없었다. 캐나다 부자와 만혼한 어떤 이는 일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가서 권태에 힘이 든다는 소식도 들었다. 삶의 부러웠던 어떤 이면은 다른 면을 낳고 있었다.


권태, 구속, 억압, 가난.. 그 무엇이 되었던 삶이 건네는 과제는 누구에게나 있었다. 그 앞에서 자신의 세계를 깨부수는 것은 오로지 자신 만의 몫이다. 황색 잡지에서나 다룰 것 같던 자극적인 타인의 인생도 잘 알기 위해서는 그 모든 상황 속에서 그가, 혹은 그녀가 무엇을 탐구하고 배우게 되었는가까지를 들어야만 한다. 그래야 거기에 어떤 진실이 담겨 있다.


왕자와 결혼한 신데렐라의 이야기가 행복한 결혼식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우리는 모두 미완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신데렐라는 왕실과 격차가 나는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고 살았는지, 자신의 존엄성은 어떤 식으로 지키고 살아왔는지, 우리는 물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했던 수많은 선택과 좌절 속에서 배우고 앞으로 나아간 그녀의 모험이 곧 인생일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는 여행자이며 그런 각자의 인생길에서 좋은 삶도 나쁜 삶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2023년 6월 코인 세탁방에서 구시렁구시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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