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여, 바다처럼 담담히 흘러가라

휴가지에서: 바람과 산과 바다와 물처럼

by 콩작가


텅 빈 바다에서 흘러가는 시간을 생각합니다.


휴가를 왔다. 제주도 해변 근처에 숙소를 정하고 산책을 나온 겸 글을 쓴다. 오늘 글의 주제는 없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해변가는 주말이면 왁자지껄 정신이 없었는데 월요일이 되니 텅 비었다. 그래도 여전히 파도는 치고 바다는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새들도 벌레도 오늘을 산다. 휴양객이 있던 없던 상관없이.


나는 손님처럼 앉아 있다. 북적이던 주말의 바다도 보고 썰렁해진 바다도 보며. 달콤한 망고 주스를 하나 시키고 습한 날씨에 땀에 젖은 옷을 코인 세탁방에 맡기고서 지나온 시간을 생각한다.





운명같이 온 나의 이름 석 자


최근에 아주 갑작스럽게 개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름을 바꿔봐야지 하는 생각을 간혹 하기는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 주어진 것을 거부하고 사는 것에 대한 묘한 죄책감이 있었다. 어떤 인생을 더 잘 살고 싶기에 또 욕심을 부리나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다.


처음에는 필명을 하나 지어볼까 하고 작명원을 찾았다. 좋은 이름을 가지고 글을 쓰면 좋을 것 같다는 충동이었다. 변덕과 충동은 나에게는 일상이니까.


작명원에서 지금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의 이름은 이름에는 쓰지 않은 한자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이야기와 가족과의 조화와 평화를 깬다는 설명을 들었다.


내 이름은 어렸을 때 할아버지가 막걸리 한 잔 드시고 동사무소에서 가서 아무렇게나 지어졌다. 할아버지가 술김에 지은, 운명같이 주어진 이름이었다. 할아버지와 관계가 좋지 않았던 엄마는 내 이름을 들을 때마다 화를 냈다. 할아버지가 부모와 상의 한 마디 없이 아무렇게나 지어왔다고.


어렸을 때는 엄마가 내 이름을 미워하는 이유는 할아버지가 미워서였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그건 귀하게 낳은 당신의 자식에 대한 존중 없던 할아버지의 태도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자식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던 엄마는 작명원을 찾고 여러 날 고민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 이름을 할아버지는 술김에 동사무소에 가서 고민 없이 신고하고, 딸자식 이름을 고민하던 엄마에게는 상의 한 마디 없으셨다. 이제 갓 부모가 된 엄마의 마음은 그렇게 짓밟혔던 것 같다.


엄마가 내 이름 이야기를 꺼낼 때면 항상 뒤따라오는 에피소드가 하나 더 있다. 딸이라는 이유로 내 생일도 그렇게 아무렇게나 지냈다고 했다. 동네 장에서 흔하게 팔던 싸구려 양말 하나를 손녀딸 생일 선물로 던져줄 때 (던져주시진 않았겠지만 언제나 그렇게 표현하셨다.) 서러우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 설움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여전하신 것 같았다.


개똥이처럼 별 의미 없는 내 이름, 하지만 내 인생이 담겨 있었다.


덕분에 나도 내 이름을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성의 없이 지어진 내 이름. 개똥이처럼 그냥 별 뜻 없이 여자이니 아름답게 살라고 던져진 이름. 그 이름에 대한 설명을 듣는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작명 선생님은 좀 더 사랑받고 주위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이름을 다시 지으라고 하셨다. 내 삶과 조화를 이루고 고독하지 않는 이름으로. 지금의 이름은 좀 외로운 느낌이 있다는 말을 했다.


필명을 지으러 왔기에 별 생각이 없었던 나는 물었다. 개명을 해야 하냐고. 작명 선생님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이름으로 짓지 않은 한자가 좋을 리 없다고 했다. 그렇게 이름을 받아 들고 개명을 결심하고는, 나와 40년을 함께한 내 이름을 생각한다.


운명처럼 온 나의 이름은 가족과 불화를 암시하고 있었다. 사회생활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가까운 사람, 특히 가족과는 조화를 이루기가 어렵다고 했던가. 그리고 내가 벌어서 남편을 먹여 살려야 한다나.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의 운명 같은 내 이름은 내가 독립하기를 원했던 것은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


가족의 품에서도 나오고, 너의 힘으로 살아보라고 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나의 이름이 고마웠다. 이 이름 덕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독립적으로 성장했다. 내가 살아온 과정이 불행하지만은 않았지만 또 행복하지만도 않았고, 나는 내면의 어두웠던 어떤 부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엮인 조부모, 부모, 형제들의 아픔을 승화하고 극복하고 살아왔어야 했다. 가족에 머물러서는 흘러가지 못한 물처럼 썩어가고 있을게 분명한 어떤 덫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했다.


그리고 그 아픔이 삶의 원동력이 될 수 있게 노력해야 했는데 내 이름은 마치 이것을 암시하듯 했다. 나를 둘러싼 장벽을 깨뜨리고 빠져나오게 암시를 걸고 있었던 것 같았다.






삶에서 주어진 무엇이든 감사할 수 있다면


고맙다. 내 이름아.


40년을 함께해 줘서 고맙다. 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던, 그 이름에 설사 조화를 깨뜨리는 힘이 있었다 할지라도 나의 삶은 분명 그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작명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이름을 향해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내 이름은 나의 아픔을 암시했지만, 한편으로는 내 삶은 그마저도 필요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자 고맙고 고마웠다.


몇 년 전에 나는 힘든 일을 겪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사랑받고자 하는 나의 기대들을 적나라한 모습으로 봤어야만 했다. 그리고 조금씩 그 마음들을 내려놓고 있다. 현실을 다시 보고, 스스로를 다시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다. 아, 진정한 독립이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받고자 했던 내 어린 기대들과 그 기대들이 만들어온 왜곡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는 것. 나의 가족도 나의 삶도 말이다.


그래서 예전처럼 착하고 말 잘 듣는 딸로, 동생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이미 많이 떠나왔고, 내가 살던 고향과 자리를 멀리서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십 대 시절의 내 모습을 여전히 기대하는 가족들에게는 생소한 느낌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독립이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 이유이자 종착점이고, 자식에게는 진정한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야 할 출발점이라면 나에게는 그 순간이 마흔에 온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을 알아차린 순간에 운명처럼 다른 이름이 왔다. 독립은 이제 되었으니 좀 더 타인과 조화를 이루고 살라고 하는 것처럼. 이제 전사처럼 고군분투하며 살았던 시대는 끝났노라 선언하는 것처럼.


‘만약 삶이 주는 무엇이든 감사할 수만 있다면..‘


이런 생각을 문득했다. 싫었던 나의 이름조차 이렇듯 감사할 것 투성이라면 앞으로 삶이 주는 무엇이든, 인생에서 만나는 어떤 것이든 감사하겠노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들은 또다시 나의 삶의 숨겨진 의도가 되고 인생의 항로에 방향을 설정해 줄 것이다. 마치 만트라처럼 말이다. 주어진 그대로 감사하게 받겠노라 생각하고 쓰다 보면 이 생각은 무의식 안에 녹아들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순간에 인생의 나침반의 역할을 할 것이다. 이것이 때로 생각과 말을 신중하게 하고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지혜로운 어느 나라의 격언처럼, 내가 하는 말을 신과 나는 듣고 있으므로.


휴가지에서 흘러가는 바다를 보며 인생의 흐름을 생각한다. 흘러라, 인생아. 그리고 나의 삶이여 흘러가라. 유장한 세월을 흐르고 흘러 바다로 가자. 그 흐름 속에서 어떤 것도 무의미한 것은 없으니. 만나는 무엇이든 감사한 마음을 품고서. 아름다운 인생 안으로 그렇게 뛰어들듯 들어가라.


2023년, 여름 휴가지에서


제주 애월읍 곽지해변의 저녁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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