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라산에서
이번 여름휴가 때 한라산을 등반했다. 분명 일기 예보에는 11일은 날씨가 맑다고 했었는데 예상은 빗나갔다. 뭐, 삶이란 그런 거 아니겠나.
새벽에 일어나니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첫 한라산 등반이라 비가 올 때 올라가는 것이 괜찮은지 잠시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한라산 초입에서 몇 명이 산에 오르는 것을 보고 나도 용기를 내었다.
가는 길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위로인지
시작점에는 올라가는 사람이 몇 있더니 서로 다른 걷는 속도 때문인지 결국 나 혼자만 남아 산 길을 걸어 올라갔다. 하지만 어쩌다 간간히 마주치는 사람, 앞에 걷는 한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위로가 된다.
누군가 걷는 길에 앞선 이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로인지.
오르는 동안 앞에서 비 옷을 입고 오르는 낯선 이의 등에 안도감을 느낀다.
'혼자만 가는 길이 아니다. 함께 가는 이가 있다.'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앞서 경험한 이가 있다는 것, 내가 가는 길에 동료와 후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길이 잘못된 길은 아니라는 묘한 안도감을 준다.
그러니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안도해도 될 것이다. 아무것도 이룬 것 하나 없는 것 같은 때도 있겠지만, 그저 앞서 걷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위로와 안도감일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내가 걷는 인생길 또한 아무 의미가 없어 보일지라도 뒤따르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길 조용히 바라본다.
어설프게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고
중반쯤 오르니 길은 더 가팔라지고 비는 더 거세졌다.
나는 산의 초입부터 우산을 쓰고 걸었었다. 혹시나 흠뻑 젖어 버리면 체온이 떨어질까 두려웠다. 어설프게 아는 지식 탓이다. 오랜 산행과 운동에는 체온 유지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작은 우산 하나를 쓰고 씩씩하게 걸어왔다.
하지만 산의 정상에 다다르니 어설프게 쓴 우산이 아무 소용이 없다. 바람은 거세고 비는 사방으로 몰아쳐 들어온다.
없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잠시 고민하다 나는 우산을 접어 가방과 등허리 사이에 끼워 넣어버렸다.
우산을 접자 비가 정면으로 몰아치고 나는 비바람에 손세수를 하며 시야를 확보했다. 바람이 온 사방에서 불고 바람에 밀려 몸이 휘청거린다.
1분도 안되어 온몸이 흠뻑 젖었다. 비바람 아래 나는 날 것 그대로 가진 것 없이 홀로 걸었다. 그러자 즐거웠다. 바람이 불고 비에 젖는데 이상한 자유로움을 느낀다.
'그래, 우산은 필요 없다. 비 좀 덜 맞자고 애쓰지 말자.'
어설프게 쥐고 있던 것을 놓아버리자 흠뻑 젖는 자유로움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내 인생 어느 한 자락에서도 이렇게 어설프게 쥐고 있던 것들이 있었을까.
놓아버릴 때 기다리고 있던 것은 최악의 상황도 아니었고, 불운도 아니었다. 흠뻑 젖어 더 내려놓을 것도 없는 자유.
상황에 흠뻑 젖어 내맡기는 자유가 거기 있었다.
"어설프게 저항하지 말고 내려놓아라."
한라산은 나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뒤는 산이 하고 싶은 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었다. 비바람이 부는 산은 아름답고 장엄했다. 비구름으로 사방이 어둑어둑했지만 끊임없이 구름이 지나가고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능선을 타고 내려간다. 바람을 따라 잎새들이 촤르르르르 소리를 내며 움직인다. 어지러이 움직이는 나무와 풀이 장관이다. 산이 주는 변화무쌍함은 비바람이 불지 않는 날에는 보기 어려울 것이다. 평화롭던 산에는 이런 날도 있었다. 산은 천 가지의 열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는 고요함과 단단함 또한 산의 본질이다.
그리고 나는 자유로움에 마음이 즐겁다.
그 무엇에도 저항하지 않았다. 비바람이 부는 날씨를 탓하지 않았고, 어설프게 비바람을 막아주던 우산을 내려놓았다. 흠뻑 젖은 몸에 불만을 품지 않았고 산이 주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충분히 내맡겼고 충분히 젖어버렸다. 그러자 찾아오는 것은 즐거움과 고요. 한라산의 산행은 두려움 하나 없이 차분했다.
마음은 길을 안다.
무엇인가를 내려놓을수록 삶에서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간다.
나이가 들면 들 수록 내 힘이 커지고 더 대단해질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하지만 무엇이 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아간다.
겸허함을 끊임없이 배워가는 것.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알아가는 것들이다.
내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은 나의 '에고'다. 그리고 언제나 존재의 불안을 품고 있는 '에고'가 하려고 하는 통제의 마음이다. 내가 중요하기를 바라는 마음, 내 마음대로 하길 원하는 마음, 남보다 나아지고 싶어 하는 마음,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마음, 내가 최고가 되길 바라는 마음.
진정한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거대한 삶의 흐름의 한 조각이다. 산이 품는 변화무쌍한 모습처럼 모든 것을 품고 있는 우주다. 때로 비바람처럼 매섭고 때로 산처럼 단단하고 우직하며 때로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다. 또 때로 한 여름의 날씨처럼 변덕스럽고, 때로는 저 바다보다 깊고, 먹구름보다 더 음울하며 햇살처럼 밝고 깊은 산속처럼 고요하다.
에고는 이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내면의 자연 중 일부이면서 주인 행세를 한다. 실제로 세상은 내가 모든 것을 할 수도 없으며, 완벽한 최고란 없고, 남 위에 서는 것이 인생의 충만함으로 연결되기란 쉽지 않고, 삶은 에고가 뜻대로 하고 싶다는 마음, '통제'에 벗어나 있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선한 영향력을 나와 타인과 지구에 행사할 수 있는 위대한 개체다. 내가 이루는 평화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준다.
나의 마음이 편안해지자 주위의 사람들이 함께 변하는 것을 봤다. 나의 즐거움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또한 봤다.
내 내면의 진정한 어떤 힘은 내가 통제하기도 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해야 할 것은 진정한 나에게 자유를 주는 일. 그러기 위해 어설프게 쥐고 있던 통제의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다. 삶이란 비바람에 흠뻑 젖을 수 있도록.
마음이 자유롭게 무엇을 펼쳐 낼 수 있도록. 내가 할 일은 마음이 펼쳐낸 그 길을 따르는 것뿐이다.
2023년, 한라산이 하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