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가 늘어났습니다.
아침 출근길에 엘리베이터에서 거울을 보면 흰머리들이 눈에 띈다. 처음에는 안 보이는 곳에 생기더니 이제는 한가닥이 눈에 띄게 자라나 있다. 매일 뽑을까 말까를 고민하지만 이내 포기한다. 뽑으면 다시 자랄 것을 알기에 그만두기도 하고, 안 그래도 머리카락도 없는데 희다고 괄시할쏘냐! 너도 귀중한 나의 머리카락이다!라는 마음으로 그만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을 그렇게 실감하고 살아본 적은 없다. 젊게 산다고 우기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나는 어렸을 때 몸이 안 좋았다. 운동을 특별히 좋아하지도 않았거니와 언제나 염증과 각종 병증을 달고 살았다. 몸에 염증이 많아서 얼굴에 성인 여드름도 심했고 가만히 있어도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살기 위해 운동을 한편이었다. 요가를 시작하고 혈액순환이 점점 좋아지더니 컨디션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 3년 전인가 30년 지기 친구가 회사 앞에 놀러 와서 내 얼굴을 보더니 놀랐다.
“야! 네가 진짜로 예전에는 몸이 안 좋았구나..”
“뭐? 왜?”
“혈색이 달라.. 예전이랑..”
“야.. 내가 컨디션 안 좋다고 말했잖아. 안 믿었냐??”
20대의 혈색보다 좋아진 혈색이라니 말해 뭐 할까. ㅋ 그리고 두 번째는 생각이 더 좋아졌다. 인생에 하등 쓸모없는 비교, 판단이 확실히 줄었고, 상처뿐인 영광스러운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 지금을 살아가는 내가 참 좋다. 나에게 가장 고마운 점이라 하면 이거일 거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며 나를 데리고 살아온 것.
초등학교 때 나는 극단적으로 수줍었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덜 하긴 했지만 부끄러움이 너무 많고 내성적이어서 한 학기는 말 한마디 안 하고 끝난 적도 많았다. 유치원과 유아원은 말해 뭐 하나. 가는 게 고통스러웠다.
내가 기억나는 한 장면은 그럼에도 항상 발표를 하겠다고 손을 드는 나다. 바들바들 떨면서도 손을 들고, 일어서면 떨리는 목소리 때문에 수치스러우면서도 끝까지 손을 들고 또 드는 초등학생의 나.
이 일을 왜 아무렇지 않게 기억에서 지웠을까? 지금에서 생각해 보니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수줍고 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수줍어도 손을 드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나이 마흔에 나에게 느끼는 고마운 점이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가정환경을 만나고, 사회환경을 만나왔지만 곧이곧대로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가만히 살아오지 않았다. 어릴 적 상처를 극복하려 노력하고, 대인기피증이 생기면 함께 어울리려고 노력하고, 의존적이라면 독립하려고 노력하고, 정체되어 있으면 도전하려고 노력하고. 그래, 이런 게 나란 사람이었다.
그래서 참 감사하다. 냉소와 경계심, 고립감, 우울, 절망, 패배감, 열등감 같이 내 곁에서 떨어질 것 같지 않았던 안개 같은 마음을 하나씩 걷어내며 살아온 자신에게 고맙다. 그러니 앞으로도 정말 괜찮지 않을까? 하나둘씩 흰머리는 늘어가지만 하나둘씩 즐거움도 늘어가니까.
작년부터는 동호회의 즐거움을 알았고, 마음을 나눈다는 즐거움도 알았으며, 생각을 나눈다는 즐거움과 생각을 나누며 살아갈 수도 있다는 감사함을 알게 되었다. 나와 다르지만 생각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알았다.
그러니 정말로 괜찮을 것이다. 앞으로 나는 낯선 나와 계속 만나겠지. 흰머리가 더 늘어서 백발이 된 나의 모습도 만나고, 팔자주름이 움푹 파인 나도 만나고, 이마에 주름 잡힌 나도 만나고. 언제나 늙어가면서 없어질 여자로서의 매력이 두려웠다. 언젠가는 사회인으로서 매력도 없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많은 경험이 쌓여 나를 옭아매던 쇠사슬 같던 생각들이 하나둘씩 끊어지며 느끼는 진정한 자유도 알게 되었다. 그렇다면 즐겁게 여행을 하듯 삶을 살아보자. 내가 요새 보니까 삶은 나에게 없는 것을 쫓을 때 망한다. 나에게 있는 것을 누구보다 잘 쓸 때 사람들은 그것을 부러워한다. 솔로의 여유로움을 누구보다 만끽하고, 자유로운 선택을 하며 살아갈 때 유부초밥들이 부러워한다. ㅎㅎㅎ 솔로가 갖지 못한 구속을 원해서 누군가 없나 하고 초조해할수록 그 누구도 내 삶을 알아봐 주지 않더라.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나이 든다는 것의 가장 좋은 장점을 누구보다 잘 누리고 살 것이다.
나이 드는 경험 하나하나를 깊이 있게 받아들이고, 이제 젊을 때의 열기와 혼란함이 없는 상태로 세상을 더 오롯이 느끼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글을 쓰고 책을 읽으려고 한다. 하지만 어렸을 때처럼 부담을 안고 쓰고 읽는다는 것이 목표 그 자체인 것처럼 하지 않으려고 한다. 즐거운 놀이처럼, 가볍게, 하지만 깊이 있게. 쓰고 읽는 것이 일상인 것처럼.
그렇게 다양한 경험이 쌓이면, 나는 어느 눈이 부시게 맑은 날 백발을 반짝이며 아름다운 정원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조용히 앉아 책을 읽을 것이다. 한 장 한 장이 소중한 것처럼. 평탄하지는 않았을지라도 풍부한 경험을 하며 살아온 나는, 책의 어느 한 부분에서 조용히 머문다. 그리고 남들은 모르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나만이 알 수 있는 책 한 구절의 행간의 의미를 깊이 있게 느끼고 이해하며 전율할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삶의 여러 구간을 거쳐온 사람만이 갖는 나이 듦의 특권이다.
2023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