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가 있는 것은 언젠가는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by 콩작가

장기하 에세이 책에서 읽은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의 한 구절이다. 이렇게 쓰니 조금 묘하지만 그 구절은 이렇다.


"형체가 있는 것은 아무리 애써도 언젠가, 어디선가 사라져 없어지는 법이다. 그것이 사람이건 물건이건."


나는 물건을 잃어버릴 때마다 이 구절이 생각난다. 그리고 사람이 떠나갈 때도 이 구절을 떠올린다.


작별의 순간에 나는 만트라를 외듯이 '형체가 있는 것들은 언젠가, 어디선가 잃는 법이다' 하고 되뇌며 위로한다.


그렇게 생각하자니 세상의 많은 일들이 실은 거꾸로 인 것 같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랑은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실은 변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언제나 지금처럼 함께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지만 실상은 만남은 곧 이별을 암시함이 더 자연스러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물건도 사람도 사라져 없어져 버리는 순간이 자연스러운 순간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뇌며 스스로에게 변하지 않는 것은 없음을 상기시킨다. 그렇게 생각하면 쓸쓸한 감정이 찾아온다. 그럴 때에는 그러므로 이 순간이 얼마나 기적같은지 한번 더 되뇐다.


그리고 이 말을 떠올릴 때면 같이 떠오르는 영화 대사가 있다.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가 말하던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말.


그리고 울먹이며 이 말을 하던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압니다. 저도 그게 더 자연스러운 것인지 알았어요. 하지만 변하는 것이 더 이치에 맞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속으로 속삭이는 것이다. 세상을 거꾸로 이해하면 상처받는 법이니까. 청춘이 맑음을 준다면 아마도 이 때문이 아닐까. 아직은 내 식대로 해석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던 미숙함이 순수함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순수함은 깨지고 마음은 냉소 짓는다. 세상은 더럽다, 힘들다, 고통스럽다고 원망하고 상대를 탓하고. 그런 마음이 잘 갈무리되면 모든 것을 아는 맑음이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그때가 성숙하다는 것, 진짜 어른이 되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책을 좋아했었다. 하도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많은 것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청소년기에 그 책의 주인공의 냉소적 심리가 나에게는 어떤 카타르시스를 일으켰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다시 읽으니 그의 냉소는 어린아이의 투정 같은 느낌이었다. 읽다가 더는 못 읽겠어서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다.


만약 어떤 상처가 여전히 스스로에게 냉소 짓게 한다면 아직 더 여물지 못했음의 반증일지도 모른다. 진짜 안다는 것은 흙탕물이 다 가라앉은 후 오는 맑음일지도 모른다. 때때로 맑았던 물은 다시 탁해지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일었던 것들이 가라앉는 시간도 온다는 것까지 아는 지혜가 있을 때에야 진정으로 미소지을 수 있다. 그런 까닭에 옛 성인들이 모든 것을 깨달은 뒤에 그토록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게 웃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아침에 문득 형체를 가진 것들은 언젠가는 떠난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변화하는 삶과 자연을 생각한다. 무상함을 숙고하며 가슴을 채운다. 떠나고 잃어버리고 다시 찾고 새로운 만남이 오고 그 모든 과정이 삶이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는 것은, 얻고 잃는 전체의 과정을 알게 하기 위한 신의 심심한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그때에서야 지금 이것을 가진 순간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깊이 알게 될 테니까 말이다.


'사랑할 수 있을 때 충분히 사랑하라.'


이것이 모든 잃음 뒤에서 삶이 조용히 속삭여 주는 진언일지도 모른다.


2023년 8월,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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