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이별법
잊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좋은 작별이 필요한가 봐요.
요사이 요가를 가지 못했다. 1-2달 정도는 쉰 것 같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설명하기에는 모든 이유가 다 구차하다.
오랜만에 나간 수련에서 나는 덜컥 겁이 났다. 4년이 되는 시간 동안 한 주도 빼놓지 않고 요가를 해왔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주에 한 번이라도 가려고 노력했다. 보통은 주 3회를 갔고 작년 겨울에는 거의 매일을 요가를 했다. 밥 먹고 숨을 쉬듯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요가를 몇 달 쉬니 몸이 예전으로 돌아갔을까 두려웠다. 겨우 유연해지기 시작한 몸이었는데.
요가가 시작되고 아니나 다를까 허벅지 뒷면이 당긴다. 종아리도 뻣뻣하다. 당황스러운 마음도 잠시, 몸과 마음은 예전처럼 집중을 했다. 매일 하던 때보다는 조금 몸이 굳었더라도 4년 전의 순간으로는 돌아가지 않았다.
기분 좋게 수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다 기억하고 있구나.
4년의 시간을 몸은 기억하고 있다. 매일 흘리던 땀도 기억하고 매일 하던 동작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시간 동안의 나는 어디 가지 않았다.
처음 요가를 시작하던 때였다. 그때는 사바아사나만 하면 과거의 기억이 자동 재생되었다. 특히 내가 미국에 있던 시절의 기억들이었다. 그때 나는 나름 애를 쓰며 새벽까지 일하고는 했는데 내 딴에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되던 기억들이 있었다.
물론 내가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 열등감과 타국에서의 외로움이 더 큰 상처를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가 의도를 했건 안 했건 나는 독설인지 아닌지 구별 못할 말들을 듣고 비교당하고 추궁당하는 말들을 들었었다.
어쩌면 아무 의도도 없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크게 좌절했고 힘들었다. 노력을 해도 그의 마음에 드는 순간은 없었다. 매일같이 자존심이 뭉개졌고 밤에는 괴로웠다.
그때의 기억이 첫 요가 수업에 계속 떠올랐다. 언제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처음에는 분노했고 내 할 말을 다 쏟아냈다. 일을 잘한다는 것이 이런 배려 없음이라면, 타인의 일상을 짓밟고 해내는 성취가 성공이라면 무슨 소용이냐고 따졌다.
벌써 2년이나 지난 일들이 가슴 안에서 소용돌이쳤고 나는 매번 그 순간으로 돌아가 그때 하지 못했던 말들을 했다. 그게 몇 달이 지속되었던 것 같다.
그때도 동일한 것을 깨달았다. 잊힌 줄 알았다. 하지만 여전히 존재했다. 모든 것들은. 내 가슴 안에서.
그래서였나, 그 뒤로 잊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생겨났다. 큰 역사적 좌절 앞에서, 큰 사고 앞에서, 우리는 세월이 지나도 잊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연스레 잊히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순간은 누군가의 내면 안에서 어떤 작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격렬한 감정은 사라졌다 하더라도 가슴 언저리 어디선가에선 그 일은 조용히 살아 있다.
그러니 작별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매일 하루를 만나고 하루와 작별한다. 오늘의 있었던 일을 겪고 그 일과 작별한다. 흘러가듯 지나가면 이 하루는 없어지는 것 같지만 무엇인가 남겼다.
그래서 옛 현인들이 자기 전에 고요한 기도의 시간을 마련한 건 아닌가 싶다. 하루와 잘 작별하기 위해서.
오늘 하루 애썼던 나와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겪어야 했던 그 모든 일들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 법이니까.
좋은 이별의 방법들을 생각해 본다. 이별의 순간은 어렵고 힘들다. 사람과의 이별이던 반려동물과의 이별이던 아끼던 물건과의 이별이던 그 순간은 뼈아프다. 이별에는 꼭 탓이 있는 것만 같다. 잘잘못을 따지고 싶어 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라도 이 아픔의 책임을 물어야 하기에.
하지만 많은 영화와 책에서 말하지 않던가. 변명하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진솔하게 마주하는 것. 그것이 좋은 이별의 기본자세라고 말이다. 지난 세월, 오늘 하루, 무엇을 겪었든 진실하게 마주하고, 이별의 상처에 신화를 부여하지도 말고, 내가 했던 행동에 큰 의미와 합리화를 부여하지도 말고. 그렇게. 오늘의 하루, 지난 삶과 좋은 작별을 한다. 나의 삶이 흘러갈 수 있도록.
2023년 6월, 정갈한 이별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