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리액션을 찾습니다.
나도 오늘은 결혼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한다. 브런치 트렌드에 맞게.ㅋ 싱글인 나는 결혼은 이제 안 할 거냐는 질문을 받는다. 30대 중반이 넘어가면서부터 종종 들어온 질문인데 나는 항상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가장 적절한 리액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런 질문에는 항상 패턴이 있다. 질문이 시작되면 마치 이미 본 영화처럼 아주 뻔히 들여다보이는 결말을 향해 대화는 흘러간다.
먼저 질문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너 참 괜찮은 것 같은데 왜 없지? 하는 류의 질문이 있고, 하나는 누구라도 만나고 있는지?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지? 에 대한 호기심 어린 질문이다.
두 가지 다 결론이 뻔하게 흘러가는데, 너 참 괜찮은 같은데 왜 혼자지? 하는 질문은 결국 답을 이어가다 보면 뭔가 원인이 있지 않겠냐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뻔한 답변처럼 나이가 많아지면 괜찮은 사람이 줄어든다는 결론으로 흘러가게 된다. 어쩔 수 없이 남자는 어린 여자를 좋아하게 되고, 괜찮은 사람은 이미 임자가 있을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는다.
그럼 나는 그 지점에서 미묘한 것을 느끼는 것이다. 먼저는 내가 나이가 많아서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 매력이 없다는 팩폭을 한번 당하고, 마지막으로 괜찮지 않기 때문에 나도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흠, 분명 첫 질문은 칭찬으로 시작한 것 같은데 의문의 패배감이 드는 것이다.
두 번째도 사실은 같은 패턴으로 흘러간다. 두 번째 질문의 차별점은 노력이라도 해봐라는 제언이 추가된다는 것 정도다. 그러면 어떻게 노력해야 하냐?라고 물으면 확실히 나이가 많아지면 괜찮은 사람은 이미 갔고.. 블라블라로 끝난다. 최악은 제삼자의 리액션이다. 그래서 내가 요새 열심히 소개팅을 한다고 한다. 나이가 많아지면 좋은 기회란 없기 때문에.
그럼 또 나는 미묘하게 판단평가를 받은 듯도 한데 딱히 틀린 말도 아닌 말들을 듣고 있다가 대화가 끝난다. 이래서 어른들 말이 맞는 거다. 야, 소개해 줄 거 아니면 묻지 마!
이런 질문에 어떤 리액션을 해야 할지 점점 모르겠는 것은 사실 이런 질문에는 나에 대한 진정한 관심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질문을 레시피로 구성한다고 하면,
1) 왜 결혼을 안 했는지에 대한 호기심 1 스푼
2) 할 말도 없는데 이런 거나 물어보자 하는 심리 2스푼
3) 딱히 관심은 없지만 재밌는 이야기라도 있을까 하는 궁금증 1 스푼
4) 혼자라는 것에 대한 은근한 짠함과 안타까움 큰 컵으로 1컵
이런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이건 마치 FA시장에서 마지막까지 구단을 찾지 못한 야구선수가 된 기분이다. 선택을 받거나, 선택을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아직 선택이 이루어지지 않은 나는 안타까운 존재가 된다.
그런데 또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럼 미혼인 나에게 어떤 질문을 던져야 적절한가를 고민해 보면 아직은 잘 모르겠다. 어떤 질문이 나에 대한 존중과 관심에서 비롯된 질문인지 알기 어렵다.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고민해 본다면 ‘왜 “라는 의문사가 붙는 질문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 정도다. 사람이 살면서 내 계획대로 모든 것이 되는 일이 있었던가? 왜라고 묻기 때문에 원인을 찾게 되고 그러다 보면 누구나 불완전한 인생을 살면서도,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안 그래도 언제나 판단평가로 헤집히는 내 인생사를 또 헤집게 되는 불상사가 생긴다.
예전에 훌륭한 마케터가 되기 위해 코딩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학생들이 다 있는 앞에서 결혼을 안 한 건지? 못한 건지? 하고 물었다. 나는 공개적으로 내 결혼 유무를 이야기해야 하는 동시에 내 사랑에 대한 서사를 묻는 질문이 무례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건 안 하기도 하고 못하기도 한 거 아닌가? 내 마음이 동해도 상대가 동하지 않을 때도 있었고, 타이밍이 잘 맞지 않을 때도 있었으며, 내가 일욕심이 많아서 좋은 사람을 놓칠 때도 있었다. 그 복잡한 인생사를 내 의지대로 안 한 것처럼 포장도 안되고, 세상에서 가장 못난 여자처럼 하고 싶었는데 못했다고 징징거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질문에는 사실상 요점도 요지도 없다.
그럼 왜라는 질문을 빼고 생각해 본다면, 나는 사랑을 하고 싶은가? 결혼을 하고 싶은가? 정도의 질문은 괜찮을 법하다. 만약 그렇게 묻는다면 사랑은 하고 싶다. 사랑은 인생의 너무도 중요한 요소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죽기 전에 후회하는 것은 더 사랑하지 못했음이지 사랑하지 않고 살아서 다행이라고는 안 한다.
사랑은 삶에 생기를 불러일으키고 기쁨과 충만함을 준다. 또 사랑은 남녀 간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다시 태어나도 우리>라는 영화를 보며 펑펑 운 적이 있었다. 옛 스승의 환생이라고 믿는 꼬마 스님과 노 스님의 이야기다. 인도로 망명온 티베트 스님들의 이야기인데 다큐멘터리다. 나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의 따뜻한 사랑과 우정에 눈물을 흘렸다. 누구를 사랑하던 사랑은 인생 최대의 이슈이며 내면에서 언제나 키워가야 하는 어떤 것이다. 그러니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을 포함해 내 인생의 최대 이슈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결혼을 하고 싶냐고 한다면 그건 모르겠다. 결혼이란 제도보다 사랑이 우선한다고 생각하고, 결혼이 꼭 필요한가 하는 건 아직도 모르겠다. 결혼식을 하고 남녀가 묶이는 동시에 가족이 묶인다. 양가 부모가 함께 투입되고 가족이란 집단을 이룬다고 생각하면 사실 마음이 좀 답답하다.
그 사이에 어련히 따라올 것이라고 생각되는 기대와 의무가 조금 버겁다. 모른 척하고 살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에게 가족이 같은 의미는 아니지 않나? 결혼이란 제도를 잘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건 각자 너무도 다른 인생을 사는 만큼 결혼의 형태나 삶의 형태도 다양화되어야 하는데, 결혼은 여전히 어떤 비슷한 형식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혼에 대해서는 굳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래서 결론은 뭐냐고? 나도 모르겠다. 그냥 이런 류의 질문은 어쩐지 조금은 굴욕적이고 조금은 무례하기도 하며 조금은 찝찝하기도 하고 조금은 슬프기도 한 것 같다. 그렇다고 그런 질문도 하지 말라고 하기에는 나는 사랑에 대해 닫혀 있지 않은데 질문도 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그렇다.
다만, 왜냐고 묻지는 않는 게 좋겠다. 누군가의 삶에서 왜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그리고 만약 그 왜라는 물음이 그 사람의 인생과 외모와 인간됨과 현재를 평가하는 답변이 필연적이라면 더더욱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 만약 그럼에도 왜?라고 묻고 싶다면 적절한 리액션이 무엇인지 답을 알려주길 바란다.
2023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