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 언니의 결혼식에 다녀왔습니다.

짚신이니까 짝이 있다는 박명수 아저씨의 말

by 콩작가

무슨 글을 쓸까 하다가 얼마 전 다녀온 사촌 언니의 결혼식이 생각이 났다. 흠.. 본의 아니게 최근에 자꾸 결혼식에 대한 글을 쓰게 되는군.


외가 쪽 친척 언니가 뒤늦게 짝을 만나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가 놀랐다. 언니는 나와 나이 차이가 그래도 나는 편이어서 내 어릴 적 기억에 언니는 무척이나 엄마 같은 언니였다.


명절에 외갓집을 갈 때면 언니는 내 머리를 빗어주면서 항상 예쁘다고 칭찬을 해줬다. 언니랑 있으면 어쩐지 푸근하고 나를 예뻐해 준다는 생각이 들어서 너무 좋았다. 나는 예전에도 좋아도 좋은 감정을 잘 내비치지 못했으므로 좋으면서도 뭔가 쑥스럽고 부끄러워서 그 상황을 피하기만 했다.


그런 언니와의 추억이 없어진 것은 언니에게도 불운이 닥쳐서였다. 언니가 10대 시절에 가세가 기울고 집안에 불운이 닥쳐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때로 불운도 시기가 좋아야지만 그것이 행복의 열쇠로 연결되는지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학업을 중단하는 시기에 닥친 불운은 재기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연락이 끊기고 시골에서 홀로 살아가는 것처럼만 보였던 언니였는데 지난달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짐작컨대 마음의 상처도 깊었을 언니가 그 상처를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 결혼한다는 것이었다. 언니를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는 삶을 살아온 형부는 좋은 사람인 것 같다고 가족들이 전해왔다.


결혼식장이 너무 멀고 차를 운전하고 가야 해서 고민이 많았지만 축하해 주러 다녀오기로 했다. 운전을 하면서 혼자 ’짝‘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됐다. 언니의 스토리가 꼭 진짜 세상에 자기 짝은 있는 건가 하는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언니의 사랑의 서사는 다 알지는 못하지만, 괜히 운명이란 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조금은 경이롭게, 조금은 설레며 공상을 했다. 짚신도 짝이 있다지 않던가!


짚신도 짝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곧 나는 박명수 아저씨가 무한도전에서 한 말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짚신이니까 짝이 있는 거라고 ㅋㅋ 그날도 피식거리면서 그 생각을 했다. 어쩌면 언니도 짚신으로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짝이 있는 젓가락이나 짚신, 운동화, 장갑 같이 짝이 있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홀로 살아가기도 하는 것을 봐서는 짝이 없는 사람도 있는 거 아니겠나. 그러다가 문득 나는 그럼 조약돌처럼 홀로 있어도 되는 사람으로 태어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짝이란 게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불안이 엄습해 왔다. 혼자일 것이라는 생각은 언제나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것은 나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특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저)’는 책을 보더라도, 인간이 지구상의 독보적 존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사회화가 중요했다고 하지 않나.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하고 현생 인류가 살아남은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집단으로 살아가기 시작하면서부터라는 연구가 있다. 집단생활은 필연적으로 사교기술과 인지능력, 언어, 문화 등 고차원적인 능력을 요구하게 되고 인간은 고도의 지적능력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진화했다는 것이다.


만약 이렇게 우리가 진화된 존재라면 ‘혼자’ 무리에서 떨어져 살아간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생존의 공포를 줄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리고 현대 사회는 공동체가 파괴되고 4인 이하의 가족이 가장 작은 공동체 단위가 되면서 혼자 산다는 것은 정말 ‘혼자’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1인 가구가 늘어나는 것은, 결혼이 사회, 문화, 경제적으로 더 큰 두려움을 양산하는 건 아닌지 봐야 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높아진 생활비와 양육비, 극대화되는 양극화라던지. 혼자가 편할리 없는 인간이 혼자를 택하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한 현상인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할 말은 아니다. ㅋ 나도 사람인지라 혼자일까 두렵다. 늙고 병들어 의지할 곳 하나 없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래서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은 있다. 삶은 진짜 혼자일 것인가 하는 진실성을 고민해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다. 지금 여기 홀로 코인 세탁방에 앉아 글을 쓰고 있지만 내가 사용한 것 모두가 타인의 당연하지 않은 노력들의 집합이다. 하다못해 사소한 물건 하나도 나 혼자 만든 것은 하나도 없다. 대가를 지불해 구입해 쓰는 것일지라도 우리는 함께 짜놓은 촘촘한 그물망에 의지해서 살아가고 있다.


혼자라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정서적 문제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진실성 있게 서로를 연결하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고, 혼자의 힘으로 살아갈 수도 없다. 많은 타인과 뒤엉켜 살아가면서도 혼자임을 고민한다. 왜?라고 물어본다면 정서적 교류의 문제가 남아있다. 그렇다면 깊은 정서적 교류를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지는 한번 되짚어 볼 문제가 아닐까 싶다.


혼자 코인 세탁방에 앉아 나는 연결성을 생각한다. 때로 원수 같지만 그럼에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가족이 있고 그들도 때로 나를 생각할 것이다. 글을 쓰면 함께 읽어주는 친구가 있고, 때로 책을 읽으면서 성장하는 도반이 있다.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때때로 함께 만나 그 고민을 나누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에서는 직장동료와 상사가 있고 요가 학원에는 선생님들과 함께 수련하는 친구들이 있다.


외로운 것은 어쩌면 마음을 더 열지 못한다는 반증일지도 모른다. 가슴을 지구만큼 열어놓고 나면, 나와 같은 사람이 70억명이 존재한다. 거기에 아무 대가 없는 사랑을 주는 반려동물까지 생각하면 어떤가. 세상에 내 자리 하나 없을 것이라는 믿음, 세상에 나만 혼자라는 믿음은 거짓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당신이 짚신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괜찮다. 그리고 나 또한 괜찮다.


2023년 5월 코인 세탁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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