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살아가는 방법

빙빙빙빙 맴도는 영화와 드라마 대사 03

by 콩작가


가끔 그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티베트 고원 같은 황량하고 장대한 산맥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나는 그 길의 초입에 서 있다. 저 거대한 산까지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도 알 수 없다. 과연 저 꼭대기에는 갈 수나 있는 것인지, 한 산을 넘으면 다음 목적지는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일은 언제 끝날 것이며 과연 나는 저 길을 다 걸을 수나 있는 지도 모른다. 그런 막막함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 오늘 쓸 두 영화의 대사는 위로가 되어 줬다.


** 반지의 제왕, 마션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어요. ^^





6.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 (감독: 피터 잭슨, 2001)


프로도: 반지가 제게 오지 않았으면 좋았을 거예요. 이런 일이 안 일어났다면…


간달프: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하지만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우리가 할 일은 주어진 시간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정할 뿐이지.


어릴 때 봤던 영화인데 이 대사가 항상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가 개봉할 때 나는 대학생이었다. 내 기억에 고등학교 친구와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긴장을 느꼈었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던 어떤 일이 나에게 주어지고, 나는 원하지도 않았던 모험을 떠나야 한다. 이 모든 일은 한 번도 꿈꿔본 적도 없는 일이다. 프로도의 어쩐지 슬퍼 보이는 눈 썹 아래 흔들리는 눈빛이 나에게는 어떤 두려움과 불안함을 안겨줬었다. 그 짐이 꼭 나에게 온 것처럼.


그때 나는 이 영화의 내용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반지는 왜 꼭 살면서 한 번도 원했을 것 같지 않은 프로도에게 갔을까? 그토록 간절히 원하던 사람들에게는 반지는 걸어보지도 못할 무게를 지녔으면서도. 어쩌면 너무 간절히 원하기에 가장 무거운 짐이 되고, 함부로 내 손에 쥘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모순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너무 원할 때 잘 되는 법이 없었다. 글 한 줄이 너무 잘 쓰고 싶어서 언어가 세상에서 두터운 커다란 장벽처럼 느껴질 때 나는 밤새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도 잘 되었으면 좋겠어서 애간장이 탈 때 가장 처참한 방식으로 버림받는다. 씁쓸하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많다.


스타가 된 아이돌 중에 오디션에 참여한 언니, 친구, 동생을 따라왔다가 발탁된 경우가 많은 것도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때로 반지를 돌덩이로 볼 줄 아는 마음이 그것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격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즐길 때 더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반지를 목에 걸고 원정을 떠나는 프로도는 간달프에게 묻는다. 이런 일이 안 일어났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고. 프로도의 이 대사 속 반지를 ‘예기치 않은 불행과 사건’으로 치환하면 더 많은 것들이 다가온다.


간달프는 역시 현자였다. 프로도의 질문은 잘못되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반지가 왜 나에게 왔는지도, 어떻게 하다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도 중요하지 않다. 질문의 방향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


이미 일어날 일은 일어나 버렸다. 내 의지와 상관없는 두렵고 불행한 어떤 사건은 벌어졌다. 중요한 것은 나는 이 사건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떤 선택들을 하며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가혹한 운명과 우연의 여신 앞에 할 수 있는 것은 그 일에 대해 ‘네’ 하고 겸허히 받아들인 후 선택들을 이어가는 것이다. 방향과 의도를 세우고, 주어진 시간 동안 계획을 짜고, 한 걸음씩 걸어간다. 그뿐이다.







7. 마션 (감독: 리들리 스콧, 2015)



마크 와트니: 내가 가장 많이 받는 다른 질문은 ​화성에 혼자 남겨졌을 때 죽을 거라고 생각했냐는 것이다.​ 그래, 당연하지. ​자네들도 겪을지 모르니 잘 알아둬야 해. ​우주에선 뜻대로 되는 게 아무것도 없어. ​어느 순간 모든 게 틀어지고 ​'이제 끝이구나'하는 순간이 올 거야. ​'이렇게 끝나는구나' ​포기하고 죽을 게 아니라면 살려고 노력해야 하지. ​그게 전부다. ​무작정 시작하는 거지.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고 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그다음 문제도...​그러다 보면 살아서 돌아오게 된다.


때로 인생은 참 쉽다. 삶이 너무도 복잡하고 어렵다 느끼지만 때로 삶이 숨긴 진실은 아주 쉽고 쉬워서 다섯 살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중차대한 일이든 아니면 아주 사소한 일상의 일이든 방식은 같다. 어떤 것을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고 결정했으면 시작하는 것이다. 내 눈앞에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고, 다음 문제를 해결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덧 나는 목적지에 다다라 있다.


인생이 복잡한 이유는 너무 많은 상상과 걱정을 하는 것이다. 실패할 경우를 상상하고, 안 됐을 경우를 걱정하고 두려움과 불안에 잠식당하고,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함 속에서 우주 미아처럼 떠돈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작은 실패에도 절망만 하고 있다면 과감히 중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란 하느냐 마느냐 둘 중 하나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길고 먼 길을 가고 있더라도 나그네 그대여, 다시 당신의 발 밑을 보라.

저 험준한 산맥도 시작은 당신의 발바닥 아래에서부터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지금 이 한 발을 떼어 보는 것이고,

다음에 할 일은 다른 발을 다시 떼어 그 앞에 대어 보는 것이다.

멀고 먼 험준한 산도 지금, 여기서 시작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


그러니 먼 여정을 앞둔 나그네 그대여, 부디 평안해라.

삶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묵묵히 하면 되는 것뿐이며,

그것들이 모여 이룰 수 없을 것 같던 귀환과 귀향의 길이 되고,

위대한 성공을 이루고, 상상하지 못했던 삶을 만들어 낼 것이니.

부디 오늘 밤은 두려움 없이 깊고 평온한 잠을 이룰 수 있길.

이전 03화용서에 대한 영화 대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