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 1
짧은 직장인의 점심시간에 짧은 독서를 하는 것이 요새의 낙이다. 집에서 싼 샐러드를 먹거나 혹은 바깥에서 샐러드를 사 와서 점심시간에 혼자 조용히 밀리의 서재에 있는 책을 읽는다. 그래봤자 길어야 20분 정도의 독서다. 1시간을 꽉 채워 책을 읽고 싶지만 다양한 변수로 인해 언제나 실패한다. 하지만 막간의 시간에 읽은 책의 몇 가지의 구절이 오늘의 나의 삶을 행복하게 했다. 그 구절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오늘의 독서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삶에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삶의 의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단하고,
대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올바른 태도에서 찾아야 했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인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많은 사람들이 읽은 책이지만, 나는 이번에 처음 읽는 책이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저자의 경험을 통해 삶의 의미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그는 의사로서 유대인 수용소에서 인간이 어쩌지 못할 시련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 심리를 관찰했다.
오늘 읽은 구절은 삶의 의미에 관한 것이다. 수용소에서 절망하며 죽어가는 이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을 확률이 컸다. 인간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어야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면 정신력도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수감자가 세수하고 옷 입는 것을 거부하고, 연병장 나가는 것도 거부하고, 주먹질, 간청, 위협도 효과가 없는 상태가 되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자기가 싼 배설물 위에 그냥 누워 있으려고만 하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곧 죽음을 부르는데, 빅터 프랭클은 한 가지 사례를 들었다. 수감자 중 하나가 2월 말에 꿈을 꿨는데 3월 31일에 전쟁이 종료가 된다는 예언을 들었다. 하지만 약속의 시간이 다가오면서 가능성이 없어지자 3월 29일 그 수감자는 고열에 시달린다. 3월 30일, 그는 헛소리를 하다가 의식을 잃고 3월 31일 사망한다.
저자는 이런 사례를 통해 인간의 정신 상태와 인간의 면역력이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에 대해 말한다. 희망과 용기를 상실한 사람은 병균에 대한 저항력도 떨어진다는 것.
이런 이들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를 줘야 한다. 자신의 삶에 더 이상 느낌이 없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목표를 주고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책에서는 말한다.
그리고 위의 구절을 나는 읽고 또 읽었다. 어떤 부분이 인상 깊었느냐 하면, 내가 살아야 할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중단하고,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는 우리 자신에 대해 매일, 매시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구절이었다.
마치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와 간달프의 대화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반지가 나에게 왜 오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원치 않았던 것을 받아들였을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주어진 시간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뿐이라던 대사처럼 말이다.
결국 시련 속에서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혹은 이 삶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 시련은 나에게 무엇을 배우기를 원하고 있는가? 무엇을 경험하기를 원하는가? 이 시련 속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 중요하다. 무엇에 의미를 두고, 어떤 태도로 이것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런 삶의 질문을 받는 자신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고 사유하고 올바른 답변을 찾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중요하다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는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
다른 것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시련을 당하는 중에도
자신이 이 세상에서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그를 시련으로부터
구해 낼 수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다.
그가 자신의 짐을 짊어지는 방식을
결정하는 것은
그에게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삶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다. 삶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은 포괄적으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일반적인 답변을 제시할 수도 없다. 모든 삶이 다르듯 삶의 의미와 시기, 행동과 태도, 구체적인 상황도 다르다.
하지만 이때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자신에게 닥친 현실의 일은 자신에게 주어진 유일한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누구도 그것을 대신해 줄 수도 없고, 대신 고통을 짊어질 수도 없고, 그 누구도 그 시련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해 줄 수도 없다. 오로지 자신 밖에 없다.
당신만이 유일하다. 당신만이 유일하게 이 시련을 오롯이 받아들여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 그 유일한 사람이라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련을 받아들이는 방법, 어떤 태도로 임할 것인가는, 시련을 짊어지고 갈 당신에게 주어지는 독자적 기회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빅터 프랭클을 말한다. 희망도 미래도 사라진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시련을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사람 또한 있었던 것처럼, 인간이 다시는 경험해서는 안될 고통 속에서도 기회를 찾고 시련 속에서도 인생의 깊은 의미를 찾았던 사람들처럼 말이다.
사람이 자기 운명과 그에 따르는 시련을 받아들이는 과정, 다시 말해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과정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에 보다 깊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폭넓은 기회 - 심지어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도- 를 제공한다. 그 삶이 용감하고, 품위 있고, 헌신적인 것이 될 수 있다. 아니면 이와는 반대로 자기 보존을 위한 치열한 싸움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고 동물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에 힘든 상황이 선물로 주는 도덕적 가치를 획득할 기회를 잡을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결정하는 선택권이 인간에게 주어져 있다. 그리고 이 결정은 그가 자신의 시련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느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기도 하다.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2023년 5월 30일의 점심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