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말을 걸어 온다
퇴사와 이직 사이 2주의 시간
직장인에게 장기간 여행의 여유란 이직하기 전 쉬는 시간이 아니면 얻기가 힘들다. 더 좋은 기회라는 명분, 성장하고 싶다는 욕심에 이직을 선택하고 여행을 계획했다. 지인의 추천과 한정된 일정, 계획 따위 개나 주라지 싶은 게으름의 3박자가 맞아떨어져 생애 첫 패키지여행을 시작했다. 기간은 8일, 낯선 타인과 홀로하는 여행의 부조화가 시작됐다.
홀로, 또 다 같이
패키지여행은 처음이었다. 양곤 공항에 내리자마자 느낀 건 후덥지근한 날씨와 짐 찾는데 거의 1시간이 걸린 상식을 뛰어넘는 공항의 느린 업무처리. 화는 나지 않았다. 어차피 여행이었고, 무엇을 겪던, 어떤 상황이 오건 그 경험을 하기 위해 오는 거니까.
양곤 공항에 모인 패키지 팀은 나를 포함해 5팀 정도였던 것 같다. 모두 50대 후반에서 60대 정도로 3쌍의 부부, 홀로 오신 여자 한 분, 나까지 5팀이었다. 평일 여행에 혼자 껴 있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는 꽤나 이질적이었는지 모두들 힐끗거리는 게 느껴지지만 모른척했다. 늦은 밤 도착했기 때문에 양곤에서는 잠만 자고 바로 바간으로 이동하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홀로, 또 같이 하는 여행은 시작됐다.
바간의 재래시장 냥우 시장 – 너에게 오늘의 첫 행운이었길
첫날 첫 일정은 바간의 재래시장 탐방(?)이었다. 미얀마의 거리는 비포장 도로가 많았고 뿌옇고 노란 흙먼지가 날리는 길들이었다. 론지라 부르는 미얀마 전통 의상을 입는 사람들이 곳곳에 보이고 맑은 하늘에 햇살이 직선으로 떨어진다. 웅성거리는 거리의 소리, 미얀마를 설명해주는 가이드의 목소리, 흙냄새와 섞인 길거리의 냄새. 설렌다. 낯선 땅에 온 실감과 여행이 주는 여유까지 마음속에서 빠듯하게 뭔가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일정 시간 홀로 냥우 시간을 돌아보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재래시장의 모습은 한국과 다른 듯 같은 모습이었다. 좁다란 길을 따라 액세서리, 장식품, 옷가지, 과일, 향신료를 판다. 어렸을 적 갔던 시골의 5일장 모습처럼 따닥따닥 붙어 있는 자판들이 익숙하면서 향신료 냄새와 사람들의 표정, 입은 옷들은 이질적이다. 혼자 천천히 걸으면서 가게 위로 쳐진 장막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과 다양한 오색빛깔 천들, 열대 과일들이 주는 감각들을 음미하듯 걸었다.
“언니 예뻐요. 선물이에요.”
그 잠깐의 시간에 타나카를 얼굴에 바른 아이들이 따라붙는다. 누가 봐도 호객행위다. 분명 발라보면 돈 달라 하겠지 싶어서 필요 없다고 손을 저어 본다. 아이들의 얼굴은 맑았다. 또 한편으로는 이런 일이 자주 있다는 듯 프로처럼 뻔뻔하다.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어떻게 하면 돈 쓰게 할까 궁리하는 게 보인다. 아무런 사심도 없이. 그저 “이건 비즈니스일 뿐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은 행동들. 뭔가 아이러니하면서 웃음이 난다. 순수를 잃어버린 어린아이 같은 감상적인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이들의 모습에는 그냥 일상이 숨 쉬고 있다. 자고 일어나서 내일은 얼마를 팔까. 어떤 마음 약한 관광객을 꼬셔볼까 하고 아침을 먹고 나왔겠지.
예전에 학습지 방문 판매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하루에 정해진 상담량이 있었다. 하루 3번 정도는 현관을 넘어 거실까지는 들어가 학습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와야 했다. 그렇게 해서 팔면 좋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상담이 많다면 유효한 판매 기회가 많다는 뜻이니 적극적으로 상담 횟수를 늘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침에 학습지를 가지고 나와 낯선 도시에서 사람들을 염탐했는데 그때 나도 한 번은 나에게 넘어갈 마음 좋고 인상 좋은 사람들을 찾았었다. 그렇게 ‘앗, 저 사람이야’란 느낌이 오면 접근을 했었다. 이런 마음 좋아 보이는 사람들을 ‘호구’라 부르고 싶진 않다. 사기를 치려고 했던 것도 아니었고 아무리 뻔뻔한 영업맨이라도 타인이 주는 까칠함에 상처는 받는 법이니까.
이 아이들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니 왠지 웃음이 나왔다. 가난을 떠나 너와 나의 재력 수준을 떠나 관광객과 현지인이라는 입장을 떠나 너희들에게는 그냥 일상이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따돌리려고 하는데 타나카가 안 팔리니 미얀마 풍경을 담은 여러 장의 엽서를 주르르르륵 펼친다. 참 끈질기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냥 하나 사줄까 싶기도 하다. 엽서는 집에 장식할 수도 있고 이날 내가 첫 손님일 수도 있으니 잠깐 마음 좋은 관광객인 척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엽서는 얼마야?”
“50불이에요”
“그럼 미얀마 돈으로 얼마지?”
“미얀마 돈 안 받아요. 달러로 주세요.”
하아? 현지 돈은 안 받는다고 말간 눈으로 말하는데 또 웃음이 나왔다. 영약 하다고 해야 할지 수완이 좋다고 해야 할지. 50불은 너무 하다고 했더니 그럼 30불을 달라고 하길래 달러를 줬다. 엽서 몇 장에 3만 원이 넘는 돈이라니. 스스로도 웃겨서 피식 웃고 만다. 국제적 호갱이 여기 있었구먼. 머리를 도리도리 저으면서 아이들에게 “이제 됐지?” 하고 돌아 나온다. 속이 아주 안 쓰린 건 아니지만 이런 마음도 있었다. 오늘 하루 첫 손님, 첫 개시일 수도 있을 텐데 그냥 운수 좋은 출발처럼 생각해 주길 바라는 마음.
값싼 동정심은 아니었고 큰돈도 아니었다. 누군가는 이런 식으로 돈을 벌어들이는 아이들의 습관, 삶의 방식에 대해 토론을 벌일 수도 있겠지만 거기까지 책임져 줄 수는 없었다. 이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어떤 아이는 성실하게 미래를 준비할 수도 있겠고 어떤 아이는 잘못된 인생으로 접어들 수도 있겠지. 그건 가난을 떠나 각자의 삶의 몫이니까. 단지 “오늘 하루 운이 좋았어” 정도로 생각해 준다면 그걸로 됐다.
이렇게 냥우 시장은 호갱의 쇼핑으로 짧게 끝이 났다.
화려한 쉐지곤 파고다, 마차투어 – 아직은 순수한, 아직은 훼손되지 않은
바간은 특이한 도시였다. 특별히 높은 산도 없는 평지에 정말 두세 걸음마다 탑과 사원이 있는 것 같은 도시. 어딜 가나 이국적인 탑들이 눈에 띄고 평지이기 때문에 탁 트인 느낌도 든다. 현대적인 건물이 없는 것 같은 도시. 흙길마다 세워진 사원들이 청명한 하늘과 덥지만 건조한 날씨와 만나서 여유로운 느낌까지 준다. 거대 유적지 안에 있는 기분도 들고 유럽 등 세계 각지에서 온 배낭 여행객들로 자유로운 분위기도 있었다.
큰 사원은 모두 금색으로 지어져 화려했고 마차를 타고 흙길을 걷는 동안에는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 같았다. 옆에 수염 긴 간달프만 있었다면 호빗마을로 쑥 들어갈 것 같은 기분.
미얀마의 첫날의 인상은 나에게 그랬다. 아직은 순수한, 아직은 무분별한 깃발 여행과 개발로 훼손되지 않은 날 것같은 느낌이 살아 있는 나라. 그게 마음을 더 편하게 했다. 길거리의 사람들을 보면서 마차를 타고 귀를 쫑긋거리는 말 뒤통수를 보면서 미얀마 여행을 특별하게 하는 건 바로 그런 점이라고 생각했다.
난민 타워 전망대에서 -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다면
첫날 금색의 화려한 쉐지곤 파고다, 마차투어, 아난다 사원 등을 방문하고 난 후 바간의 마지막 행선지는 ‘난민 타워 전망대’였다. 바간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노을을 보기 위해 올랐다. 아직은 해가 넘어가 노을이 지기 전, 낮게 하늘에 걸려 있을 때 오르니 많은 관광객들이 노을을 보기 위해 모여 있었다.
이미 노을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명당자리는 누군가가 차지했기 때문에 구석에 자리 잡았다. 평지 사이로 많은 파고다들이 보이고 내 양 옆에서는 관광객들이 저마다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주 덥지 않은 날씨에 저녁이 되니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때로는 불어가 들리고 때로는 영어가 들리고 간간히 한국어도 섞여 들려오는 늦은 오후였다. 누군가는 영어로 어딘가 여행하면서 부당하게 당한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며 항의하고 처음 만난 것 같은 다른 관광객은 입술과 미간을 모으고 진지하게 들어준다. 몇몇 가족은 맥주와 안주를 가져와 나눠 먹으며 서있고 어떤 이는 일류 예술가처럼 대포 카메라를 세워 두고 앵글만 뚫어져라 바라본다. (물론 진짜로 엄청난 예술가였을지도 모르겠다.)
웅성거림 안에서 낯설었던 모든 걸 던져두고 나도 하늘만 바라본다. 왜 여행을 하냐고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하지만 언젠가부터 이유를 잘 모르겠다. 첫 해외여행의 설레임이나 첫 비행기를 탈 때의 기분은 언제 느껴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회사를 다니며 중간중간 출장으로, 여행으로 여러 도시를 다니면서는 새로운 도시를 탐방하는 느낌도 많이 퇴색됐다.
그 날 많은 소음들 속에 여러 인종이 섞여 여러 언어들이 들리는 전망대에서 떨어지는 해를 보면서 어쩌면 이런 순간의 기분을 위해 나는 여행을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의 순간일지도 모르고 현실은 여전히 한국땅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지만 그 순간 지긋이 내 안을 바라봤다. 저 노을 속에서 한 번도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자유를 생각했다. 나를 드러내 보고 싶다. 아무런 장벽 없이 오롯이 스스로를 표현하고 받아들이면서 살아보고 싶다. 낯선 것들 속에서 날을 세우지도, 타인이 생각하는 나를 생각하지도 않고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면서 마음에 얇게 둘러진 막은 한 번도 걷어낼 줄 몰랐었다. 타인 안에 깊게 들어가지도 않고 누군가를 깊게 들이지도 않고 나를 내보이지도 않으면서. 그때 모든 게 낯선 풍경과 타인 속에 홀로 앉아 잔잔하고 편안했던 마음속에서 아주 찰나 벽이 허물어지는 기분을 느꼈다. 세워지던 마음의 벽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게 모든 걸 받아들이는 기분. 낯선 모든 사람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상한 기분. 풍경에, 사람의 온기에 녹아들었던 찰나. 우습게도 아는 사람 없이 혼자였던 나는 그 어떤 때보다 평안했고 오롯이 나 자신이었던 기분이 들었었다. 어쩌면 이 한순간을 위해 오늘 여행을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하나로 미얀마 오길 잘했다는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 2019년 1월에 쓴 글입니다. 작가의 서랍에만 넣어둔 글인데 예전 생각에 발행해요. 아쉽게도 2편은 없습니다. 기억을 잃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