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리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긴장감이 감도는 방안의 침묵을 깨뜨린 건 김정훈이었다.
러드야드 키플링의 <만약에> 메시지가 김정훈 자신 마음에 깊은 울림을 전해주자 그의 마음속에는 모태신앙으로 55년간 다녔던 교회에서의 아픔이 아직도 생생히 남아있었다.
"혹시 이야기해도 괜찮다면.... 제가.... 교회에서 겪은 일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의 목소리는 떨려있었다.
윤서은과 다른 독서모임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격려했다.
김정훈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55년동안 한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 교회는 제게 제2의 가정이나 다름없었지요. 하지만 2년 전,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숨을 내쉬었다.
"원로목사님이 은퇴를 앞두고 후임목사님을 정하는 혼란스러운 시기었어요. 원로목사님은 이 교회는 아들에게 물려주지 않겠다고 공표를 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않으셨습니다. 원로목사님은 이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편법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원로목사님이 쓰신 편법은 먼저 아들 목사님에게 작은 교회를 세우게 한 후 이 교회와 합병을 취했습니다. 원로목사님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님으로 기독교방송을 통해서 예수님처럼 사는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목사님의 청렴하고 선한 이미지에 성도들의 마음을 울리는 강력한 메시지에 교회는 점점 부흥이 되었어요. 그렇게 커진 교회는 그 일대를 교회 건물로 채워졌습니다. 많은 성도들은 목사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지만 목사님은 교단의 헌법을 어기고, 편법을 쓰면서 교회 성도를 넘어서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주었습니다. 목사님을 신뢰하고 있던 저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하자 제 자리는 위태로워졌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교회 재정을 담당하던 재무부장이었습니다. 제 자리는 새로운 목사님이 지정한 분에게 돌아갔습니다. 한 마디의 말없이 제 자리는 갑작스럽게 잃고 말았습니다. 너무 혼란스럽고 교회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밀려오던 중 교회 사람들에게서 안 좋은 소문이 돌기까지 했습니다. 제가 교회 제정에 손을 댔다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지자 저는 교회에 치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모태신앙으로 오랜 시간 제 젊음과 시간 노력을 다했는데 저에게 돌아온 건 교회 재정에 손을 댄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있었다. "제가 너무도 존경하는 목사님의 이중적인 거짓말, 그로 인해 저와 친분 있던 교회 사람들로부터 나쁜 사람이 된 제 자신을 감당하기 너무 감당하기 힘들었습니다."
김정훈은 잠시 말을 멈추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저는 점점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기독교 신앙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존재한다면 교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 한순간에 사람들이 이렇게 돌아설 수 있을까? 내가 55년 동안 믿어온 것들이 모두 헛된 것이었을까? 하는 의문들이 제 자신을 괴롭혔습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독서모임원들을 바라보았다.
"결국 저는 교회를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했어요. 제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신앙이 무너지면서, 제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김정훈의 눈에는 아직도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지금도 저는 매일 밤 기도합니다. 하지만 그 기도가 누구에게 닿는지, 혹은 정말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시는지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이 독서모임에 참여한 것도 제 마음의 혼란을 해결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끝나자 방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윤서은과 다른 참가자들은 김정훈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는 듯했다.
윤서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김정훈 선생님, 정말 아픈 경험을 하셨군요. 신념과 공동체를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잘 알 것 같아요. 하지만 선생님께서 진실하고 용기 있게 행동하셨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깊은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 같아요."
다른 독서모임원들도 김정훈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김정훈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그의 표정에는 눈빛에는 여전히 혼란스러움이 남아있었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희망을 찾아가는 듯한 빛이 서서히 감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