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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앨리스 Dec 15. 2021

해안 둘레길, 온도에 잠기다

- 타일러 라쉬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읽고

타일러 라쉬 두 번째 지구는 없다(FSC 인증 친환경 인쇄 표지)


조선 효종 4년, 나가사키로 향하던 네덜란드 상선이 조선 바다 앞에서 좌초되어 많은 네덜란드인이 죽었고, 살아남은 자들은 십수 년간 조선의 노예가 되었다. 조선을 탈출하여 일본으로,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가기까지의 이야기를 토대로 동인도회사에 13년 28일간 월급을 받아내기 위해 작성한 글이 바로 우리가 다 알고 있는 하멜표류기이고 상선의 서기였던 하멜이 그렇게 조선 땅에 처음으로 발을 디딘 곳, 현재 제주도의 서귀포 산방산 앞 용머리해안이다.


하멜 표류기 1668년 오리지널 초판본 디자인
스페르베르호(하멜상선)와 산방산


평소 지질과 광물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점이 여행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그래서 찾아갔던 곳. 하지만 기후위기의 현실을 맞닥뜨리게 된 곳이기도 했다.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산방산과 용머리해안의 암질은 화산암(마그마)과 화산쇄설암(화산재)으로 위치도 가까우면서 다르기 때문에 해수면이 높아지고 거센 바람과 해일이 일고, 폭풍우가 부는 등의 풍화작용에 의해서 조면암인 산방산이 깎여나가는 속도와 응회암인 용머리해안이 깎여나가는 속도는 분명 차이가 있다.


잔잔해 보이지만 풍랑주의보로 입장 금지된 용머리해안


세 번을 도전했었다. 과거 하멜이 보았을 그 해안 둘레길을 걷는 것을. 세 번 모두 만조를 피해 갔는데도 입장 제한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바람이 조금만 거세져도 바닷물이 용머리해안을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낙석 문제도 생겨 예전처럼 안전하지 않다. 이렇듯 아주 오래된 화산재가 아무리 단단하게 굳어졌다 하더라도 계속되는 해수면 상승은 침식을 가속화시킨다.


제주가 원래 바람이 많은 곳인 것을 생각해보면 제주도에 살지 않는 내가 도대체 언제 둘레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가 어렵다. 올 8월에도 산방산 앞까지 갔지만 통제되었다는 담당자 목소리만 이틀 연속으로 듣고 돌아왔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용머리해안의 수십 년 전의 사진과 현재의 사진을 찾아 비교해보면 해수면이 얼마나 상승하였는지 알 수 있고, 이대로라면 내가, 그리고 우리가 용머리해안 둘레길을 걸어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제주도의 해수면 상승 정도가 지구 해수면 상승 속도 평균의 3배가 넘을 정도로 빠른 속도라는 사실과 이 용머리해안이 한 해에 200일이 넘게 통제되는 해도 있다는 사실이 기후위기 현실을 말해준다.


기후변화 홍보관 앞에서 바라본 용머리해안


이런 기후위기상황을 알리기 위해 용머리해안 가까이 기후변화 홍보관이 있다. 홍보관에서 해설 봉사를 하시는 어르신께서 하시는 말씀과 타일러가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내용은 전혀 다르지 않다. 우리에게 위기가 닥쳐와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태평하게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 더 적극적인 관심과 사고의 전환 그리고 실천하는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구는 지금 이 순간도 불타오르고 있다고…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것은 산림이 아닌 바다이다.


물론 재활용품을 줄이고, 음식쓰레기 양을 줄이고, 에어컨 사용과 비닐 사용을 줄이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크게 관심은 없지만 남들이 하니까’ ‘귀찮지만 해야 한다고 하니까’ 라며 행동하기 전에 지금의 안일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앞서서 생각이 바뀐다면 뒤이어 오는 행동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행동의 방향성 자체가 달라질 것이고 그런 개개인의 변화들이 모여 겉핥기 식이 아닌 진정한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가 생길 것이며, 결국 법과 제도가 바뀌게 되면서, 기업 윤리의식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타일러의 말처럼.


마이클 폴란은 우리가 탄소를 흙으로 돌려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많이 수고스럽더라도 토양을 식물로 덮고 작물다양성을 높이며 퇴비를 만들고 신중하게 필요한 만큼 방목하는 방법으로 대기 중 탄소를 흙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탄소가 풍부한 토양은 거대한 스펀지가 되어 흡수와 배출에 탄력성이 생겨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되는데 이 과정은  이미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중요한 핵심  방법이다. 그렇게 돌아갈 수 있도록 요구하는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여러 매체를 접해보고 여러 책을 읽어보아도 우리의 행동 패턴은 더 쉽고 간편한 것을 추구하고 나중에 돈이 더 많이 드는 것을 모르고 경제적인 방법이라는 착각과 함께 환경오염을 덜 염두에 두는 방향으로 오랜 시간 해양과 토양오염을 부추기며 움직여왔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p. 105




미국인 타일러가 한국인인 우리들에게 기후위기 앞에서는 국경은 무의미하다고, 지구와 우리 모두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시리아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며 우리도 환경난민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우리가 소비자로서 지구를 지키기 위한 ‘요구’를 할 것과 우리의 지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화가 나서 요구해야 바꿀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오늘, 내일, 모레, 글피에 살아갈 곳이 있는 것이다. p. 111




타일러가 유년시절 가족들과 함께 타던 자연설 스키장과 친구와 도서관을 향하던 길에 보았던, 무섭기도 하고 아름답기도 한 신비로웠던 오로라를 상상해보면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나’ 같은 사람들이 기후변화에 민감하지 못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면죄부는 될 수 없다.


단순히 용머리해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또 다른 곳들이 바다에 잠기고 침식이 가속화되어 내 생에 또는 가까운 후대의 생에 바닷속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 무서운 상황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무엇이 그리 심각하냐고 비웃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들이 힘들게 닦아 놓은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에 동참해야 한다. 하나밖에 없는 지구와 우리를 위해.




그 간 머리로는 알면서도 환경문제에 안일했던 스스로를 반성할 수 있게 해 주고, 환경문제와 관련된 더 많은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 준 고마운 책.


그래서 나에게 스스로 각성하라고 쓰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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