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안 좋다. 새로운 책을 읽었고, 마음이 혼란스럽다. 솔직히, 책을 읽어서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이미 혼란스러운 마음에 트리거가 된 게 이 책이 아닌가 싶다.
가끔이 아닌 자주, 나라는 인간은 어떤 정체성에 속해 있는지를 생각한다. 남자이고, 이성애자이고, 아시아인인 그런 정체성. 다만, 이러한 정체성이 나의 성격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이런 경우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내 인간됨을 정체성으로 귀속시키고 싶지는 않다. 정체성이 곧 도덕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런 정체성은 포기하겠다. 그 정체성이 부도덕해서 버리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커피를 마시다가 이렇게 나 스스로에게 머리 아픈 얘기를 해도 되는가. 아니다, 차라리 커피를 마실 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 같다. 혼자 밤에 이런 생각을 하면 끝없는 수렁에 빠지고 한없이 우울해지니까. 커피를 마실 때엔 적당히 눈치를 보고, 커피의 양에도 끝이 있어 언젠가는 생각을 끊고 나가야만 하니까. 그래, 그게 더 합리적이다.
커피 한 잔을 위한 제한 시간, 아쉬울 때도 있겠지만 어떤 날에는 그게 고마울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