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앙코르
벌써 오월의 끝, 한 해도 절반 가까이 흘렀다. 오월이 끝나가는 건 꽤나 기쁜 일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는 게, 정말로 타성에 젖은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이곳은 클래식한 느낌의 커피맛이 느껴져서 자세히 보니 1인용 칼리타 드리퍼를 쓰고 있다. 사실 커피 맛을 결정하는 게 드리퍼인가 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고 싶긴 하지만. 무언가를 완성하는 데에는 개별적 요소가 한 데 뭉쳐서 결정되는 것이 대개 많으니까. 아, 커피 한 잔 마시는 데 또 헛생각을 하느라 책을 안 읽게 된다.
조금씩 바쁜 일이 늘어나고, 커피와 함께 책을 읽으며 쉬는 시간도 줄어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시간이 줄면 그만큼 돈을 벌 기회가 늘어나고, 결과적으로는 더 좋은 커피와 책을 즐길 기회가 보완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왜 나는 당장의 아쉬움을 포기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는 걸까. 과거에 얽매인 인간임과 동시에 정지된 상태의 관성에도 세게 붙들린 게 나라는 인간인가 싶네.
매번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바보 같은 현실을 마주하며, 어떻게든 나를 정당화하고 싶어 하는 이 모습. 정말 좋지 않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의 이런 모습은 때때로 낭만처럼 보이거나 (배우가 누구냐에 따라) 멋있게 보이기라도 하지. 현실의 내 모습은 그저 우습다. 그렇다고 내가 그 소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에 빙의된 것 마냥 사고하고 있지는 않은데 말이다.
문제의 원인을 생각하려니 그냥 포기하는 게 더 이득인 것 같아 잠시 생각을 멈춘다. 포기하는 게 더 편해진 내 모습을 보니 예전의 체력과 마음을 많이 상실해버린 것만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