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님을 믿어 봐요

키 큰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by 미진

유리창에 붙여진 오래된 필름지에 고급의류 수선, 명품 전문, 가죽 모피 취급이라는 글자가 고딕체로 커팅되어 있다. 문을 밀고 들어가면 부엉이 도어벨이 머리 위에서 울렸다. 검은색 사각 뿔테 안경을 낀 앙 선생은 무지갯빛 자개가 상감된 재봉틀을 리듬 있게 밟고 있었다. 모두 숨죽여 그의 예술을 지켜볼 뿐 함부로 입을 열지 않았다. 드륵 드륵 재봉틀 소리가 멈추면 코 중간쯤 걸려있는 굵은 뿔테 안경을 치켜올리며 그는 비로소 알은체를 했다.


명동에서 수십 년간 의상실을 운영하며 유명 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했던 앙 선생은 지금도 그를 찾는 단골들을 위해 옷을 만들었다. 입구에 있는 얼굴 없는 마네킹에는 그가 만든 옷, 만들고 있는 옷이 늘 입혀져 있었다.

“승민 엄마, 이런 원피스 하나 만들어 줄까. 명품 카피야. 백화점 가면 똑같은 게 백만 원도 넘어. 입고 싶으면 말해.”

예술혼을 담은 작품을 만드느라 앙 선생은 동네 주민들이 맡긴 옷의 수선 날짜를 놓치기 일쑤였고, 주민들은 확인할 바 없는 그의 이름값을 치르느라 값비싼 수선비를 지불해야 했다.



싸고 은밀한 세탁소를 원한다면 다음 집으로 가보자. 단 혈압이 높은 자, 비위가 약한 자는 삼가야 한다. 동네 뒷골목에 이런 세탁소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간판도 없이, ‘세탁’이라는 두 글자가 삐죽 적힌 뜯긴 공책 한 장만이 붙어 있다.


영국 작가, 로알드 달의 등장인물은 과도하게 길쭉하고 마르거나 부풀어진 공처럼 터질 듯 뚱뚱하다. 이름 없는 세탁소 아주머니는 로알드 달이 점점 말라서 마침내 꼬챙이가 되었다고 말할 때 묘사하는 바로 그런 모습이다.


조금씩 길어지며 좌우는 좁아지고, 좁아진 만큼 위아래로 길게 늘어났다. 그렇게 늘어난 선은 마침내 그 길이를 감당하지 못해 살짝 굽어졌다. 골목 어귀에 서있는 아주머니가 조금 더 빛을 씹어 먹고 한껏 미소를 짓는다면, 그럴 수 있다면 우리는 아주머니를 가로등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어둠을 밝히는 가로등의 얼굴을 보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확인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아주머니는 느리게 실밥을 뽑고 느리게 재봉틀을 돌리고 느리게 다림질을 했다. 성격 급한 고객이라면 누구라도 화병이 날 것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정말 이상한 곳이니 절대 가지 말라고 괴담을 늘어놓을 것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버리지 못하는 사람처럼 가게는 쌓인 옷들과 묵은 살림살이로 너저분했다. 마주 보는 벽의 중간쯤에는 “여기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이라는 문구와, 얇은 붓펜으로 그린 예수님의 기도 손이 담긴 액자가 비스듬히 걸려 있다. 액자 하나 반듯이 걸 수 없는 것인가. 왼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진 액자는 사선이어야 할 기도 손이 마치 하늘을 향해 삿대질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열린 문으로 가톨릭 케이블 방송이 흘러나왔다. 젊은 신부의 레와 미를 오가는 저음만이 좁은 골목을 메웠다. 주인 없는 가게에서 손님들은 제 일감을 찾아 했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면 아주머니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왔다.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지요.”


정말 미안한 건지 아닌지, 아주머니는 느릿느릿 쌓인 짐 꾸러미 사이를 돌고 돌아 재봉틀 앞에 앉았다.


작업대가 점점 높아져 갔다. 그 위에서 옷의 치수를 재고, 공중에 매달린 다리미를 당겨 수증기를 칙칙 뿜고 다림질을 했다. 내가 처음 이사 왔을 때는 허리쯤이었던 작업대는 점점 높아져 가슴 언저리까지 우뚝했다. 한 장씩 펼쳐놓은 신문지 위로 다음 신문지가 덮였다. 이런 상태로 몇 년이 지나면 아주머니는 들어오는 손님의 얼굴을 못 본 체 대화를 하거나 삥 돌아 나와야 할 것이다.

역시나 아주머니는 맡긴 지 한참이나 지난 된 옷을 아직도 고쳐놓지 않았다. 깜빡 잊으셨단다. 놀랄 일도 아니다. 핸드폰을 보며 기다리는 내게 아주머니가 말을 건넸다.

“성모님을 믿어 봐요. 성모님은 우리 몸과 마음에 묶인 매듭을 다 풀어주시거든요.”

지하철 통로에서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남자나 정류장 횡단보도 앞에서 검은색 옷에 착화감 좋은 신발을 신고 ‘인상 좋으십니다.’라고 말하는 여자의 목소리는 익숙하다. 하지만 세탁소 아주머니가 건넨 한마디는 좀 낯설었다.


“저 교회 다니는데요.”


“그렇구나. 내가 성당에 다니는데 참 좋아서. 그간 맺힌 매듭이 어찌나 많았는지 풀려고 가진 애를 써도 안 풀리더니 지금은 그게 다 어디 갔는지, 성모님께 기도를 한번…….”


드르륵 재봉틀 소리가 아주머니의 목소리를 덮었다. 잠시 후 아주머니는 수선된 바지를 건넸고 나는 몇 년째 오를 줄 모르는 수선 값을 지불했다.


아주머니의 눈에 불뚝 튀어나온 내 마음속 매듭이 보였던 걸까. 풀기도 싹둑 자르기도 수십 번, 매듭은 또 엉켰다. 손끝으로 가슴팍을 느리게 쓸었다. 한 번, 두 번. 좁은 골목길을 빠져나오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활짝 열린 문에 아주머니가 몸을 반쯤 내밀고 서 있다. 나를 배웅해 주는 건가. 키 큰 가로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