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겨울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
누군가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왔다.
산 정상을 탈환한 듯 밀린 숨을 작정하고 내뱉는다.
그러고는 바람 빠진 자전거에 공기를 펌프 하듯
머릿속 구석구석 부족한 산소를 주입한다.
시원하다. 맑다.
삐죽이 솟은 파란 조형물이 하얀 눈 속에 빛났다.
길쭉하게 이어진 단조로운 곡선이 미끄러지듯 잘 빠졌다.
대형 병원에 버젓이 서있는 걸 보면 유명 작가의 작품이겠다.
"이 작품이 뭐를 형상화했는지 알아?" 남편이 묻는다.
이걸 맞추라는 건가, 짜증이 밀려왔다.
"글쎄, 뭔데?"
"음..... 제목은 시간의 방향이고 눈물을 형상화했대"
장례식장에 걸맞은 작품이다.
눈물이었구나.
눈물
최재은 작가- 시간의 방향
공부방을 하던 내가 몇 해 만에 방학을 했다.
그 방학이 시작되는 첫날 엄마는 돌아가셨다.
평생 딸들에게 짐 지우지않겠다고 아등바등 사시더니
죽음의 날도 골라골라 가셨다.
깔끔한 양반.
누가 보면 지역 유지가 돌아가신 줄 알겠다.
신세 졌다는 사람, 은혜를 입은 사람은 어찌나 많은지
그 흔한 학교 이름, 회사 이름 박힌 영혼 없는 조화는 없지만
엄마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배우자를 만나고, 취직을 하고,
가난을 모면하고, 자식 등록금을 대고,
굶주림을 면하게 된 수혜자들의 깊은 애통함이 있었다.
시골 삼촌들과 이모들은 돌아가시기 전 당신의 자식들에게 말했단다.
더 이상 시골에서는 먹고살기 힘드니 서울 가서 막내 이모를 찾으라고
너희를 거두어줄 거라고
그렇게 한집에 다섯 여섯 되는 오빠, 언니들은 하나씩 엄마를 찾아왔다.
하나를 먹이고 입혀 시집보내고 취직시키면
그 동생이 또 그 동생이 이모집 문을 두드렸다.
오늘도 사촌들이 진을 치고 앉아 엄마를 추억한다.
미진아 "너 왜 화장 안 하니?"
"어, 해야 되나?"
"그래야지. (아들도 없는데 산소를 어찌 관리하려고)"
상주 대기실로 들어가 거울 속 얼굴을 본다.
초췌하다 못해 몰골이 추레하다.
가방 속 파우치에서 분과 립스틱을 꺼내 예를 갖춘다.
대기실을 나오는데 사촌 언니들의 큭큭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너 화장했어?"
"화장하라며"
울 엄마는 이런 나를 두고 어찌 눈을 감았을까.
모지리 나를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