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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진 Jul 12. 2021

단순 무식하면 생기는 일

생각 좀하자.

세월의 유수한 흐름을 타고 뛰놀던 내가, 하루에도 열두 번 엎어지고 자빠지던 내가 소리 소문 없이 고요해지고 있다. “별일 없어. 늘 그렇지. 뭐.” 이런 말만을 되풀이할 뿐이다. 물론 어린 시절, 나는 간신히 숨만 쉬어 존재감을 나타내던 조용한 아이였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연탄불 위의 굳게 닫힌 조개가 입을 벌리듯 마침내 입을 열었고 그 후 조금씩 나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어 어깨를 들썩거리곤 했다. 물론 알아차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아이들은 조용하면 사고 치는 거라던데, 40대를 끝으로 공식적인 양육을 마친 나는 다시 어린 시절로 회귀한 듯 조용한데 사고도 치지 않고 있다. 늘 무슨 일인가를 새롭게 도전했던 내가 일정한 패턴을 유지한 채 반복적인 삶을 살고 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무슨 일을 피해야 하는지, 어떤 일을 시작하면 얼마쯤 있다가 포기할지를 다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일까. 이제 되는 것, 가능한 것, 할 만한 것, 나를 성장시킬 것만 선택할 수 있는 안목이라는 게 마침내 장착된 걸까. 


이전의 나는 생각과 동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었다. 운동해야지 생각하는 순간, 바로 옷을 걸쳐 입고 피트니스센터에 가서 등록을 했다. 배우고 싶은 것,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당장 알아봤다.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나요? 

pexels


지금도 아찔한 사고뭉치 일화 하나가 떠오른다.

영어유치원과 초등부에서 근무할 때였다. 금요일 퇴근길, 피곤하면 재발되는 치질이 계속 신경 쓰였다. 결근을 하려면 대체 교사를 알아서 섭외해야 하고 미리 학부모님께 안내 노트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교사들끼리 상부상조하기도 하지만 번거로워 급한 일이 아니면 가급적 결근하지 않았다. 지역 커뮤니티 카페와 동료 선생님들에게 근처의 항 외과를 급히 추천받았다. 퇴근 후,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은 병원을 찾았다. 마지막 외래 손님이었다. 간호사님들이 이미 접수장을 치운 후였다. 


의사 선생님은 수술을 권했고 간단한 수술이지만 링거를 맞고 한 시간 정도 경과를 보고 가야 한다고 하셨다. 다행히 외핵 제거만 하는 것으로 통원치료가 가능했다. “지금 해주세요. 제가 평일에는 할 수 없어요.  월요일에 출근해야 해요.” 그렇게 고통스러운 상태도 아니었고 긴급을 요하는 병도 아니었지만 나는 당장 해결하고 싶었다. 수술 대기를 하며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차가운 수술대에 올라갔다. 그 순간 나의 선택이 매우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부분 마취를 했는데 그게 잘 안됐는지, 생생한 거대 통증이 찢어질 듯 나를 가격했다. 순간 ‘이게 무슨 마취야. 마취라며 ‘하고 비명을 지르고 뛰어내릴 뻔했다. 이렇게 아픈 거면 말을 해주지. 엉엉 통곡을 하며 수술대에서 내려왔다. 입원실 침대에 누워 뒤늦은 후회를 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울면서 한동네에 사는 친구 정실이에게 전화를 했다. “나 수술했으니까 당장 와줘. 엉엉, 여기가 어디냐 하면, oo 항 외과인데 밖에 00 초등학교가 보여. 꺼이꺼이.” 링거를 다 맞고 좌욕 실에서 좌욕을 하고 입원실에서 한 시간을 쉬다 퇴원했다.

pixabay

정실이는 차량 좌석을 따뜻하게 데워놓았다. 나를 차에 태운 우아한 그녀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동원해 내게 찰진 속사포 랩을 했다. 그 어떤 욕을 먹어도 싸다고 생각했다. 엉덩이는 따뜻했고 살았다는 안도감으로 친구의 욕은 달기만 했다. 그 후 상처가 아물 때까지 나는 미역국을 먹어야 했다. 절대 괄약근에 힘을 주게 만드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간 배변 시 수술 때와 맞먹는 크나큰 고통을 맛볼 수 있다. 이걸 말로 설명할 수도 없고. 암튼 배변을 쉽게 해 줄 수 있는 음식을 먹으란 얘기다. 다행히 주말 내내 쉬고 월요일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생각 좀 더 해볼게요.

그렇게 무모하던 내가 이제는 모든 게 조심스럽다.  ‘내가 하면 얼마나 하겠다고. 또 작심삼일이 되는 건 아닐까. 맞아.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그렇다고 손 놓고 나를 방치한 건 절대 아니었다. 늘 무언가를 했다. 그 방향성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영어공부도, 일도 다 그랬다. 제대로 한 것도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 이건 했다는 건가 하지 않았다는 건가. 참 규칙적으로 꾸준히 열심히 했고 또 열심히 하지 않았고 또 열심히 했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생긴 나와의 대화는 끝이 없다.

pixabay

여름이 깊어간다. 책을 읽고 매력적이 문장에 취한다. 몽롱하다. 이런 문장을 쓸 수 있다면, 나를 내려놓고 한 단어, 한 문장, 한 단락을 짓는다. 지겨운 그놈의 밥도 매일 짓는데 좋아하는 글을 매일 짓지 못할까. 조용히 그렇다고 사고도 치지 않고 글 짓는 생활에 스며든다. 그 순간 마음의 부산함은 깨끗이 정돈된다. 관계의 번잡함도, 자식 걱정도, 다 올라도 오르지 않는 신기한 우리 집 집값도 잊고 나는 나에게 몰두할 수 있다. 나는 마음 청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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