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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r 06. 2018

우울증 환자를 위한 실전 매뉴얼(2)

걷는 혹은 누워있는 방법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거나 없을 때 모두)


준비물: 입

가져가면 안 되는 것: 이어폰


나는 나를 좋아한다.
나는 내가 예쁘다고(잘생겼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당하다.


(이 세 문장을 암기해서, 걸을 때마다 계속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걷는다.)  


*주의: 너무 큰 소리로 말하면서 걷다보면 현재의 당신보다 더 많이 정신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으로 보일 위험은 있다...-_-


  우울증 환자는 그냥 걸어서도, 그냥 누워있어도 안 된다.  밑도 끝도 없는 장래에 대한 불안와 과거에 대한 후회, 아무 이유도 없이 항상 달려있는 우울한 기분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지금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이럴 때 챈팅(chanting) 명상이 도움이 된다.


  대부분의 명상 방법들은 현재에 집중하게 도와준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에게 있어서 문제는, 가만히 앉아서 내면을 성찰하는게 오히려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우울증 환자는 병 때문에 부정적인 사고와 자기혐오로 내면이 너무나 황폐하다.  이런 내면을 집중해서 들여다보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음악을 들으며 가만히 앉아서 '현재에 집중해야지'하는 부담을 갖고 명상하는 것보다는, 밖으로 나가 걸으면서 챈팅을 하는게 더 효과적이다.


  챈팅 명상은 어떤 좋은 말이나 구절, 주문을 직접 소리를 내면서 말하거나 또는 들으면서 이루어지는 명상이다.  정해져있는 기도문을 소리내어 읽거나 암송하는 것도 챈팅 명상의 일종이다.



  그럼 우울증 환자에게는 어떤 구절이 효과적일까?  


  우울증 환자의 가장 큰 문제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면 사람은 어떤 불행이 닥쳐도, 어떤 슬픔이 찾아와도 이겨낼 수 있다.  세상이 다 무너져도 자기 자신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 무너졌기 때문에, 세상이 무너지든 세상을 다 가지든 상관없이 불행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가끔 자신이 우울증이라고 고백하는, 소위 '잘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벙찔 때가 있다.  아니, 나는 저 직업을 못 가져서, 저 위치에 못 올라가서 지금 불행하고 나 자신을 미워하고 있는데, 다 가진 저 사람은 왜 우울증이 오지?  배부른 놈, 나쁜 놈, 거짓말쟁이.  이런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니, 서울대 갔음 됐지, 판사, 검사, 의사 다 됐음 됐지, 뭐가 우울해?


  그래도 그 사람은 진짜 우울하다.  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까.  어떤 위치에 있든, 무엇을 가졌든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게 된 사람은 삶의 이유를 잃고 살아갈 힘도 잃게 된다.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은 보이지도 않는다.  큰 불행을 견딜 힘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운동화를 신는 것조차 힘겨워진다.  실패나 좌절, 패배가 없고 주위 환경이 평탄하더라도 삶이 행복하지 않다. 


  사실 지금 우울증에 빠져있는 당신에 대해서도 똑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사지 멀쩡해, 아직 큰 병도 없어, 젊어, 대학도 나왔어, 다 있음 됐지, 뭐가 우울해?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아주 부정적이고 냉철한 이성으로 생각해봐도... 실제 그렇지 않은가?  지금의 당신을 부러워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의 핵심은 그거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는 거.      

     

(자기 암시는 처음에는 이렇게 작고 연약하지만, 나중에는 바위를 갈라놓을 힘을 내게 된다.)


  큰 불행이 닥쳤을 때 무너지고 끝내 일어나지 못한 경우든, 무수한 작은 부정적인 경험들이 쌓여 우울증적 사고가 형성된 경우든,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는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지금 생각할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래서 이 구절을 고른 것이다.


나는 나를 좋아한다. 
나는 내가 예쁘다고(잘생겼다고) 생각한다. 
나는 당당하다.


  자기 암시는 생각보다 큰 힘을 갖고 있다.  


  초등학교 때 시험 성적이 안 좋게 나왔던 일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안 좋을 것도 없었다!  세 개 틀린게 뭘 대수라고.-_-  하여튼 그때부터 문제였어... 그때부터.  우울증 싹수가 노랬던 나란 인간...)  하지만 당시 유행하던 '올백'을 맞지 못했다는 건 그때의 나로서는 견딜 수 없는 수치였고 세상 무너지는 고통이었다.  그리고 우리 아빠는 그 이름도 찬란한 성적지상주의자, 행복은 성적순이었어요, 붕어빵 장사를 해도 서울대 가고 나서 해라 형 아버지였다.  나는 아빠한테 당연히 한소리 들을 줄 알고, 그리고 아빠가 뭐라 안 해도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다는 기분으로 풀이 죽고 화도 나고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아빠는 전혀 화도 내지 않고 웃으면서 잘했다고 하는게 아닌가.  아빠는 진심으로 기쁘다고.  아빠는 그날 드라이브도 시켜주고 평소 비싸서 잘 가지 않는 레스토랑에도 데려가서 계란 후라이를 얹은 함박 스테이크를 사주셨다.  집에 돌아올 때쯤 내 머릿 속에는 우울한 감정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아빠의 '연기(?)'는 완벽해서 나는 아빠가 세 개 틀린 걸 진짜 좋아하는구나, 이 정도 틀려도 잘한 거구나 하고 진심으로 믿었다.


  내가 세 개를 틀리고도 '나는 잘했다!'라고 믿은 것.  아빠가 무대를 제공하긴 했지만 이것도 일종의 자기 암시의 하나이다.  내가 그렇게 믿자, 나는 정말 괜찮았고 기분이 좋았다.  


(사진 출처: https://story.kakao.com/_kCwk28/dAch6fSNl40)


*집밥 백선생 함박 스테이크 사진 투척~  출처를 따라가면 레시피도 소개되어 있다.  이거 해먹어봤는데 진짜 맛있다!


  긍정적인 경험은 이런 자기 암시를 더욱 강화해준다.  하지만 입시 실패, 취직 실패, 해고, 직장 다녀도 번아웃 상태, 독박육아, 가족이나 친구의 죽음, 질병 등등 온갖 고통에 시달리는 우울증 환자가 긍정적인 경험을 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울증 환자는 더더욱 부정적인 사고회로 속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다.


  결론은, 스스로 자기 암시를 하는게 현재로서는 최선의 방법이다.


  그렇다고 어떤 책에서 본 대로 '나는 나를 사랑해요', '나는 최고에요' 이런 말들을 사방 벽에, 천장에 붙여놓고 10분에 한번씩 거울을 들여다보며 막 웃으면서 '나는 예뻐요'하려니 토가 나왔다.  나는 나를 사랑하지도 않고, 나는 최고도 아니고, 나는 예쁘지도 않은데 거짓말을 강요하고 억지로 웃는 건 오히려 나를 더 우울하게 했다.  내가 얼마나 부족하길래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이 방법은 부정적인 사고 회로를 극도로 자극해서 '나 안 사랑하는데, 너 병신이야, 너 못생겼어' 이런 생각이 튀어나오게 만들었다.  게임오버.



  그래서 신중하게 고른 문구가 이거였다.  나는 나를 좋아한다.  '사랑'같은 추상적인 단어는 쓰지 말자.  나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나무들을 좋아하고, 향기로운 커피를 좋아하고, 창가에 비치는 햇살을 좋아한다.  구체적인 어떤 대상을 떠올리며 '좋아한다'고 말하듯이, '나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우울증 사고 회로가 작동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건 사실이다!  좋아하니까 안 죽고 살려고 발버둥치고 이런 글도 찾아 읽고 있지.  사실이니까 거부감 느낄 필요가 없다.


  나는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다.  이것도 거짓말이 아니다.  나는 예쁘지 않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내가 예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건 내 자유니까! 그리고 사실이기도 하다.  거울을 들여다보며 내 외모가 괜찮다고, 나 예쁘다고, 나 잘생겼다고 생각한 순간이 살면서 단 한번도 없었을까?  아주 가끔이라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비록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피폐해지긴 했지만 그 밑에는 아직 괜찮은 내 외모가 남아있다.  그래서 이것도 패스.


  나는 당당하다.  사실 이건 맨 첫날에 생각난 문장이 아니었다.  나는 운동을 하기로, 다이소까지 걸어가서 물건을 사오기로 결심한 그날, 걸어가면서 앞의 두 문장을 입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자기 암시를 했다.  그러다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다음 날,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럽게 처음 두 문장이 입속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더니 갑자기 나도 모르게 덧붙여진 문장이 '나는 당당하다'였다.  이 말은 그냥 내 마음속에서 툭 나온 말이다.  나는 당당하다.  자기 암시를 하면서 하루 걸은 것만으로도 나의 일부라도 회복이 되었나 싶어서 뭔가 가슴이 뭉클했다.  그렇다, 나는 당당하다.  비록 우울증때문에 가족들을 걱정만 시키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나지만, 우울증때문에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공부를 할 수도, 일을 할 수도 없는 정말 쓸모없는 나지만, 나는 당당하다.  왜?  나는 다시 일어서기로 했고, 지금 걷고 있고, 나를 좋아한다고,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당당하다.



  지금은 운동화를 신고 걷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저 세 문장이 입속에서 반복된다.  큰 소리로 외칠 것도 없고 남들이 들리게 말할 필요도 없다.  그냥 입속으로 중얼거려도 된다.  신기하게도 자기 암시를 하게 되면서부터는 전에는 힘들어하던, 가게에서 물건 사기, 길 물어보기 같은 것들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그렇게 두 시간쯤 걷고 나면 기분도 상쾌하다.  잠들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 울리던 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 감정들도 조금씩 사라졌다.


  침대에서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날이면, 누워서 저 말을 계속 입속으로 중얼거려도 좋다.  우울증이 심해질 때는 저 말을 반복해도 아무 감정이 일어나지 않기도 한다.  다 거짓말 같기도 하고 그냥 중단하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럴 때라도 나는 아무 뜻없는 주문을 외듯이, 영어 단어를 외듯이 저 세 문장을 반복한다.  그렇게 나는 나를 사로잡아 지옥 밑바닥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우울증에 미약하게나마 저항을 한다. 


  농부는 폭풍우 속에서도 씨앗을 뿌린다.  씨앗이 비바람에 쓸려서 어디로 갈지, 썩어서 없어질지 농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비바람이 지나가면 씨앗은 어디선가 싹을 틔운다는 것을.  바위 틈에 던져진 씨앗은 끝내 그 바위를 쪼갤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농부처럼, 최대한 많은 씨앗을 뿌려두자.  그게 자기 암시다.  지금 우울증이라는 비바람 속에 있는 당신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수많은 씨앗을 뿌려서 언젠가 싹트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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