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렌지나무 Oct 06. 2024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라는 선행

김나리 작가 전시회 중에서


지난번 지도교수님 모임 때 술기운에 몇몇 선배들에게 내 개인사(학업 관련)를 털어놓았다. 나는 굉장히 상처이고 약점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는데 겁없이 마신 연태고량주 몇잔과 선배들의 따뜻한 분위기에 나도 모르게 말이 나왔다.


내 상처를 스스로 드러내고 다니는건 익숙한 편이지만, 이 상처는 조금 다르다. 아직도 피를 닦아내고 있고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상처라서.


그런데 선배들은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라는 담담한 반응이었다. 공감은 있었지만 동정은 없었다. 내가 겪은 일이 누구에게나 있을법한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듯한 차분한 반응에 갑자기 안도감이 몰려왔다.


호들갑스러운 동정이나 조롱(?)을 받지 않을까 떨고 있던 내 존재가 그 한마디에 안정되는 느낌이었다.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어서 조금 더 당당해질 수 있었다.


어린아이는 엄마한테 이거 괜찮은 일이냐고 물어보고, 괜찮다는 대답을 들으면 정말 괜찮은 일이 된다. 모든 것이. 심지어 큰 실수나 사건이라도.


사회에 나와서는 더이상 부모만이 기준이 되진 않는다. 사회에서 내가 마주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아프고 내가 상처받은 문제인데도 남의 눈치를 보고 남의 반응을 걱정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차분하게 들어주는 것, 있을 수 있는 일인 것처럼 담담하게 인정해주는 것은 정말 큰 힘이 된다.


누군가에게 꼭 돈이나 물건으로 선행을 할 필요는 없다. 내가 느끼기엔 '그랬구나, 그럴 수 있지'라는 말과 태도도 누군가에겐 충분한 선행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선행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훌라, 속상하지만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