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상적인 관념, 가치관 같은 것에 쉽게 혹하는 사람이다. 예를 들면 민주주의 같은 단어는 나에게 파베 초콜릿처럼 매력적이다. 그 달콤한 단어 하나를 맛보기 위해서라면 투표 사무원 일도 괜찮다고 느낄 만큼.
그래서 어제 투표 사무원을 할 때도 마음속으로는 설렜다. (정신은 몽롱했지만...)
어제 약 700여명의 사람들이 우리 투표소를 다녀갔는데 전반적인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동에서 자원하신 선거 사무원분들은 투표자들을 따뜻하게 맞이했다. 어르신들이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사람들이 투표가 끝나고 돌아갈 땐 '수고하셨어요'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뭐랄까. 그분들도 민주주의에 진심이었고 한사람 한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 같았다.
가끔 투표소를 잘못 찾아오는 분들이 있었는데 그분들이 가야할 투표소가 어딘지 자기 핸드폰으로 검색해서 알려주고, 찾아가는 방법도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사무적으로, 기계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열심히 찾아오는 투표자분들 역시 대단했다. 개중에는 교육감 후보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오신 분들도 많았지만, 나는 민주주의에서는 자기가 가진 표 한장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 것인지를 아는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에서는 '나'라는 한 개인이 소중하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소중한건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공약같은건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
아이들을 데려와 투표하는 모습을 교육하는 분들, 힘들텐데도 온 임산부들, 투표지를 떨리는 손으로 잡고 지팡이에 의지해 기표소로 가는 어르신들, 전동 휠체어들 타고 올라오신 분들... 모두 멋있었고 존경스러웠다.
지적 장애가 있어보이는 한 청년은 엄마의 손을 잡고 들어왔는데, 이미 투표를 해봤는지 혼자 기표소로 걸어가 투표를 마치고 나왔다. 듬직한 그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엄마는 환하게 웃으면서 아들의 손을 잡고 투표장 밖으로 걸어나갔다.
투표 결과에 관계없이 한표, 한표가 모두 값지고 소중했던 선거였다. 지난번 개표 때도 그랬지만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걸 다시 한번 느꼈다. 그래서인지 돌아오는 길은 너무 피곤했지만 기분은 뿌듯했다.
꽃의 향기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