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식당을 보다가 문득 생각난 것...
우울증이 인생에 도움이 된게 있다면 그중 하나가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우울증에 걸려 인생이 바닥을 친 이후로는 '저 사람 왜 저래?'라는 생각을 하는 일이 많이 줄었어요. 우울증에 걸렸을 때의 제 모습이 정말 이상했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정신적으로 아프면 못할 짓이 없고 보이지 못할 모습이 없다는걸 우울증을 겪으면서 알았습니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백종원의 골목식당' 프로그램 때문이에요. 푸드트럭때부터 즐겨봤는데 재미도 있고 느낄 점도 많은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오늘은 재방을 보다가 갑자기 울컥하고 슬퍼졌어요...
소위 '홍탁집 아들'이라고 불리는 분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우리의 갓종원님이 이분에게 과제를 내주셨죠. 어머니에게 의존하지 말고 혼자 닭볶음탕을 만들어낼 것! 그런데 하루에 1회 연습한다거나 다음날 일찍 출근(알고보니 아침 10시 출근...)해야 되기 때문에 피곤해서 일찍 들어가야 된다고 당당하게 말해서 시청자들의 굉장한 반응을 이끌어내셨죠.
*주의: 저는 소위 '홍탁집 아들'이라고 불리는 이분이 우울증이라고 이야기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저는 이분이 어떤 분이고 어떤 상태인지는 전혀 모르고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쓰려는 내용은 그 방송 내용을 보고 떠올랐던 저의 모습에 관한 것이에요.
저는 이게 제 모습같은데 댓글들이 무능하다느니 무책임하다느니 하는 식으로 달리는게 마음에 꽂히더라고요. 흑흑...
네... 그게 접니다. 우울증에 걸린 상태의 저는 아무것도 할 힘이 없고 아무 의욕도 없어서 돈도 못 버는 주제에 하루종일 공부한다고 거짓말하고 하루 18시간 게임 모드로 살고 집안일은 하나도 안했어요.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먼저 연락해도 연락이 오는 자체가 견딜 수가 없어서 카톡을 읽씹하고 답을 보내지 않았어요. 그래서 인맥이 대부분 끊기고 오해를 많이 샀죠. 이해할 수 없는 갑질, 분노 표출도 많이 했어요. 지하철에서 모든 사람이 꼴보기 싫고 미워서 함부로 밀치고 다니거나 시비를 걸고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욕을 하고 식당에서 아무 이유없이 소리를 지르고 갑질도 했어요. (그때 저때문에 기분상하고 피해보신 분들께는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꼴에 체면은 차리고 싶어서 부모님에게 모의시험 성적은 잘 나왔다고 거짓말하고, 열심히 한다고 계획도 의욕적으로 세우고 실제로는 전혀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어요. 부모님에게 수능 수험생 부모 역할을 몇년씩 하게 만들고 그러는 와중에도 공부는 1도 하지 않았어요. 아르바이트도 안하고 부모님 등골을 뽑아먹으면서 자살해버리겠다고 자주 협박까지 했죠. 오죽하면 나중에는 엄마가 낳아서 미안하다고, 죽어서 편안해지는게 정말 너를 위한 일인 것 같다고 눈물흘릴만큼 신경줄이 너덜너덜해지셨죠. 죄책감이 지구 내핵까지 뚫고 들어갈 정도였지만 죄책감을 느낄 힘도 없었어요.
제가 잘못된게 아니라 우울증이라는 병이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거에요. 겉이 멀쩡하다고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면 안돼요. 우울증 환자는 정신에 암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이상한 짓을 하고 미친 짓을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해도 '환자라서' 그런 거에요.
물론 병을 핑계로 사회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겠죠. 그런 행동을 했다면 욕을 먹든 책임을 지든 해야겠죠. 그런 친구가 혐오스럽고 싫다고 떠나버리는 것도 정상입니다. 하지만 책임을 떠나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울증이라는 병이 원인이라는 걸 생각해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드리고 싶어요.
그런 경험이 있어서인지 골목식당의 그 부분을 보면서 '어... 이거 내 이야기인데. 나는 이해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일주일만에 어머니 수준의 닭볶음탕의 달인이 되는 건 불가능하다? 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제가 우울증이 심했을 때는 아무 희망도, 의욕도 없고 오히려 좌절의 고통만 가져다주는 희망을 가지는 자체가 괴롭고 두려웠거든요. 이미 제 인생은 망했고 회복불가능하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불가능하지만 최대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걸 저라면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게임 외에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씻는 것, 먹는 것 등 생활 모든 면에서 무기력하기도 했고요. 5분도 집중을 못했으니까요. 과거 우울증이 심했을 때의 제 기준으로는 1일 1회 닭볶음탕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도 대단한 일이고 발전이었을 거에요.
다음날 10시 출근이 힘들어서 일찍 퇴근해야 한다는 것도 제 기준에서는 이해돼요. 할 수 있다면 하루에 15시간이라도 잘 수 있고 밤에는 게임을 하지 않을 수 없으니 우울증 환자에게도 '할 일'은 많거든요. 그런게 없다고 해도 우울증에 걸리면 아침에 일어나는게 정말 힘들기도 해요. 어딘가에 출근해서 그냥 얼쩡거리기만 한다고 해도 그게 정말 힘들고 기운빠져요. 심지어 사람들을 접하는 일이라면 더 스트레스 받고 힘들죠. 저도 제 모습을 보는게 역겹고 토나오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제 모습을 보여준다는게 저는 굉장히 힘들었거든요. 우울증이 심했을 때의 저는 사람을 만나거나 어떤 과제 상황에 놓이는게 마치 선글라스도 없이 정오의 태양을 쳐다봐야 하는 것처럼 식은땀이 나고 고통스러웠어요.
그때의 저한테 누가 부모님 고생하시는 거 안 보이냐고, 정신차리라고 다그쳤으면 그건 저한테 머리를 쪼개는 도끼와도 같았을 거에요. 자살할 수밖에 없다고, 일어나 자살하러 가게 만드는 최후의 일격이었을 거에요. 저희 부모님이 고생하신건 매일 부모님과 함께 사는 제가 더 잘 알아요. 저희 부모님이 힘드시다는 것도 제가 더 잘 알아요. 죄책감? 다 알아요. 너무 잘 알아서 우울증이라는 수렁 속으로 더 깊이 빠지는 거죠. 제 인생을 위해서라도 정신차려야 한다는 걸 잘 알아요. 그런데 정신이 안 차려지는걸 어떻게 해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어떻게 해요. 다리 없는 사람에게 정신차려서 걸으라고 할 수 있나요? 팔 없는 사람에게 정신차려서 물건을 집으라고 할 수 있나요? 암환자에게 정신차려서 암을 다스리라고 할 수 있나요? 그렇게 할 수 없으면서 유독 우울증 환자한테는 정신차리라고 쉽게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사실 우울증 환자 본인들도 병때문이 아니라 본인이 '무능력해서', '게을러서', '대인관계가 서툴러서', '성격이 나빠서', '성격이 어두워서', '의지력이 부족해서' 그렇다고 착각, 자책하는 경우가 많죠. 저도 얼마전까지는 그랬거든요...)
아무튼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제는 어떤 이해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거나 만나도 뭔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합니다. 갑질하고 시비걸고 고함지르는 사람들을 봐도 저 사람이 지금 뭔가 힘든 상태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일을 당하더라도 일단 화내는 걸 좀 유보합니다. 저도 그동안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준 적이 있으니 저한테 누가 부당하게 화를 내거나 갑질해도 몇번은 좀 참으면서 속죄해야지... 이런 생각도 들고요. (사실은 몇번이 아니라 많이...)
혹시 주위에 우울증 환자인 가족이나 친구, 지인이 있으시다면 이 글을 한번 읽어보시고 '이해'의 범위를 넓히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봅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는 '오렌지나무'라는 이 사람도 정말 이상했네... 내 가족, 친구, 지인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이게 다 우울증이라는 병때문이구나... 할 수 있는데 안하는게 아니라 정말 못하는 거구나... 하라고, 할 수 있다고 강요하는게 큰 상처를 주는 일이구나... 일단 우울증 치료부터 도와줘야겠다! 이렇게 생각해주실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