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그 다음에 나를 위한 우리
'우울증 환자를 위한 실전 매뉴얼'(매뉴얼이라고 하기엔 부끄럽습니다만...)이 죽어가는 '나'를 살리기 위한 심폐소생술이었다면, 앞으로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근본적으로 생각을 바꿔나가는 이야기도 써보려고 합니다.
저는 우울증에서 회복되면서 조금씩 변해가고 있고, 변했기 때문에 우울증에서 더 회복되어가는 단계를 경험하고 있어요. 단지 행복감을 자주 경험하는 것만으로는 우울증에서 완벽히 벗어나기에 부족하다는게 제 생각입니다.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직장에 취직하고 시험에 합격한다고 해서 우울증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에요. 우울증은 큰 행복에 짓눌려 숨죽이고 있을 뿐 우리가 근본적으로 생각을 전환하지 않으면 우리의 행복이 사그라드는 그 순간에 다시 우리를 공격하고 침범하겠죠. 그래서 제가 조금씩 생각을 전환해나가는 이야기들도 한번 해보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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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브런치에서 이 글을 보면서 문득 편식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편식은 단순한 음식에 대한 취향의 문제이고 누군가를 욕하거나 해치는 일도 아닌데 왜 편식은 부정적으로 인식되는 걸까요? '편식왕'이라는게 뭔가 대담한 도발같은 느낌인건 제 생각일 뿐인 걸까요.
저도 굉장히 편식이 심한 편이에요. 그런데 주위에서는 제가 편식이 심하다는 걸 잘 몰라요. 밖에서는 어떻게든 티를 내지 않고 목구멍으로 넘기려고 최선을 다하니까요.
어릴 때부터 우울증이 심하던 얼마 전까지 저의 특징은 무색무취한 사람이라는 것이었어요. 어릴 때는 자주 싸우는 부모님의 눈치를 보고 자랐기 때문에 제가 원하는 걸 솔직하게 다 말하지는 못했어요.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의 절반 정도는 삼키고 살았죠. 밥상에서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은 뭐든 최고라고, 엄청 맛있다고 말했어요. 누가 강요한건 아닌데 맛있다고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고 밝은 모습을 보여야 부모님도 화목해질 것 같다는, 지금 생각하면 어린애같고 이상한 그때 나름의 논리가 있었나봐요. 언젠가 집에서 빚은 만두에서 돼지고기 냄새가 많이 난 적이 있는데 저는 먹자마자 뭔가 이상했지만 무조건 맛있다고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맛있다고 했어요. 곧 엄마, 아빠가 먹어보고는 바로 돼지고기 냄새가 난다고 하면서 다 가져다 버리셨죠.
초등학교 고학년부터는 아빠가 저한테 사회생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아빠 세대에는 당연히 통용되는, 그리고 지금도 많이 남아있는 사회적 관습이죠. 남들 앞에서 편식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 뭘 못 먹는다고 하면 가정교육을 못 받은 것처럼 보이고 사람들이 불편해한다, 밖에서 밥을 먹을 때는 윗사람이 짜장면을 시키면 다같이 짜장면을 시켜야 되는 거고 혼자 볶음밥 시키면 눈치없는 거다, 남에게 화가 나든 짜증나든 뭔가 부당하든 그걸 입밖에 내거나 표정으로 드러내면 절대 안 된다,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고 용의주도해야 한다, 사회생활에서는 '나'라는 건 없어야 하고 뭐든 다른 사람들에게 맞춰줘야 한다...
실제로 사회에 나와보니 그게 맞는 말이더라고요. 그걸 강요하는 사람들에게는 꼰대라고 욕을 하면서도 의외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다 맞춰주는 사람을 좋아했어요. 단순히 자기의 취향이나 의견을 당당하게 밝히는게 특히 윗사람과의 관계에서는 때로는 돌 맞을만큼 비난받는 일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아빠한테 교육받은 대로 저 자신의 취향, 생각, 감정은 대부분 숨기고 상대방의 눈치를 주로 보고 상대방에게 맞추는 방식으로 사회생활을 했어요. 항상 적당한 거리를 두고요. 그래서 저는 사회생활 잘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사람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잡으면, 저는 그 시간을 일종의 '접대'처럼 생각했어요. 상대방에게 공감해주고 맞춰주기 위한 제가 있을 뿐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는 전혀 중요한게 아니었어요. 상대가 무슨 음식 좋아하냐고 물어보면 다 좋아한다고, 가리는거 없다고 대답하면서 상대방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가죠. 실제로 저는 가리는 것도 굉장히 많고 편식이 심한데도요. 그리고 제가 못 먹는 음식을 상대가 고르면 저는 그걸 마치 좋아하는 것처럼 열심히 먹어요.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때도 많았지만 무조건 목으로 넘겼죠.
상대방이 고른 식당이면 무조건 모든 음식에 대해 맛있다고 말하고 제가 고른 식당이면 괜찮으시냐고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 못하죠. 상대방이 제가 관심없는 분야에 대해 이야기해도 저는 솔직히 모른다고 하지 않고, 거짓말로 봤다고 하고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어주고 적당히 맞춰줘요. 상대방이 자신있어하고 잘하는 분야가 있으면 그걸 미리 알아가서 저한테는 필요없지만 상대방에게는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질문들을 하고 조언을 구하죠. 그렇게 하다보면 대개 관계가 좋게 끝나더라고요. 아마 저 말고도 이런게 사회생활이라고 배우고 이렇게 상대에게 맞추는 관계를 가지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꼭 사회생활이 아니라도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거나 온순한 성격인 분들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기 싫어서 일부러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에게 전적으로 맞춰주기도 하죠.
그런데 이렇게 대인관계를 하다보니 어느순간 사람이 피곤해졌어요. 그 사람을 진짜 알고싶은 것도 아니고 그 순간을 그냥 잘 넘기고 싶을 뿐이었어요. 사람을 만나는게 행복하지 않았고 혼자 밥을 먹는게 너무 편했어요. 혼밥을 하면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도, 상대방의 기분을 알아내려고 긴장할 필요도 없었으니까요.
저는 나중에서야 그게 우울증의 한 원인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삶은 저에게 의미가 없고 힘이 들 뿐이죠. 제 취향, 제 식성, 제 생활, 제 관심사, 제 감정이 철저하게 무시되는 삶을 살다보니 우울증에 걸려 저 자신이 죽어갔어요. 저에 대해 당당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항상 남의 눈치를 보고 남들의 기준에 맞춰 저 자신을 평가하다보니 자존감도 떨어졌죠.
또 저는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도 실제로는 누구와도 정서적으로 교류하지 못했던 거였어요. 저는 없고 남을 그대로 비춰주고 맞춰줄 뿐인 거울이나 메아리같은 관계는 사실 교류가 아니라 단절을 의미하죠. 저는 남을 알고 싶지도 않고 교류하고 싶지도 않고 남을 통해서 저를 변화시킬 생각도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주민건강리더 프로그램에서 춤 테라피를 경험하고 그때 만난 분들과 함께 계속 몇달째 모임을 이어오면서 느낀 건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였어요. 사람들과 단순히 웃으면서 인사를 하고, 진심으로 반가워하고 끌어안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재미있는 일을 같이 하는 것... 그것 자체가 가져다주는 치유 효과가 너무 컸어요. 저한테는 그게 마치 약과 같았어요. 모임에 한번 다녀오면 일주일 정도는 버틸 수 있는 강력한 에너지를 받아서 돌아오는 느낌이었어요.
처음에는 이런 상황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다가 나중에는 깨닫게 되었죠.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저는 아빠가 가르쳐준 사회생활을 좀 버리기로 했어요. 저의 새로운 모토는 '내가 먼저, 그 다음에 나를 위한 우리'라고 해야 될까요. 저는 이제 저 자신을 가장 우선적으로 존중하기로 했어요. 저는 끊임없이 제가 뭘 좋아하고 제가 뭘 원하는지, 뭘 불편해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우울증을 앓는 기간 내내 자존감이 1도 없었어서 그런지 생각보다 저는 저 자신을 잘 모르더라고요. 제가 뭘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었어요. 놀랍게도...
(지금 문득 생각해보니 춤동작 테라피에서 이 원리를 배웠던 것 같아요. 그때 배웠던 것들이 주로 나를 존중하면서 상대방과의 거리를 조절하는 것, 내가 원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더 다가오지 말라고 혹은 내가 원하는대로 더 다가오라고 할 수 있다는 것, 상대의 행동에서 내가 느낀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 등이었거든요. 남에게 내 느낌, 내 생각, 내 취향, 내 의견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건 당연히 해도 되는 일이라는 걸 배웠죠. 이 글을 써놓고 나서도 잘 몰랐는데 갑자기 춤동작 테라피가 떠올랐어요. 제가 이 글에 쓴 것과 같은 이야기를 배우게 된 계기가 춤 테라피였던 것 같네요.)
그리고 이제는 남들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에 대해서도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해요. 예전처럼 사람들의 말에 무조건 동의하고 맞장구쳐야 한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제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상대방의 생각도 알고 싶어해요. 예전에는 상대방에게 맞춰주고 리액션하는게 만남의 목적이었기 때문에 상대방이 하는 말은 우이독경처럼 귀를 스치고 지나갔는데 지금은 진심으로 내용을 듣고 싶어해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예전보다 지금이 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저도 상대방에서 얻어가는 것이 있고 상대방도 저에게서 얻어가는 것이 있으니까요.
저는 탕수육은 찍먹을 좋아해요. 반정도는 소스에 찍어먹고 반정도는 소스 없이 바삭한 고기튀김만 간장에 찍어먹는걸 좋아해요. 뜨거운 차는 잘 못 마시고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이스티나 아이스 커피를 주로 마셔요. 이제는 사람들과 만나거나 카톡을 할 때 사소한 입발린 말, 하얀(?) 거짓말도 하지 않으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요. 제가 모르거나 관심없는 건 관심없다고 이야기하고, 관심도 없는 영화를 관심있는 척 하면서 찾아보겠다고 거짓말하지 않아요. 찾아보겠다고 했으면 진짜 찾아보려고 노력하고요. 오늘은 갈비탕을 먹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고 회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해요. 누가 자신의 부끄러운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예전같으면 저는 그런 일이 없는 척했을 텐데 지금은 저도 그런 창피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솔직하게 말해요. 상대방의 생각과 제 생각이 다르면 제 의견을 이야기하려고 노력해요. 제가 오늘 뭘 했고 지금 기분은 어떻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직하게 이야기해요.
이거 너무 당연한건데... 왜 이걸 말하는데 이렇게 오래 걸린 걸까요?ㅎ.ㅎ 솔직하게 저를 드러낼수록 저 자신이 더 강해지는(나에게 중요해지는) 느낌이 들고 제가 강해질수록 우울증에서 한발짝 빠져나온다는 느낌이 드네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것도 제가 자존감을 찾아가는 한 과정같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