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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Nov 30. 2018

우울증 치료방법: 포기를 잘하게 됐어요

우울, 불안이라는 사채업자



 우울증은 사채업자같아요. 마치 평생의 소득을 다 털어도 갚을 수 없을만큼 어마어마한 빚을 엄청 졌고, 그걸 갚아나가는 느낌으로 인생을 살게 하니까요. 인생에서 즐거운 일, 기대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는 힘겨운 노동을 해서 겨우 빚을 갚고 수중에는 남는게 없는 것 같은 삶. 저에게 우울증에 걸린 인생은 그런 느낌이었어요.


 거기서 벗어나려면 우울증에게 대놓고 말하는 수밖에 없죠. "나 파산신청했어."


 우울증에서 회복되어가는 과정에서 제가 변한 것 중 하나는 포기를 잘 하게 되었다는 거에요. 요즘은 저는 우울이나 불안에게 '빚'을 잘 주지 않아요. 뭔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 격차가 생기고 우울이나 불안이 다가와서 그 격차만큼의 빚을 받아내려고 할 때 저는 그냥 그 자리에서 파산신청을 해버리죠. 저는 이상을 포기해버려요.


 어떻게 포기가 되냐고 말하실 수도 있겠죠. 포기가 쉽게 되면 우울증이 아니겠죠. 저도 그게 포기가 안 되어서 십수년 넘게 우울증을 앓았으니까요. 그런데 오랜기간 우울증때문에 삶에서 다가오는 기회들을 자꾸 망쳐버리다보니 한 가지 사실을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어요.


 현실과 격차가 있는 이상을 가지게 되면 우울과 불안이 어김없이 찾아오고, 우울과 불안이 찾아오면 우리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기는 커녕 현실 자체를 유지하기에도 벅찰만큼 힘들어지고, 그러다보면 이상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죠. 그리고 이상이 현실화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더 큰 우울과 불안이 찾아와요.


 목표와 꿈을 갖고 집착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발목을 잡는거죠. 두 다리를 묶고 뛰는게 달리기 시합에서 1등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 분이 계신가요? 아마 없으시겠죠. 그런데 왜 우리는 두 다리를 묶는 것과 마찬가지인 꿈과 이상과 목표에 집착해야만 인생이라는 달리기 시합에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물론 그렇게 해서 성공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울증 환자들은 아니에요. 성공하는 사람들은 대개 멘탈이 강하고 자기관리가 철저하기 때문에 그런 꿈, 이상, 목표가 과도한 우울, 불안을 가져다주지 않아요. 그들은 적당한 긴장을 유지하면서 컨트롤할 수 있죠. 그런데 우울증 환자들은 이미 우울, 불안이 통제를 벗어나서 널뛰기를 하고 있는 상태이고,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요. 그러니 그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100% 실패할 뿐입니다.

 

 우울증 환자는 목표, 꿈, 이상 모두 포기해버려야 돼요. 포기해서 우울, 불안에서 벗어나면 오히려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는 능력과 힘을 되찾을 수 있어요. 우울증 환자는 인생에서 긴장감, 스트레스, 불안, 이상과 현실의 갭같은 것들을 최대한 제거하려고 노력하는게 좋아요. 그래야만 우리를 지배하는 우울, 불안에서 자유로워지고 우리의 능력을 회복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죠. 오히려 우울증이 심해지고 오래될수록, 사람들은 우울증때문에 잃어버린 시간, 기회를 더 빨리, 더 크게 만회하려고 꿈이나 목표에 자꾸 집착하게 되거든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그게 절대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는 방법이라는걸 빨리 깨달아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어요...



1. 저는 제가 가질 수 있는 직업에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해요


 우울증에 한창 빠져있을 때 저는 이상이 높았어요. 원하는 직업이 있었고 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매일 야근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은 달라요. 저는 우울증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이제 야근을 밥먹듯해야 하는 일은 할 수 없어요. 워커홀릭처럼 노력할 수 없어요. 잠도 충분히 자야하고 취미생활도 꾸준히 해야하고 모임도 나가야 하기 때문에 개인생활이 충분히 보장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걸 위해서라면 더 여유로운 다른 분야의 직업, 불안정하지만 일정을 조정할 수 있는 프리랜서(라고 쓰고 알바라고 읽는...)를 선택할지도 모르죠. 과거에 제가 직업을 선택했던 기준이 사람들이 선망하는지 여부였다면 지금은 달라요. 저는 제가 번아웃되지 않고 인간관계나 일 문제로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직업인지 여부를 중요하게 보죠. 예전에는 이런걸 무능하고 나약하다고 자책했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저는 이런 한계가 있다는걸 받아들이고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는 이제는 뭐가 중요한지를 알게 됐어요. 제가 살면서 가장 중요한건 저 자신이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은 왜 저런 일을 하고 있지? 저런 일을 하는 걸 보니 능력이 없나보다.'라고 말하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제 삶의 패턴에 맞고 제가 즐거움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세상을 다 버리더라도 제가 고통받지 않고 사는게 진짜 중요한거죠. 저는 우울증이 가져다준 그 고통을 절대 다시 겪고 싶지 않거든요. 그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이뤄내야할 사명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그냥 우울증의 고통을 겪지 않고 하찮게(?) 사는 편을 선택하겠어요.ㅎㅎ

    


2. 저는 만회해야 한다는 개념을 포기했어요


 우울증때문에 잃은게 정말 많아요. 잃은 시간, 잃은 기회... 그걸 만회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만회할 수 없을거라고 절망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채찍질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했던게 우울증 기간 내내 계속되던 저의 패턴이었어요. 저는 지금은 그 자체를 그냥 인정해요. 우울증때문에 인생을 망친게 아니라 그 기나긴 시간이 저의 '자아의 신화'를 이루는 여정이었다고 생각해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보면 양치기 소년은 '자아의 신화'를 이루기 위해 양도 팔고 생활을 포기하고 머나먼 길을 떠나죠. 제가 우울증으로 현실에서 수많은 기회를 잃고 도태된 것은 어떻게 보면 양치기 소년이 현실의 생활을 버리고 여행을 떠나버린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요즘은 이게 '자아의 신화'라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우울증을 앓았기 때문에 저와 비슷하게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고 정신건강에 관해서 어떤 방법,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고 이런 분야로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우울증을 앓은 적이 없는 사람보다는 제가 우울증 환자, 우울증 환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 뭘 필요로하고 어떤 것이 효과적인지 더 잘 아니까요. 그래서 지금 건강생태계 조성 사업인 지역주민의 정신건강에 관한 치유활동, 소모임 구성에 참여해서 일하고 배우고 있어요. 직업으로 할 수 있는 일인지까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제가 좋아하고 행복해할 수 있는 일이라 계속 공부하고 도전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본업이 될지 부업이 될지는 모르지만요.


 결국 우울증때문에 제가 원래 갔어야만 하는 길에서 떨어져나와 뒤쳐진게 아니라, 저에게 맞고 제가 원하는 (전에는 원하는지도 전혀 몰랐지만) 전혀 다른 길로 오게 된 거죠. 우울증이 아니었다면 이 길을 전혀 몰랐겠죠. 그렇다면 만회할...게 없지 않나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3. 이런 성격의 사람이면 좋겠다는 것도 포기했어요


 저는 항상 밝고 착하고 낙천적이고 불안감도 없고 당당하고 자기 할 말 다하고 자존감이 넘치고 매력있고 언제나 화젯거리가 넘치고 인싸에 애교많은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실제로 속까지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겉으로라도 그런 성격인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현실에서 저는 예의바르고 눈치빠르지만 이야기하다보면 정말 아는게 없고 재미없는 아싸거든요. 자존감도 낮고요. 우울증이 오래되다보니 흥미있는게 아무것도 없어서 남들과 이야기할 재미있는 소재도 없고 친구도 많이 끊겨서 대화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항상 대인관계가 어색했어요. 식은땀이 날 정도로요. 저 스스로 뭔가 제가 야만인이고 문명인과 동물언어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였어요. 왜 나는 이렇게 병신같이 된 건지, 왜 내 부모는 나를 이렇게밖에 못 키웠는지 후회되고 원망스럽고 힘들었죠. 이것도 제 우울의 한 원인이기도 했죠.


 저는 이것도 포기했어요. 저는 그냥 지금의 제 성격을 받아들이게 됐어요. 사람들을 만나면 이제는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사실 제가 우울증을 오래 앓아서 관심사가 거의 없어서 저랑 이야기하는게 재미없을 수 있다고요. 오랫동안 친구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또래와 대화하는게 익숙하지 않고, 그래서 저랑 대화할 때 어색한게 많이 느껴질지도 모른다고요. 그리고 제 약점이나 바보같은 생각도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저의 마이너해서 부끄러운 취미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요즘 타로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있는데 임상경험(?)을 도와달라고 하면서 타로 수비학이 성격이랑 맞는 것 같은지 봐달라고 부탁도 해요. 예전같으면 타로카드라니 상대방이 나를 약파는 사람처럼 보면 어떻게 하지, 상대방이 종교가 기독교면 나를 점이나 보고 다닌다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걱정들을 해서 아예 말을 꺼내지 않았을 거에요. 하지만 지금은 상대가 저를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그냥 저는 이런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태도를 바꿨어요.  


 그런데 의외로 이렇게 말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알아서 배려를 많이 해주더라고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친구만 선호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 드는 생각은 아싸라도 솔직하게 말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면 친해지고 대화하는데 별 문제가 없다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저도 편해서 그런지 말이 더 잘 나오더라고요. 어색하고 식은땀나는 경우가 많이 줄어들고... 진심을 이야기하는게 많이 능숙해졌어요. 제 성격을 받아들이고나니 성격때문에 오는 우울, 불안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4. 외모도, 살도 포기했어요


 예전에 저는 제 우울증의 한 원인이 외모, 살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성형을 하고 살을 빼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상황이 똑같은데도 우울증이 심하면 외모와 살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되고, 우울증이 나아지면 외모와 살은 별로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되는 패턴을 지켜보면서 그게 우울증때문이라는걸 알게 됐어요. 살, 외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우울증 자체가 문제였던 거죠. 실제로 주위를 둘러봐도 저보다 더 뚱뚱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고 있었죠. 제가 불행한건 살이나 외모 문제가 아니었어요.


 이번에 우울증에서 치유되면서 저는 살, 외모에 대한 강박도 내려놓았어요. 포기했어요. 처음에는 우울,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의식적으로 포기했고 나중에는 자존감이 커가면서 진심으로 포기할 수 있게 됐어요. (이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ㅋㅋ 식욕이라는 저의 욕구에 너무 충실해서 다이어트 의욕이 아예 안 생기네요.)


 저는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에서 살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장 먼저 내려놨어요. 그 이유는 우울증과 같은 중대한 문제가 있는 상황에서 다이어트 가지고 사소한 스트레스라도 받고 싶지 않아서였어요. 다이어트를 시도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해 고통받고, 그러다가 다이어트를 실패하고 자책하고 우울증을 퍼먹는 악순환이 우울증 치유과정에서는 너무 위험했거든요. 그래서 그냥 다이어트를 포기해버렸어요. 어차피 우울증때문에 언젠가 자살해버릴지도 모르는거 오늘이라도 맛있게 먹고 싶은거 다 먹고 즐겁게 살자고 생각했죠. 우울증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순간에라도 즐거우면 그게 정말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우울, 불안이 심할 때 그걸 가라앉히기 위해 적당한 야식, 약간의 폭식이 필요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식단에 전혀 제한을 가하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전에 브런치에 쓴대로 야식은 제한하자고 하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그것도 그냥 포기했어요. (그렇게 다 포기했기 때문에 한동안 브런치에 들어올 수 없었죠... 제가 쓴대로 살지 않았...) 야식 먹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자주 사가기도 했죠. 다이어트는 우울증이 다 낫고 난 다음에 다시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제가 살이 찐 것은 우울증의 원인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니 이렇게 생각할 수 있었던 거죠. 놀라운건 그렇게 생각하니 야식이 많이 줄었어요. 불안할 땐 가끔 폭식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식욕이 오히려 줄어들었어요. 그건 아마 제가 다이어트를 포기했기 때문에 다이어트로 인한 불안, 우울이 많이 줄어들어서 그렇기도 하고, 자존감이 커져가면서 자신에 대한 만족감이 많이 높아져서 그렇기도 하겠죠.


 그래서 지금은 오히려 올해 3월보다 조금 더 살이 찐 것 같기도 한데 전 의외로 만족하고 있어요. 우울증 자체에서 벗어나서 표정이 많이 좋아져서 그런지, 아니면 우울증이 지금까지 씌워둔 회색렌즈가 벗겨져서 그런지 저 자신이 지금 이대로 꽤 만족스럽게 보이거든요. 저 자신이 제 살에 만족하다보니 다이어트를 할 이유를 굳이 찾는다면 남들의 시선일텐데... 전 남들의 시선을 위해 먹고 싶은 걸 충분히 먹지 못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그 사람들이 제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산다면 얼마나 산다고 초코 다이제 2조각을 먹을지 3조각을 먹을지 재고 고민하면서 살아야 하죠?; 우울증이 그동안 너무 고통스러웠어서 그런지 저는 그냥 뭐든 맛있게 먹는 즐거움도 소중하고 즐거워요.


 물론 건강은 소중하니 시험이 끝나면 운동을 열심히 하려고 해요. 등산이 그렇게 살이 잘 빠진다더군요! 잘 먹고 운동하기, 이렇게 하면서 살고 싶어요.  

  

 

5. 심지어 우울증에서 완치될거라는 것도 포기했어요


 이 브런치를 시작할 때만해도 우울증에서 완치되겠다는 강박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도 버렸어요. 그냥 우울증이 언제든 다시 심해질 수 있다고 받아들이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브런치에 쓰는 글들은 우울증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잘난척하는 글들이 아니고, 저는 다시 우울증이 찾아와서 무너졌다고 브런치에 글을 쓰더라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거에요.


 사실 지금대로라면 우울증이 예전처럼 저를 삼켜버릴 것 같진 않아요. 그동안 우울증의 원인이 되었던 것들의 수압을 잘 관리하면서 살고 있으니까요. 파이프에 적당히 구멍을 뚫어서 압력을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감정들, 생각들, 가치관들을 잘 관리하고 있으니 예전처럼 우울증이 폭발하듯 분출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우울증에서 완치되어야 하고 다시 우울증이 찾아오면 그건 제가 무능하고 브런치에 쓴 내용도 거짓(?)이라는 증거라는 부담감조차 느끼고 싶지 않아요. 그런 강박에서 우울, 불안이 깊게 뿌리를 내릴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오직 현재에 충실하고 솔직하고 싶을 뿐, 미래를 장담하고 보장하면서 다시 우울증이라는 사채업자에게 빚을 지고 싶지는 않아요.



 또 뭐가 있을까요? 아무튼 저는 이밖에도 매일 생각나는 여러가지 불안들, 우울감들을 생각나는 족족 다 포기하고 버리면서 살고 있어요. 우울증에서 회복되는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취미생활 만들기, 사람들과 만나면서 교류하기...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지만 거기에 더해서 이런 변화들도 중요했던 것 같아요. 포기하기,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하기. 이렇게 생각을 바꿔나가면서 우울증의 원인들을 하나하나 제거해나가니 우울감이 많이 줄어들었던 것 같아요. 다만 이런 생각바꾸기는 그것만으로는 별 힘이 없었을 거에요. 저도 우울증 기간 내내 생각을 어떻게든 바꾸려고 온갖 노력을 했지만 안 바뀌었거든요. 즐거움을 찾고 사람들과 만나면서 기본적으로 에너지가 채워지니까 생각을 바꾸는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물론 그동안의 노력이 있었기에 에너지가 공급되자마자 쉽게 생각이 전환될 수 있었겠지만요.


 우울증 환자들이 우울, 불안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가 바로 꿈, 이상, 목표를 버리지 못하는 거죠. 우울증때문에 현실적으로 공부도, 일도, 인간관계, 일상생활도 잘하기 힘든 상황에서 꿈이나 이상은 우리의 목을 죄는 밧줄밖에 되지 않는거죠. 그리고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서도 꼭 우리의 꿈, 이상, 목표를 포기하는 작업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포기는 배추를 셀 때나 쓰는 거라지만, 우울증 환자들이 낫기 위해 가장 먼저 받아들여야 할 단어는 '포기'인 것 같아요. 여러분, 열심히 포기하세요. 베짱이처럼 오늘 즐거운 일만 생각하면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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