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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Sep 20. 2019

나를 키우는 나라는 부모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관해서...


 저는 며칠 전 자궁근종 수술을 받고 지금은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오늘이 수술 3일째인데 아직 아프지만 그래도 버틸만은 하네요. 지난 몇달간 너무 커진 상태로 갑자기 발견된 근종과 수술에 대한 걱정, 두려움... 남자친구와의 문제 등등 여러가지로 좀 복잡하고 힘들었어요. 그러면서도 저는 꾸준히 상담을 받고 저 자신에 대해서 열심히 생각하고 궁리하고 나아지려고 노력하고 있었죠. 오늘은 브런치에 글이 끊긴 사이에 제가 했던 생각들 중 한 가지에 대해 써보려고 해요!


 우울증이 가장 심했을 때 인터넷에 많이 검색해봤던게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었어요. 저는 썩은 생선을 사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저를 사랑할 수 없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동시에 저를 사랑할 수 없는게 우울증의 원인이라고 느꼈죠. 저를 사랑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저를 사랑할 방법을 찾고 싶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봤죠. 그리고 결과는...? 솔직히 가장 깊은 우울증에서 저를 건져줄만한 힘을 가진 방법은 찾지 못했어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죠.


 그런데 얼마 전에 문득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저를 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고, 오히려 저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집착했던게 우울증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요. 


 생각해보면 저는 마치 자식에게 집착하는 부모처럼 저에게 집착하고 있었어요. 보통 부모들은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 자식이 어디가서든 인정받고 사랑받고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원하면서, 자식이 그럴 수 있는 직업(예를 들면 전문직)을 갖고 좋은 학교를 나오고 그런 삶을 도와줄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성격을 갖기를 바라죠. 사랑이 지나치면 불안이 되고 집착이 되고 때로는 분노가 되기도 하죠. 그래서 공부를 못하는 자식에게 '넌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냐'고 비난하기도 하죠. 자식을 위해서 자식을 낳은게 아니라 마치 공부를 시켜서 전문직을 만들기 위해서 자식을 낳은 것처럼 주객전도가 되는 상황도 쉽게 오죠.


 그런데 그건 제가 저 자신한테 하고 있던 거였어요. 생각해보니. 저는 저 자신을 너무 사랑해서 제가 어디가서든 인정받고 사랑받고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원해요. 그래서 저 자신에게 바라는 직업, 학교, 성격, 외모, 체중같은 것들이 있죠. 제가 저를 깊이 사랑하는 만큼 저에 대한 기대치도 굉장히 높아요. 저에 대한 사랑이 지나쳐서 불안이 되고 집착이 되고 분노가 되었죠. 그래서 저 자신에게 '넌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냐, 왜 이렇게 못생겼냐, 왜 이렇게 뚱뚱하냐, 왜 이렇게 병신같은 성격을 갖고 있냐, 왜 이렇게 나약하냐, 왜 남들처럼 못하냐, 왜 남들 다 괜찮은데 너만 무너지냐, 왜 남들 하는만큼도 못 따라가냐, 왜 너는 이렇게 혐오스럽냐'... 이런 식으로 저를 비난했죠. 저를 위해서 제가 존재하는게 아니라, 마치 예쁘고 날씬하고 성격 좋고 명랑하고 공부 잘하고 능력있고 직업좋은 어떤 존재가 필요한데 제가 그 존재가 될 수 있다면 가치있고 아니라면 가치없는 것처럼 되는 상황요. 


 저는 그 기대치에 못 미치는 존재였어요. 그래서 저는 저 자신에게 실망했고 저 자신을 수치스러워 했고 숨기고 싶어했죠. 장애가 있는 아이를 부끄러워하고 자기가 장애가 있는 아이를 낳았다는 걸 수치스러워하면서 감추려고 하는 부모처럼요. 제가 저에 대해서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수치심이었을 거예요. 제 존재 자체에 깊은 수치심을 느꼈고 저 같은 썩은 생선처럼 혐오스러운 존재는 자살해서 사라져줘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늘 해왔던 거죠. 


 그런데 제가 저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수치심이나 고통을 느낄 이유가 없었죠. 아이큐 200이상, 외모 연예인급 지원자 모집... 그런데 제가 지원했어요. 지원자격에 미달하니 '아쉽지만 저희 회사가 부족해서 귀하를 모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라는 말로 간단하게 돌려보내면 되겠죠.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제가 자격이 없고 가치가 없다고 느꼈음에도 살고 싶었고 행복해지고 싶었어요. 어떻게든 자격을 갖추고 티켓을 손에 넣어서... 행복하게 살고 싶었어요. 그럴 수만 있다면 자살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게 불가능하다고 느껴져서 어쩔 수 없이 자살해야겠다고 생각할 때조차도 수없이 망설였고 자살시도까지 가기 전에 수많은 눈물을 흘렸죠. 저는 저를 이미 사랑하고 있었던거죠. 


 제 안에 그런 부모가 생기게 된 건 일부는 그런 가치관을 심어준 저희 부모님의 영향이기도 하겠지만, 저는 그게 사실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요. 너무 사랑하고 귀중하고 아끼는 존재에게는 그런 마음이 생기는게 당연한 것 같아요. 상처 하나도 안 났으면 좋겠고 마음 아픈 일은 한번도 안 겪었으면 좋겠고 그저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고 원하는 걸 다 이루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는게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잖아요. 저는 그런 마음으로 저 자신을 대했을 뿐인거죠. 저한테 저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제 안에 있는 저라는 부모와, 저라는 아이를 바라보게 되면서 한 가지 새로운 방향을 바라보게 됐어요. 제가 저를 혐오하고 미워한다는걸 이제는 믿지 않아요. 제가 저를 넘칠만큼 사랑한다는 건 알게 됐어요. 다만 저 자신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줘야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됐어요. 저라는 자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고 사랑해주고, 저라는 자식이 무엇으로 자랄지 기대하면서 한없이 기다려주는, 꽃이 피든 피지 않든 그 모든 것들이 그 자체로 소중한 경험이라는 걸 알아주는, 그런 올바른 부모가 되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어쩌면 실제 저희 부모님도 저에게 해주지 못한 일이지만 저는 저 자신에게 그런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요. 기독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신이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는 방식대로 우리도 우리 자신을 사랑해주는 거라고 해도 되겠죠. 매순간 저 자신을 대할 때마다 이럴 때 좋은 부모는 어떻게 행동할지, 신은 우리에게 부모로서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베풀어 주는지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런 생각을 좀더 하게 된건 상담 중에 상담사님이 했던 말 덕분이었어요. 상담사님은 제가 자라면서 부모에게 올바른 방식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자아가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자아에게 그런 힘을 줄 수 있는 건 부모가 주는 사랑과 인정이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럼 성장과정에서 부모에게 그런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하냐고 묻자, 상담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상담 과정이 재양육의 과정이라고요.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들었어야 했지만 듣지 못했던 인정과 지지의 말들을 상담사를 통해 들으면서 어린 시절의 나 자신을 키운다는 거죠. 저는 이 말을 듣고 저 자신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줘야겠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하게 됐어요. 부모가 못해줬더라도 나는 나 자신에게 열심히 해줘야지... 라는 생각이 드네요. 


 일단 제가 저 자신에게 해주고 있는 부모 역할은 제 감정이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주는 거예요. 저는 이제 저 자신에게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라고 충고하거나 '왜 이걸 못하니'라고 비난하거나 하지 않아요. 그냥 저 자신에게 물어봐요. '이걸 하고 싶어?' 그리고 저를 무조건 지지해주죠. 


 '지금 상황이 좋지 않아서 네게 자격지심이 있는 거라면, 그 자격지심 자체도 옳은 거야. 자격지심때문에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한 것 같다고 너를 비난할 필요는 없어.' 이런 식으로 말해줘요. 실제로 현재의 제 감정, 제 기분, 제 느낌은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고 인정해주는 쪽으로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같으면 '이렇게 느끼고 이렇게 반응하는 것=자격지심=자격지심이 있을 만큼 현실에서 병신같은 쓰레기=가치 없는 나란 쓰레기때문에 상대방이 내 까칠한 말에 상처받았어=상대방에게 상처주는 나는 정말 살 가치가 없다=자격지심 있는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죽고 싶어' 이런 식으로 생각했을텐데 지금은 그러지 않아요. 자격지심 있는 지금의 저 자신이 진짜 저 자신이고 저에게는 충분히 존중받고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니까요. 


 제가 느끼는 것, 생각하는 것에 대해 토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켜보고 인정하는 쪽으로 좀 바뀌긴 했네요. 아무튼.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게 자식농사라고 하는데 본의 아니게 자식을 키우게 되어서ㅎ.ㅎ 생각을 많이 해봐야겠어요. 공부도 많이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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