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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Nov 19. 2019

누군가 자살하고 싶다고 할 때

답은 질문에 있다


 "나 어제 자살하려고 했어."

 "나 자살하는걸 자주 생각해."

 "지금 이렇게 밑을 내려다보니까 뛰어내리고 싶다."




 '자살'이라는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금기시되는 단어죠. 누가 '자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면 사람들은 일단 당황하고 긴장하고 두려워하죠.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사람들과 있을 때 2~3회 정도 자살에 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이 꺼리는 모습, 불편해하는 모습, 당황하고 놀라는 모습을 봤어요. 제가 한 이야기는 '지금 자살하고 싶다, 요즘 자살하고 싶다'라는 이야기도 아니었어요. '예전에 자살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는 정도의 이야기였죠.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이런 이상한 이야기를 꺼내냐는 식으로 반응하더라고요. 마치 제가 무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사람인 것처럼, 제가 페스트를 옮기는 쥐라는 것을 갑자기 깨달은 것처럼.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당황하고 불편하는 것도 이해돼요. 자살 생각을 치킨 시켜먹는 생각만큼이나 자주 해온 저에게도 다른 누군가가 자살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건 당황스러우니까요. 자살 이야기를 불편하게 느끼는 건 아니고, 자살을 생각할 정도라면 상대방이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는지 공감할 수 있고 마음이 아프지만... 저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는게 사실이에요. 어떻게 하면 상대방이 자살하지 않게 할까... 혹시 어설프게 위로한다고 말실수를 해버리면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을까... 이런 고민이 들어요.


 그럴 땐 정말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요? 역지사지를 해볼까요:) 제가 자살 이야기를 꺼낸 사람의 입장이라면 이런 걸 원할 것 같아요.



1. 자살=나 진짜 힘들다


 '자살'='나 진짜 힘들다'

 이렇게 치환해서 생각해주시면 어떨까요? '자살'이라는 단어는 잠시 잊어버리고요.


 자살하고 싶다고 누군가에게 말하는 사람의 심리는 무엇일까요? 조만간 자살할 건데 자살 계획을 미리 알려주는 걸까요? 자신이 결정한 자살을 방해해달라고...? 아뇨. 자살하려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살에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진심으로 간절히 살고 싶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동시에 사는게 너무나 큰 고통이고 그 고통은 절대 끝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살 자체는 성공하고 싶어해요.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이 고통이 사라질 수 있다면 너무나도 살고 싶지만 고통이 너무 심한 현재 상황에서는 죽기를 희망하는 것과 같죠. 주위 사람들에게 희미하고 작은 시그널을 남기기도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자신의 자살을 알고 방해해주기를 원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 시그널을 최대한 감추려고 하죠. 그래서 '나 자살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절대 자신의 자살 계획이나 시도 자체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하는건 아니에요.


 그럼 어떤 마음에서 자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 걸까요? 간단해요. '나 진짜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그 고통의 강도를 표현하기 위해 동원된 단어가 '자살'일뿐인거죠. 그래서 누군가가 자살 이야기를 하면 너무 놀라지 마시고 이 사람이 지금 힘들다는걸 호소하고 싶어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2. 최대한 놀라거나 심각한 얼굴을 하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 특히 부모나 자식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정말 놀라거나 걱정되겠죠. 하지만 최대한 티 안내려고 노력하셨으면 좋겠어요. 자살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은 보통 그 순간에 자신을 보호해주는 피부 하나 없이 피를 흘리면서 서 있는 것과 같아요. 스쳐지나가는 작은 바람에도 심한 통증을 느낄 수 있죠. 자살 이야기는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절대 쉬운 이야기는 아니에요. 나만 열등하고 무능해서 자살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 이런 것도 자식이라고 오늘도 밥을 차려주신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 다들 행복하게 잘 사는데 혼자 낙오되고 자살 이야기를 이렇게 꺼내게 된 나 자신에 대한 무한한 초라함, 비참함, 수치심... 이런 복잡한 감정을 느끼죠. 그래서 자살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상대방의 작은 표정, 분위기 변화에도 아주 아주 민감해요.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에 아주 민감하죠.


 그럴 때 상대방이 많이 놀라거나 심각한 얼굴을 하면 쉽게 상처받을 수 있어요. 이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왜 이 이야기를 꺼낸걸까 하고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고 후회하죠. 상대방이 많이 놀라면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내가 또 미친 짓 했구나... 저 사람은 자살 생각을 한번도 해본 적이 없구나... 나만 낙오된 사람이구나... 저 사람은 나를 얼마나 병신이라고 생각할까... 나를 정신병자라고 생각하겠지...'


 특히 가족이 자살하고 싶다느니 하는 말을 하면 그 말을 들은 가족들은 걱정하는 마음이 앞서서 화를 내거나 다그치거나 한숨을 쉬면서 무슨 헛소리를 하냐고, 니가 나약해서 그런다고 말하거나 당장 병원에 가자고 큰소리로 말하거나 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행동은 자살 이야기를 꺼낸 가족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에요. 학교 폭력에 관해서도 그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내 아이가 학교 폭력 피해를 당했을 때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에 화를 내거나 다그치거나 당장 학교 찾아가서 작살을 내버리겠다거나 하는 식으로 대응하지 말라고요. 오히려 그런 대응이 아이를 더 불안하고 두렵게 하고 수치스럽게 만들고, 입을 닫게 만들죠.


 자살 이야기를 꺼낸 사람에 대해서도 비슷해요. 감정적으로 흥분해서 반응하는건 손에 칼을 들고 '이리로 와서 이야기하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아무리 부모이고 자식이라도 손에 칼을 들고 흉흉하게 있는데 와서 이야기하자고 하면 다가가서 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런 상황에서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을까요?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최대한 놀라는 표정이나 심각한 반응이나 걱정을 분노로 표출하는 것은 자제해주시고, '사람은 누구나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고 너가 자살을 생각한 건 인간이라면 자연스러운 것이다'라는 마인드를 장착하고 자살하려는 사람을 대해주세요. 너무 놀라는 표정이나 심각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괜찮아요. '네가 자살 이야기를 하니까 약간 놀랐는데... 무슨 일이 있었어?'라거나 '자살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걱정되는데...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 정도로 감정을 표현하시는건 상처가 되지 않아요.


 

3. 먼저 이유를 물어보고, 병원에 가보자거나 자살예방 기관들의 도움을 받자는 이야기는 그 다음에 꺼낸다


 자살 이야기를 꺼낸 사람에게는 보통 자살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어요. 공통점이라면 고통이 크기 때문이죠. 그동안 살면서 받아온 상처도 있고,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도록 자신을 몰아가는 큰 상처도 있을 수 있고, 기본적으로 자기 자신을 죽인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겪어온 아픔은 다 있죠.


 어떤 사람도 진심으로 죽고 싶어하지 않아요. 어떤 문제가 없다면, 어떤 기억이 지워진다면, 어떤 과거를 바꿀 수 있다면, 어떤 미래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고통이 없다면... 자살할 이유가 없어지죠. 자살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어떤 이유를 갖고 있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미 최선을 다해서 발버둥쳤지만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어요.


 그런데 자살하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다짜고짜 병원에 가보라거나 자살예방 기관들의 도움을 받자고 설득하는건 그 사람이 가진 그런 이유, 그 사람이 느끼는 그런 고통, 그 사람이 죽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그런 노력을 전부 무시하는 행동이에요. 자살하고 싶다는 사람에게 바로 병원에 가보라고 하는건 '자살 이야기를 꺼내는건 네가 지금 정신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정신병을 치료하려면 병원에 가야 된다'라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게 들릴 수 있어요. 자살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그렇게 느낄 수 있어요. 혹은 이 사람이 나와 이야기하는걸 불편해하거나 귀찮아해서 대화를 단절하고 병원에 넘기려고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고 그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서 자살까지도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번 상상해보세요. 너무 힘들어서 자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정말 어렵게 꺼냈는데 상대방이 대뜸 병원에 가보라고 해요. 그럼 기분이 어떠실까요? 최소한 먼저 왜 죽고 싶은지, 가족을 잃은 상실감이 얼마나 큰지, 가족이 살아 생전에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가족을 보낸 내 마음이 어떤지... 이런 건 물어봐주고 그 다음에 병원을 권해주는게 정상 아닐까요?


 먼저 질문해주세요. 자살을 생각하는 이유를 물어보고, 자살을 생각하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물어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요즘 감정상태는 어떤지, 밥은 잘 먹고 있는지 등등... 그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여러가지 질문해주세요. 상처가 될지 몰라서 걱정될 수도 있지만, 이미 자살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냈다는건 그 사람은 상처를 감수하고라도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싶다는 신호를 보낸 거예요. 충고, 조언, 비판, 판단하지 않고 그냥 질문만 하는건 비교적 안전해요. 말을 많이 시키는건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내서 급한 불을 끄는 효과도 있어요. 물론 그 응어리는 곧 다시 쌓이겠지만, 최소한 오늘이나 내일 죽는 건 막을 수도 있는거죠.

 

 그 사람이 자살을 생각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진지하게 들어주고 공감해준 다음에는 병원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조심스럽게 권해주세요. '너에게 문제가 있으니 병원에 가서 치료하자'는 태도가 아니라, '네가 그런 일을 경험하고 아파서 죽음까지 생각하는건 자연스럽고 이해가 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아픔이 너무 커져서 네가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단계라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보는게 필요할 수도 있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워서 이대로 계속 가다보면 어차피 죽음에 이르게 될 거라면 되든 안되는 병원에 한번 같이 가보는 것도 어떻겠냐,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고 네가 죽는건 나에게도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도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테니 우리 같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을지 한번 같이 찾아보자'는 태도로요. 그동안 병원에 갈 용기가 없어서 못간 사람이라면 병원에 같이 가서 진찰받을 때 함께 있어주겠다고 제안하거나 여러가지 방법들이 있겠죠.


 어차피 신뢰감이 없는 사람, 내 아픔을 공감해주지 못하는 사람이 병원에 가보라고 말을 한다고 해서 병원에 가지는 않아요. 우울증 환자들 중 상당수는 병원에 가는 것 자체를 어려워해요. 우울증에 걸린 자신의 모습을 남에게 드러내는 것, 애써 잊고 살아온 자기 자신의 상처와 온갖 부정적인 감정들을 새삼 느끼게 되는 것을 꽤 힘들어하죠. 하지만 내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사람이 가자고 하면 그 힘든 걸 감수하고 병원에 갈 용기를 낼 확률이 올라가요.


 더러는 자살하고 싶다는 사람이 나중에 장난이었다고 무마해버리거나 다시 웃고 밝은 모습을 보이거나 평소와 같은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걸 보고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해서 병원이나 전문기관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생각하시는 경우도 많은데... 그러시면 위험해요. 정말 누가봐도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자살' 이야기를 했다는건 이미 그 사람의 마음속이 상당히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걸 의미해요. 마음에 병이 생겨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스스로는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거예요. 쉽게 낫는 병이 아니고 방치하면 몇년이 걸리든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흔히 하는 착각이 '어제까지만 해도 밝게 웃고 즐거워했던 사람이 오늘 자살한다는 건 말이 안된다'는 생각이에요.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라고, 자살을 곧 실행에 옮길 사람이라고 항상 불행하고 고통받는 얼굴로 돌아다니지는 않아요. 오히려 마음의 고통이 너무 크면 그걸 다른 사람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감추려고 생글생글 웃고 돌아다니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도 자살 시도에까지 이를 정도로 아주 심하게 고통받고 벼랑 끝에 몰렸던 때에도 부모님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했고 웃었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고 평소처럼 지냈어요. 올해도 자살 생각을 할 때조차도 모임에 나가서 아무렇지 않게 웃고 '요즘 괜찮게 지낸다'고 이야기하고 그랬어요. 그러니 한번이라도 자살 이야기가 나왔다면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 마시고 무조건 병원에 같이 가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꼭 받게 해주시는걸 권해드리고 싶어요.





 이건 저의 생각, 감정, 경험에 기반한 글이다보니 개인차가 있을 수 있어요. 사바사 케바케입니다. 그 점은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자살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특히 가족 중에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힘드시겠어요. 자살을 자주 생각하는 오렌지나무라는 사람의 마음이 이렇고, 오렌지나무라는 사람은 자살 이야기를 할 때 주위 사람들이 이렇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이런 글을 읽으시고 위기 상황에 놓여있는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는 실마리를 얻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마음에 이 글을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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