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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Dec 01. 2019

자해를 명상으로 전환하기

영화 명상


 우울이 확 터져나오거나 감정을 추스를 수 없거나 자해충동이 올라오거나 죽고 싶을 때, 가장 중요한건 과거(후회, 부정적인 기억, 기억에 딸린 온갖 감정들...)나 미래(불안, 공포 등)에서 벗어나 현재에 머무는 거예요. 


 현재에 머무는 방법은? 감각에 집중하면 돼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뭐든 좋아요. 지금 내 눈에 보이고 내 귀에 들리고 내 몸이 느끼고 내 코에 맡아지고 내 혀에 닿는 것들을 감각하면 우리는 현재에 머물 수 있어요. 요즘 마음챙김 명상 수업을 듣고 있는데 거기서는 이렇게 설명하더라고요. 우리의 뇌의 정보처리용량의 한계 때문에 (덕분에) 우리가 감각을 더 많이 느끼면 느낄 수록 생각은 줄어든대요. 우리를 괴롭히는 생각,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를 오가면서 불안과 후회와 괴로움을 불러일으키는 생각을 감각으로 밀어내는 거죠. 현재 우리가 느끼는 감각에 집중하는 것, 그게 명상이래요.


 아직 명상이 잘 된다고는 못하겠지만 전보다는 감각에 주의를 많이 기울이고 있어요. 힘든 순간이나 생각이 다가올 때마다 현재 저의 감각을 느껴보고 따라가려고 하죠. 지금 무엇이 들리는가, 내 몸은 지금 어떤 감각들을 느끼고 있는가, 호흡을 하면서 코에 느껴지는 감각, 가슴이 부푸는 것, 배가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 이런 것들에 집중해요. 그러다보면 문득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살 수 있는 건 오직 현재라는 것을요. 설령 사형선고를 받아서 내일 아침에 죽게 된다고 하더라도, 저는 지금 여기 앉아서 오른쪽 다리가 조금 저리고 엉덩이와 방석이 맞닿는 감각을, 가슴 윗쪽과 어깨가 살짝 뻐근하고 양 팔을 들어서 겨드랑이 옆쪽 근육이 긴장하고 있는 감각을 느끼고 있죠. 내일 아침에는 다른 감각을 느끼고 죽더라도 그건 내일이지 지금은 아니에요. 지금의 저는 안전하고, 죽음과 관련된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고 죽음과 관련된 아무런 일도 저에게 일어나고 있지 않아요. 저는 지금을 살고 있어요. 이곳, 여기, 지금에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인한 고통이 없죠. 우울이나 불안이나 공황은 우리의 감각에 머물고 있지 않아요. 그것들은 생각에 머물죠...



 이 명상의 원리는 사실 자해의 원리와도 비슷해요. 자해를 그만둔지 10년은 넘은 것 같지만 자해를 했을 때의 그 느낌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해요. 칼로 팔을 그으면 그 순간 우울증으로 인한 고통이 싹 사라지면서 뇌를 깨끗하고 맑은 물로 씻어주는 것처럼 머리가 개운해졌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원리는 명상과 비슷했던 것 같아요. 몸에 통증을 느끼면서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생각은 밀려나고 감각의 비중이 확 높아졌던 거죠. 통증에 집중하면서 생각이 줄어들고 저는 그 통증을 느끼는 현재에 잠시나마 머물 수 있었던 거예요. 우울과 불안이 없는 현재의 감각에 머물 수 있었던 거죠.


 그때 왜 사람들은 자해를 미친 사람이 하는 일로 보는 걸까, 왜 자해는 숨겨야 되는 일일까, 왜 자해는 나쁜 짓이지... 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자해는 그 사람이 지금 견디기 힘든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지 그 자체가 나쁜 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렇게 해서라도 순간적으로 고통을 해소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자살까지 가지 않는다면 오히려 좋은 거죠. 보통 자해하는 사람들은 소독약을 준비해놓고 안전하게 하기도 하고요.


 저는 자해하다가 제가 감당하기 힘든 큰 부상(?)을 입고 그걸로 한달 가까이 고생한 경험을 한 이후로 자해를 그만두긴 했어요. 그 사건에서는 자해가 가져다주는 만족감보다 고통이 더 컸기 때문에 자해가 꺼려졌어요. 자해를 그만뒀다고 해서 좋아진 건 아니고... 근본적으로 나의 고통을 해결해줄 수 없는 자해 따위를 하느니 자살을 하자...는 쪽으로 생각이 바뀐거죠.ㅎㅎㅎ (자해를 대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주지 않고 무작정 자해를 막으면 이렇게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그래서 전 자해 자체가 나쁘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명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우울이나 불안이 가져다주는 고통에서 어떻게든 벗어나보려는 노력이죠. 이상한 것도 아니에요. 자해는 견딜 수 없는 고통에 마주했을 때 동물이든 인간이든 하게 되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에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은 쥐도 자기 털을 뜯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죠. 미치거나 이상한게 아니죠. (그 사람이 그런 고통을 겪게 된 상황이나 병이 이상하고 미쳤을 뿐...) 


 다만 이 이야기는 하고 싶어요. 자해는 세 가지 점에서 좋지 않아요.


 첫째, 자해흔이 남아요. 저는 자해를 안한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제 팔에는 자해흔이 남아있어요. 반팔을 입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눈썰미가 좋은 사람이라면 자해흔이라는 걸 딱 알아볼 수 있는 흉터가 남아있죠. 저는 자해 횟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에 이 정도지만 자해에 의존할수록, 자해 횟수가 늘어날수록 자해흔은 숨길 수 없이 늘어나게 되어 있어요. 자해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자해에 관해서 편견이 많기 때문에 이런 자해흔은 나중에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상대방에게 불필요한 편견을 심어줄 수 있는거죠. 그리고 자해흔이 늘어날수록 우리 자신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돼요. 자해 흉터가 우리 몸을 예쁘게 보이게 해주지는 않잖아요. 스스로 자해 흉터를 보면서 피부가 이렇게 망쳐지고 보기 흉하게 된 걸 비관하고 자신을 더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어요. 나는 이렇게 자해를 하는 이상하고 미친 사람이라고 자책하고 자괴감을 느낄 수 있죠. 


 둘째, 자해는 일시적인 효과를 줄 뿐이에요. 감각에 집중하는 명상은 궁극적으로 삶의 매순간 이어질수록 좋겠죠. 5분간 감각에 집중하고 다시 우울과 불안에 휩싸인다면 큰 도움이 되지는 않겠죠. 감각에 집중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자주 명상하고, 나중에는 명상이 일상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진다면 우울과 불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겠죠. 그런데 자해는 물리적으로 그렇게 자주 할 수가 없어요. 하루에 두번 세번 팔을 그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자해는 일시적이고, 지속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어요.       

 

 셋째, 나를 해치는 건 어떤 이유에서든 좋지 않아요. 아무리 명상의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아프게 하고 해치는 건 후폭풍을 가져와요. 자해를 해서 일시적으로 고통을 견딘다고 해도 자해를 했다는 사실은 고통의 원인이 되는 우울에 장작을 던져주죠. 악순환이 되는 거예요. 나를 해치고 아프게 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우울증이 더 심해지고 자존감이 망가지고 고통이 더 커지고... 그래서 다시 자해가 필요해지는 거죠. 



 그래서 정말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서 자살까지 생각날 정도라면 일시적으로 자해에 기댈 수도 있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감각에 집중하는 연습을 꾸준히 해서 자해를 명상으로 전환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감각에 집중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제 경험상 너무너무 심하게 고통이 몰려올 때는 감각에 집중하는 것 자체가 좀 힘들었어요. 그럴 때는 몰입도가 높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올해 제가 많이 사용했던 방법은 영화 보기였어요. 영화를 보면서 시각과 청각에 집중하고 영화를 보고 있는 저의 현재 외에는 다른 모든 것들을 잠시 차단하는 거죠. 영화를 보는 동안은 저 자신의 일이 잘 생각나지 않아요. 영화의 주인공과 스토리에 몰입하게 되니까요. 유튜브 영상도 좋지만 조금 짧고 아무래도 영화만큼 집중도가 높은 스토리와 영상을 보여주지는 못해서 저는 영화가 더 나은 것 같아요. 


 제가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는 여기예요. 


https://series.naver.com/movie/freeMovieList.nhn


 여기서 평소에 영화를 다운받아 놓은 다음, 아주 힘든 일이 있고 감각에 집중하는 것조차 힘들 때는 반사적으로 노트북을 켜요. 새로운 영화를 보거나 (괜찮은 영화일지 평점이나 장르를 검색해보기도 하고요) 아니면 안전하게(?) 전에 봤고 또 볼 만큼 괜찮아서 남겨둔 영화들을 다시 보거나 하죠. 자해하거나 자살하고 싶어질 때, 자해나 자살은 생각하지 않지만 그만큼 힘들 때는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미리 다운 받아둔 영화를 켜는게 나중엔 습관이 돼요.  


 네이버 시리즈에서는 2~3일에 한번 간격으로 무료 영화를 다운받을 수 있어요. 올해 1년간 이용해본 경험으로는 2~3일에 한번 다운받는 정도로도 충분했고, 제공되는 영화들도 90% 정도는 괜찮았던 것 같아요. 저는 이전에는 영화를 거의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문외한이라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대부분 괜찮았고 몰입하기에도 좋았어요. 무료가 아니었다면 현실적으로 그렇게 많은 영화를 보기도 힘들었을거고 영화 자체를 보게 되지도 않았을 것 같아요. 아무튼 무료라서 시도해볼만 하다는거:)


영화를 보는 동안에는 시각과 청각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어요. 그것 뿐만 아니라 몰입해있는 동안 다른 사람의 삶을 경험해보는 것도 좋았던 것 같아요. 저와 비슷한 상황에 관한 영화들을 보면서 공감하고 영화가 주는 긍정적인 메시지들을 받아들이면서 생각도 전환하고... 아무튼 몰입 외적인 부분도 정말 좋았어요. 덧붙여서 저는 일종의 치료용으로 영화를 본 거지만 결과적으로는 이게 취미생활도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하고 이야기 나눌 거리가 많아져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데도 도움이 좀 됐어요. 고립되어서 살다보면 마이너한 것들을 덕질하게 되거나 아니면 무기력증때문에 정말 아예 아무것도 못해서 다른 사람들과의 이야깃거리 자체가 줄어드는 경험... 아마 해보신 분들도 계실 거예요. 그러면 다른 사람들을 만나더라도 이야기에 끼어들기도 힘들고 공통의 화제를 만들기가 힘들죠. 그럴수록 더 이질감, 자괴감 느끼고 고립되어버리는 경험... 그런 점에 있어서도 영화 명상은 괜찮은 것 같아요. 


 마음챙김 명상에 관해서는 다음에 따로 후기 남길게요. 총 8주 동안의 무료 교육이었는데 전 정말 어마어마하게 좋았어요. 마음을 어떻게 훈련하는지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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