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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Dec 16. 2019

수치심 권하는 사회

자존감의 가장 큰 적

길고양이는 쓰레기통을 뒤져 먹이를 찾는걸 수치스러워할까?


 몇달 전 일이에요. 마을버스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예요. 제 앞자리에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아이가 앉았고 아이 엄마는 서있었는데 아이 엄마가 문제를 내더라고요.


 "8 x 9=?"


 아이는 아직 구구단을 다 외우지는 못했는지 선뜻 대답을 못하고 질문이 뭐였는지 잘 못들었다고 다시 물어보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65, 68, 54... 이런 답들을 하나씩 조심스레 내놓더라고요. 아이 엄마는 틀렸다고 이야기하면서 다시 잘 생각해보라고 하는데 이미 목소리가 살짝 굳어있었어요.


 그 순간 아이가 어떤 심정인지는 상상할 수 있었어요. 일단 그날 저녁 내내 엄마 눈치를 엄청 봐야할 거고 아마 저녁시간에 먹고 싶은 햄을 구워달라고 애교를 부리기도 좀 고민되겠죠. 설거지할 때 그릇 부딪치는 소리도 더 많이 날 거고 평소라면 넘어갔을 작은 잘못들... 장난감 정리를 안 했다거나 동생이랑 싸운다거나 할 때도 좀더 혼날 수도 있겠죠. 저녁 출퇴근 시간 버스 안이라서 사람들이 꽉 차있었고 조용했는데 그 안에서 답을 계속 틀리니 많이 창피하기도 했을 거예요.  


 아이는 결국 정답을 맞추지 못했는데 엄마는 이렇게 말했어요.


 "우리 준서(가명입니다. 이름이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이 이름은 확실히 아니었어요.ㅎㅎ)가 구구단을 아직 잘 모르네. 큰일이다. 너 소풍가서 선생님이 애들 앞에서 구구단 물어보셨는데 이렇게 틀리면 어떻게 해? 그럼 애들 다 웃고 준서는 구구단도 아직 모른다고 놀리겠지. 그러면 얼마나 창피하겠어."

 

 "선생님은 소풍가서 그런거 안 물어봐." (듣고 있던 저도 동의...)


 "혹시 물어보실 수도 있잖아."


 음... 대충 이렇게 대화가 진행되었는데... 사실 꽤 흔한 대화이기도 하죠. 어릴 때부터 주위에서 이런 말을 참 많이 하잖아요. 언니/누나/형/오빠가 되어서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남자애가 울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이런 류의 말들요. 악의없이, 아이를 잘 되게 하려고 하는 말들이지만 전 별로 좋은 말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것 말고도 우리 사회에는 수치심이 참 많아요. 길가다가 미끄러져 넘어지기만 해도 부끄럽고(온갖 종류의 사고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들이 다같이 웃고 당사자도 부끄러워하는 일이죠), 안좋은 집, 가난한 동네에 살아도 부끄럽고, 부모님이 초라한 모습으로 학교에 와도 부끄럽고, 유행에 안 맞는 옷을 입어도 부끄럽고, 내 준비물만 친구들 것과 다르면 부끄럽고, 맞아도 부끄럽고,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안 나와도 부끄럽고, 안좋은 대학교를 나와도 부끄럽고, 안좋은 직장을 다녀도 부끄럽고, 백수로 살아도 부끄럽고, 못생겨도 부끄럽고, 살이 쪄도 부끄럽고, 모솔이라도 부끄럽고, 너무 말라도 부끄럽고, 키가 작아도 부끄럽고, 노력을 안해도 부끄럽고,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부끄럽고, 사회성이 없어도 부끄럽고, 왕따를 당해도 부끄럽고, 친구가 없어도 부끄럽고, 이혼을 해도 부끄럽고, 난임이어도 부끄럽고, 술을 못 마셔도 부끄럽고, 밥을 많이 먹어도 부끄럽고, 밥을 남겨도 부끄럽고, 성욕이 많아도 부끄럽고, 애인한테 능력있는 남친 내지는 예쁜 여친이 아니라서 부끄럽고... 또 무슨 부끄러움이 더 있을까요?


 수치심이 인간에게 가장 강렬한 감정 중 하나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실제로도 수치심이 심하면 자살까지 하는 경우도 가끔 있죠. 아마 그렇게 된 건 인간이 무리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수치심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 같기도 해요. 수치심이 없으면 남의 눈치를 별로 안보게 되겠죠. 다른 사람의 시선을 크게 신경쓸 이유도 없고요. 그러면 눈치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무리의 보이지 않는 규칙들, 암묵적인 규칙들을 알아채기도 어렵고, 굳이 알 이유도 없겠죠. 그런데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그런 암묵적인 규칙들에 의해서 결속력을 유지하고, 구성원들은 그런 규칙들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소속감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수치심은 무리 생활에 꼭 필요한 감정, 그래서 발전시켜야 할 감정 중 하나였을 거예요.


 그래서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공동체에서는 수치심이 더 강하게 요구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점점 개인주의 사회로 바뀌어 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과도기가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는 아직 곳곳에 불필요한 수치심들이 넘쳐나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그런 수치심들을 학습하면서 자라게 되는거죠.


 전 개인적으로 불필요한 수치심은 조금씩 청산했으면 좋겠어요. 최소한 수치심을 더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수치심은 자존감에 가장 큰 적이거든요. 수치심은 공동체 생활에 도움이 되는 만큼 개인의 개성을 옥죄는 감정이기도 해요. 우리는 다 다른 존재이고 뚱뚱하든 못생기든 술을 못 마시든 친구가 없든 뭐가 어떻든 그 모든게 '자기 자신'이고 그 사람만의 '개성'이에요. 좋든 나쁘든 그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이기에 의미있는 것들이죠. 그걸 인정하는게 자존감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수치심은 그걸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어요. 이상적이고 절대적인, 혹은 공동체에서 가장 뛰어난 어떤 사람의 능력을 기준으로 너는 못났다고 평가해버리죠. 수치심을 권하는 사회에서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그런 기준을 들이대요. 그래서 원래같으면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않아야 되는 개인의 영역에까지 수치심이 쳐들어와 점령하는 거죠. 제가 연구자는 아니지만 아마 수치심이 많은 사회에서는 우울증도 많을 거예요.


 저도 우울증과 싸우면서 수치심이 제 안의 불필요한 수치심을 덜어내려고 많이 노력해요. 제가 생각하기에 수치심을 느껴야 되는 경우는 딱 한 가지예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고 있는가?" 다른 사람에게 부당한 피해를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죄를 짓는 일은 수치심을 느낄 수 있죠. 그런데 그밖에... 저의 자존감을 건드리는 부분에 관해서는 불필요한 수치심은 명확하게 인식하려고 노력해요.


 예를 들면 시험에 실패한 30대의 경력없는 백수라는게 수치스럽다고 느껴지면, 예전에는 망치에 얻어맞든 그 생각에 얻어맞고 KO되었다면, 지금은 이렇게 한번 물어봐요. "내가 백수라서 피해본 사람 있나?" ㅋㅋ 당연히 없겠죠. (부모님 제외...ㅠㅠ) "그럼 이건 내가 수치심을 느낄 일은 아냐."라고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요.


 수치심이라는 감정이 들 때 그 감정을 억압하거나 부정하는 건 아니에요. 그건 오히려 악영향을 가져와요. 저는 수치심이라는 감정 자체는 인정해줘요. "아 내가 이런 저런 이유로 수치심을 느끼는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준 다음에 그렇게 물어보는거죠. "그런데 이것 때문에 누가 피해봤어?"


 앞의 그 구구단을 외우던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강한 감정인 수치심을 자극해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게 만들려는 의도로 그런 말을 했겠죠. (애초에 사람 많고 조용한 버스 안에서 아이에게 시험을 보는 것도 좋지는 않죠. 틀리면 아이가 수치심을 느낀다는걸 배려하지 않은 거니까요.) 하지만 있는 수치심도 좀 버릴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없는 수치심까지 주입시켜주는건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아이가 어리니까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부모나 주위 어른들의 말에서 떨어지는 이런 작은 수치심의 씨앗들은 평생 아이 안에서 자라요. 나중에는 바오밥 나무처럼 커져서 심한 우울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죠. 아이가 자존감 있고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란다면 수치심으로 아이를 키우려고 하지 않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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