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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Dec 31. 2019

2019년에 한 것들

일기주의!

 


 저의 우울증 증상 중 하나가 제가 보낸 시간들을 무의미하고 쓸모없는 것으로 느끼는 거예요. 인생이 멈춰있는 것 같고 수많은 시간들을 낭비해버린 것처럼 느껴지죠.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을 만큼 앞서가고 는데 저 혼자 강변에 남아 어쩔 줄 모르고 울고 있는 기분... 하지만 저는 무기력의 흐름과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한걸음씩 잘 걸어왔던 것 같아요. 설령 걷지 못하고 쓰러져 있었던 시간이 더 많았다고 해도 그 모든 것이 제 삶이겠죠.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 삶은 제가 무엇을 하든 있는 그대로, 살아진 그대로 긍정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망한 인생이란건 어떤 경우에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삶이 있는 그대로 좋아서 긍정하는게 아니라... 긍정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우울증의 덫에 걸리지 않으려면요.


 실제로 삶이 그렇기도 하고요. 흘러간 강물은 절대 되돌아오지 않죠. 강물에 손을 넣었을 때 손을 스치고 지나간 물은 손에 닿은 그 순간에만 함께할 수 있죠. 지나가버리면 다시 만날 수 없잖아요. 삶도 그렇다는 생각이 요즘 드네요. 살아낸 삶은 과거가 되어서 제 손을 떠나죠. 이미 저에게서 떠난 것은 그대로 긍정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제가 긍정하기에 앞서 이미 물리적으로(?) 긍정되고 완성된 과거인거죠. 그걸 부정하고 후회해봤자 우울증밖에 남지 않는 것 같아요.


 과거는 바꿀 수 없으니까 긍정해야 된다, 그러니까 매순간 피터지게 치열하게 살아야 후회가 없다... 이런 이야기는 아니에요. 과거는 되돌릴 수 없으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매순간 열심히 살아야 된다는건 오히려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지 못하고 부정하는걸 전제로 하고 있죠. 후회할만한 삶이 있는데 그걸 피해야한다는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제가 요즘 느끼는 삶은 그렇진 않아요. 후회할만한 삶도, 자랑할만한 삶도 없고 그냥 삶이 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그렇게 생각할 때도 있고 우울증과 함께 하면서 삶을 부정하고 후회하는 순간도 있기 때문에 2019년도에 제가 했던 것들을 정리해보려고 해요.

 


1. 마음 고생 & 몸 고생



 올해는 아빠에 관한 일(아빠의 우울증, 아빠의 건강, 경제적인 문제 + 니트족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걸 지켜봐야 하는 저의 죄책감 등등), 막막한 제 인생에 대한 걱정, 안 맞는 사람과의 연애로 마음 고생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몸 고생이라면... 자잘한 병들이 좀 있었네요. 복통이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자궁근종이 9cm짜리가 있다고 해서 수술을 받았고, 아팠어요...ㅠㅠ 그 뒤엔 외이도염이 생겼는데 쉽게 안 나아서 3주 정도 고생했어요. 그 다음엔 역류성 식도염에 걸렸는데 두달 넘게 약을 먹었는데도 아직 안 낫네요. 속쓰림은 거의 없는데 목이 조이는 듯한 이물감은 아직도 심해요. 역류성 식도염 덕분에 식습관을 바꿀 수밖에 없었어요. 야식 절대 금지, 폭식 금지, 조금씩 꼭꼭 씹어먹기,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 금지... 그렇게 반강제적으로 식단 조절을 하는 와중에 장염이 왔는데 제 인생에서 이렇게 심한 장염은 처음이었어요. 3주 정도 갔는데 지난 2주간은 죽도 거의 못 먹고 오한이 심해서 누워만 있었어요.


 올해는 몸도 마음도 좀 힘들었네요. 그래도 꿋꿋하게 잘 버티고 살았던 것 같아요. 특히 기억나는건 수술때문에 입원했을 때 수액 주사바늘을 7번인가 8번인가 찔렸는데... (멘붕하신 간호사님ㅠㅠ) 2, 3번째 까지는 '이건 견딜 수 없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는거야!'라고 강한 현실부정하다가 4번째부터는 체념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거.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받아들이는 것밖에 답이 없다는 걸 그때 느꼈어요.   

    


2. 가톨릭 영성 아카데미 물이 솟는 샘 (종교주의)


수업 듣던 집에 가끔 와있던 길고양이.. 이런 주택가의 예쁜 집이에요


 종교 이야기가 불편하신 분들은 패스해주세요:)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4월 정도까지 가톨릭 영성 아카데미 물이 솟는 샘의 예닮영성 프로그램에 참여했어요. 회비는 교재비용 3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따로 수업료는 없었어요.


 이 프로그램은 명동성당 옆 가톨릭 회관에서 열리는 수업과 혜화동의 본원에서 열리는 수업이 각각 있는데, 전 혜화동 본원에서 수업을 들었어요. 혜화동 수업은 인원수도 (너무) 적고, 오래 신앙생활 해온 분들이 주로 오시는 편이라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주택가의 한 집인데 그 집도 정말 아담하고 예쁘고요. 저처럼 신앙이 아직 부족한 사람도 불편하지 않을 만큼 종교적인 색채는 살짝 약한 편이었어요. 성경 말씀에서 시작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관해 생각해보는, 그런 프로그램이었어요. 가톨릭 신자라면 한번 들어볼만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우울증에 도움이 되는 정도를 물어보신다면 70% 정도? 저는 수업 들을 때마다 눈물 흘리고 편안해진 마음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이 수업 이후에 굉장히 힘든 일들이 일어나서 전 한동안 제가 신앙을 잃었다고 생각했어요. 가끔 고해성사를 다니고 미사에 가기도 했지만 평일미사까지 다니던 작년에 비하면 올해는 성당에 거의 나가지 않았죠. 기도하면서 느끼던 기쁨도 사라지고 신이 공허하다고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 유튜브에서 제 문제에 관해 답을 줄 수 있는 영상을 보고 다시 신앙으로 돌아왔어요.


 이전에 저와 하느님의 관계는 생물학적인 딸과 아빠 관계와도 같았어요. 전 주로 좋은 건 달라고 하고 나쁜 건 주지 말라고 떼를 썼죠. 그러다가 나쁜 것들만 주어지자 갑자기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공허하게 느껴졌어요. 어차피 삶을 있는 그대로 놔두시는게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의 사랑은 뭐지, 하느님이라는게 정말 존재하는건가...라는 회의가 들었거든요.

 

 그러다 얼마 전 어떤 동영상을 봤는데 이런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집착을 버려야 있는 그대로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요. 제 안에 있는 하느님에 대한 기대, 신앙에서 오는 만족감에 대한 집착 같은 것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필터가 되어서 그 범위를 넘어선 하느님은 보지 못하게 만들었던 거죠. 그래서 이제는 제 안의 욕심, 아집같은 것을 좀 내려놓고 저 자신을 비우면서 다시 신앙 생활을 해보려고 해요. 무엇을 주시고, 제가 무엇이 되기를 바라시는지를... 제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받아들이면서 그냥 보려고요. 이게 올해 저의 신앙 생활의 결산(?)이네요.



3. 도자기 수업 (8주)



 이건 저희 구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이에요. 8주 과정에 6만원(수업료, 재료비 포함)으로 다기 세트, 컵, 수저통, 접시 등을 만들어갈 수 있는 아주 가성비 좋은 프로그램이었죠. 요즘은 도자기 원데이 클래스같은 것들도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도자기 만들기는 특히 우울증일 때 도움이 많이 될 만한 고강도 노동이에요. 저는 도자기 수업을 신청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힘든 수업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수업이 10시부터 3시까지였는데 작업을 하다보면 점심을 먹을 시간도 별로 없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어요. 손이 느려서 그렇기도 하고 흙이 마르기 전에 빨리 만들어야 된다는 압박감도 살짝 있고,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창작에 몰입하게 되기 때문에 계속 고치고 싶은 부분이 눈에 보여서 쉴 수가 없었어요. 특히 흙이라는 소재가 무르다보니 원하는 모양이 생각대로 잘 안나오거든요. 10시부터 3시까지 점심도 거르고 화장실도 안 가고 계속 작업하다보면 정말 허리도 아프고 엄청 힘들어요. 주무르고 있는 흙 이외의 아무 것도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우울증에는 정말 도움이 많이 될 수도 있어요. 촉촉한 흙을 주무른다는 것 자체가 힐링이 되기도 해요.


 다만 문제는 다같이 수업을 듣고 옆에서 서로의 작품들을 보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내 손만 똥손이고 내 작품만 너무 못났다는 열등감을 강하게 받을 수도 있어요.ㅠ_ㅠ 저는 이 스트레스가 굉장히 컸어요. 똑같은 컵을 만들어도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저도 그렇게 만들고 싶은데 손은 따라주지 않고... 자꾸 옆사람들 작품들을 곁눈질하게 되고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만들고 있는 이 작품들이 저 자신과 같다는 생각요.


 우울증이 오게 된게 도자기를 만드는 이 과정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한테 제 작품은 하나뿐이고 소중하죠. 그런데 자꾸 주위 사람들을 곁눈질하고 비교하게 되고, 제 작품이 못나다는 생각이 들면 저는 너무 부끄럽고 마음이 안좋아요. 제 작품은 어디 안 보이는데 치워두고 정말 잘 된 남의 작품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다가도 제 작품을 다시 보면 또 애틋해요. 못나도 내 새끼(?)니까요. 제가 만든 제 것이 잘 되어야 정말 좋은 거지 남이 만든 걸 가져와봤자 그건 제가 아니잖아요. 하지만 못난 모습을 보면 여전히 남보기 부끄럽고 못마땅한 기분이 들어요.


 저한테 저는 하나뿐이고 소중해요. 그런데 제가 현실적으로 못나게 되니까 저는 제가 부끄러웠어요. 못난 저(외모든 직업이든 성격이든)는 감추고 치워버리고 정말 잘 된 남의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가도 저 자신이 애틋하죠. 제가 정말 바라는 건 저 자신이 남처럼 잘 되는거지 저를 없애고 남이 되고 싶은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저에게 저 자신은 남보기 부끄럽고 못마땅해요.


 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저는 제 도자기 작품들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어요. 우울증에 도움이 되려고 온 프로그램에서조차 저는 남들과 비교하고 열등감과 수치심을 느끼고 고통을 받고 있었어요. (...)


 그런데 실용적인 도자기를 만들고 싶어서 수업을 들으시는 거라면 그냥 다이소 제품들을 더 추천드려요. 다이소에 가면 예쁘고 실용적인게 더 많아요.ㅎㅎ 제가 만들어보니 컵이나 주전자같은 것들은 실용성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컵의 손잡이 부분들도 다 노하우가 있는 거였어요. 직접 만든 컵들은 아무래도 손잡이를 잡거나 할 때 뭔가 어색하고 무게중심이 맞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잘 사용하게 되지 않아요. 대신 접시, 파스타 볼, 국자받침 같은 종류나 아니면 자기에게는 필요한데 시중에 딱 맞는 기성품이 없는 것들(예를 들면 붓 놓는 도구 등)을 만드는 건 꽤 괜찮아요.

 

 올해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도자기를 하면서 정말 머릿속을 싹 비울 수 있어서 좋았아요. 하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쓰게 되고 힘도 들어서 (평생 안 아프던 허리가 아프기 시작해서...) 8주 과정에 참여한 이후로는 다시 듣진 않았어요. 아무튼 현재 우울증으로 굉장히 힘들고 자해나 자살 생각도 날 정도라면 도자기 수업 한번 도전해보시는 것 정말 권해드려요.



4. 예수회 후원회 금요침묵 피정 (종교주의)


김밥 맛있어요!


 매주 금요일에 서강대 옆에 있는 예수회 센터에서 열리는 금요침묵 피정이에요. 회비는 없고 따로 신청해야 되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가서 들으시면 돼요. 제가 다닐 때는 오전에 강의와 침묵 기도, 그리고 점심으로 김밥 주시고 다시 오후에 강의와 침묵 기도, 미사... 이렇게 진행되었는데 얼마 전에 갔을 때는 조금 바뀌었더라고요. 오전 강의와 침묵 기도, 미사로 간단하게 끝나는 형식으로 바뀌었어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강의는 조금 종교적인 편이라 가톨릭 신자가 아니신 분들에게는 불편할 수 있어요. 종교가 아니라,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는 기준에서 본다면 강의는 좀 케바케였던 것 같아요. 이건 엄청 도움되고 좋은 강의라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 피정이 정말 좋았던 것은 강의보다는 침묵 기도 시간이에요. 제가 금요침묵 피정에 다녔던 때는 아빠가 저 때문에 심한 우울증을 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 심하게 고통받고 있었을 때였어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죽고 싶다는 아빠의 한숨, 분노... 이런 것들을 듣게 되니까 눈 뜨는게 고통스러울 때였죠. 진심으로 아빠의 고통을 덜기 위해서 아빠를 보낼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되나 라고 생각하는 상황이었어요. 마음이 너무 힘든데 갈 곳은 없고... 그래서 여기에 매주 갔어요.


 오전에 1시간 정도 강의를 듣고 나면 침묵기도 시간이 시작되는데 이때는 성당 안에 불이 다 꺼져요. 스테인드 글라스만 빛나고 있고 완전한 어둠이죠. 참여자들도 나름 종교적인 이유로 기도하러 오신거라 거의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없이 아주 조용한 편이에요. 의자는 푹신하고 성당 안은 따뜻하고... 어둠과 고요 속에 있게 되죠. 저는 너무 힘들어서 울면서 기도할 때도 있었고 그냥 눈을 감고 쉴 때도 있었어요. 그 시간이 끝나면 한결 편안해지고 위로받는 느낌, 잠시라도 쉬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러고 나서 봉사자님들이 주시는 김밥을 먹으면 좀 든든해지는 기분이었어요. "마음 고생 많았지. 맛있게 먹고 기운 차려라."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서 듣는 느낌이었죠. (예수회 후원회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려요!) 오후에도 다시 강연을 듣고 다시 침묵기도 시간이 있고요.


 그러고 3시에 미사까지 마치고 나오면 그날 하루를 어찌어찌 견뎌낸 거죠. 지하철을 타고 오면 더 빠르지만 환승할 기운이 없어서... 센터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어요. 버스로는 한참 돌아가서 1시간 넘게 걸리지만 그때 저는 하루를 버티기 위해서는 밖에서 시간을 더 많이 쓸 수록 좋았으니까 버스를 탔죠.


 저에게는 정말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해준 소중한 피정이었어요. 항상 다음 금요일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죽고 싶을만큼 힘들 때는 이런 곳에 가서 몇 시간 쉬다 오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좀 관심없는 강의라도 듣고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사람들과 함께 모여있고 밥 먹고... 이런게 저에게는 도움이 많이 됐어요. 종교가 있으신 분들은 종교단체에서 주최하는 이런 비슷한 행사들을 찾아보시고 힘드실 때 참여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 같아요.

    


5. 알바 (미스터리 쇼퍼)


 올해는 정말 몇년만에 돈을 벌었어요. 큰 돈은 아니고 매달 30만원 정도 + 상반기, 하반기에 한번씩 50만원 정도였지만 저한테는 꽤 도움이 됐어요. 일단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도 쓸 수 있는 돈이 생겨서 죄책감에서 많이 벗어나기도 했고, 돈을 번다는 것 자체가 힘을 주기도 하더라고요. 이건 한번 글을 쓴 적이 있으니까 패스할게요!



6. 떡 수업 (7주)



 이건 우연히 구청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무료 프로그램이었어요. 여성문제연구회라는 곳에서 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선착순 10명이었는데 게시물이 등록된지 20분 후에 읽어서 늦었을 줄 알았어요. 그때 이미 조회수 100이 넘었어요. 그런데 신청 방법이 이메일이라... 청년 버프를 받아서 10명 안에 들 수 있었어요. 아무래도 연세 많으신 분들은 이메일로 신청하려면 시간이 좀 걸리시니까요.(ㅠㅠ)


 재료비, 수업료 없는 무료 프로그램이었고, 매 수업 때마다 떡을 배우고 만든 떡을 집에 가져갈 수 있게 포장 용기도 나누어주셨어요. (가족이 이틀 정도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떡을 가져올 수 있어요.) 매주 3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정말 좋은 시간이었어요. 설기, 찰떡, 떡 케이크, 바람떡, 절편 등 다양한 떡을 만드는 걸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고... 떡 만드는게 의외로 쉽다는 것, 직접 만든 떡은 사는 것과 비교도 안 되게 맛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재료 준비는 손이 좀 가지만 떡 자체를 찌는 건 쉬웠어요. 그리고 간단한 설기, 찰떡 정도를 만든다면 재료 준비도 크게 힘들지는 않았고요. 갓 찐 떡을 먹어봤는데 저는 정말 놀랐어요. 전 떡을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에요. 떡이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요. 그런데 직접 만든 떡은 차원이 달랐어요. 엄청 맛있더라고요. 보통 떡집에서 사 먹는 것과 비교도 안 되게 맛있었어요. 이런 맛이라면 나중에는 제가 직접 쪄서 먹고 주위에 나눠주고 하고 싶더라고요.     

  

 떡 만들기는 설거지 거리도 좀 나오고, 떡을 찌는 동안 김이 새어나오는지 감시하고 (김이 옆으로 새어나오면 떡이 잘 안쪄져요) 김이 나오면 물에 적신 휴지로 그 부분을 막고 이렇게 해야 되는데... 이 과정이 생각보다 집중을 필요로해요. 그래서 노동 강도가 꽤 있어서 우울증에도 괜찮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떡을 다 만들고 맛있게 쪄낸 떡을 먹었을 때의 뿌듯함도 정말 크고요.


 간단한 떡 만들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아서 어디가서 배우지 않더라도 집에서 유튜브 같은 것들 참고해서 쉽게 만들어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다만 우울증이 있을 땐 뭘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아서... 원데이 클래스라도 찾아보시고 모든 것이 준비된 수업에 가서 만드시는게 더 낫겠죠.


(떡 만들기 수업은 찾기 쉽진 않은데 앙금 플라워 만들기는 원데이 클래스가 꽤 많더라고요. 앙금 플라워는 도자기 만들 때와 비슷하게 스트레스도 심하고 노동 강도도 높아서 괜찮은 편이었어요.-_-)



7. 심리상담 (10회기)



 저는 서울 심리지원 동북센터에서 무료 심리상담을 받았어요. 기본 8회기에 추가로 2회기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총 10회기 상담을 받았어요. 2월에 신청했는데 상담을 받게 된 건 6월 정도였어요. 무료 상담이다보니 대기자가 많아서 3~4달 기다리는 건 어쩔 수 없네요.


 서울 심리지원 센터에는 지역에 따라서 여러 센터가 있어요. 저는 동북센터 관할 구역에 거주하고 있어서 동북센터에서 받았고요. 서울 심리지원 동북센터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었던 건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한옥이 정말 예쁘고 아늑해서예요! 서울 심리지원 동북센터는 덕성여대 안에 있는데 건물 전체가 한옥이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한옥을 좋아하는데 동북센터의 한옥 건물은 정말 아늑했어요. 내부도 아기자기하고 편안하게 인테리어가 되어있고... 아무튼 심리상담보다 한옥이 주는 힐링이 조금 더 컸을 만큼 좋은 건물이었어요. 가면 과자와 주스, 냉녹차 등이 세팅되어있고 자유롭게 먹을 수 있었어요. 집에 갈 때 상담사님이 과자 가져가라고 챙겨주시기도 하고요. 와이파이도 됩니다. 항상 잔잔한 음악이 틀어져있는데 '인생의 회전목마'같은 지브리 ost들이 많았어요.


 처음에는 심리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 심층 검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심층 검사를 받게 돼요. 3시간 반 정도 걸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정말 진이 빠지는 검사였어요. 지능 검사까지 포함되어 있어요. 그 후에 원하는 요일과 시간을 정해 상담을 받게 돼요.


 검사 결과는 따로 주지는 않아요. 첫 시간에 상담자님이 간략하게 설명을 해주시는게 전부예요. 기억나는건 제 지능 검사 결과가 예전에 중학교 때 받았던 지능 검사 결과와 거의 일치한다는 것(제가 지금 우울증 때문에 지능 자체가 떨어져 있는 상태는 아니라는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강박이 심하다는 것. 강박이 심하다는 건 어느정도 느끼고는 있었지만 딱 말로 확인을 받으니 이게 제 문제라는 걸 확실히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때는 우울증이 많이 나아져있는 상태이긴 했지만 강박은 거의 그대로 있었거든요. 심지어 우울증에서 빨리 나아야 된다는 강박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제 강박이라는 건 '이래야 된다'라고 생각하는게 많다는 점이었어요. 손을 자주 씻거나 현관문 잠긴 걸 몇번씩 확인해야 하거나 이런 강박보다는 생각에서의 강박이 좀 많아요. '이래야 된다'라고 생각하는게 많으니 저 자신을 많이 괴롭히게 되는 편이죠. 아무튼... 이게 저의 주된 문제라는 걸 새삼 알게 된 건 도움이 많이 됐어요.


 상담은 주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쏟아내고, 거기에 대해 상담사님이 들어주고 질문하는 형태로 진행되었어요. 저는 가난해서 유료 상담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이 기회에 얻어낼 수 있는 건 다 얻어내야 겠다는 마인드로 상담을 받으러 갔어요. 그런 마음이었기 때문에 저 자신의 심리적인 방어는 거의 내려놓고 갔던 것 같아요. 방어적이고 회의적이고 소극적인 마음으로 상담을 받으러 가면 그만큼 얻을 수 있는게 적은 것 같아요. 상담이 겉돌게 되고 그 방어적인 마음을 깨트리는데 몇 회기를 소비하게 되니까요. 저는 그럴 여유가 없으니까 마음이 자연스럽게 열렸던 것 같아요.


 그래서 상담을 받으러 가기 전에 매번 계획(?)을 짰어요. 평소에 저 자신의 사고방식이나 감정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문제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두고, 이걸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지 모르겠으면 다음 상담 때 전부 다 물어보는 방식으로 상담을 받았죠. 부모님과의 관계에 관해서도 정말 다 쏟아내듯이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상담을 받는 과정에서 제 문제가 무엇인지, 제가 어떤 상처를 받고 왜 현재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되었는지를 좀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어요. 제 문제가 많이 정리된 느낌을 받았어요. 저 스스로 머릿속으로 제 생각이나 감정을 이야기하고 정리하는 것과, 다른 사람 앞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정리하는 것은 천지차이더라고요. 상담 과정에서 제 이야기를 하면서 동시에 제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1시간 동안 상담을 받고 나오면 저는 다시 숨쉴 수 있는 기분이었어요. 일주일간 질식하고 있다가 상담 과정에서 다시 산소를 공급받고 숨쉴 수 있게 되는 느낌. 그 자유로움과 해방감은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네요.     

 저는 심리상담은 한번 꼭 받아보시길 추천드려요. 사실 심리상담은 결국 자기가 자기 자신에게 매일 해줘야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자기 문제가 뭔지, 자기 우울증이 원인이 뭔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건 세상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자기 자신이에요. 우울증은 사람마다 다르고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과 깊게 관련되어 있으니까요. 그래서 자기 우울증을 해결할 수 있는 답을 찾을 수 있는 것도 자기 자신뿐이죠.


 그런데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니까 배워야 되겠죠. 그걸 배우려고, 나 자신에게 심리상담을 잘 해주려고 상담이 어떤 건지 배워보려고 상담을 받으러 가는거죠. 심리상담을 그런 관점에서 접근해보시면 어떨까요? 저는 한번 해볼만하다고 생각해요.


 상담 받기 전에는 상담사가 믿을만한지, 케미가 잘 맞을지... 여러가지 걱정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상담사는 어차피 상담이 끝나면 다시 보게 될 사람은 아니니까 전 그냥 믿기로 했어요. 전 예전에는 심리상담에 비용이 개입되는게 상담을 더 부담스럽게 만들 것 같다고 생각했거든요. 1시간에 8만원이라고 한다면 저는 8만원어치를 얻어가려고 애써야 되고 상담사 입장에서는 8만원어치 서비스를 제공하는 관계가 되는 건가... 해서 뭔가 거부감이 느껴졌거든요. 그런데 상담을 받아보니까 생각이 좀 바뀌었어요. 상담료를 내야 (제가 눈치를 봐야 되는) 인간 대 인간의 관계가 아니라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내담자 대 상담자의 관계가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면 누가 호의로 상담을 해주거나 아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과정에서 제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면, 저는 상대방의 눈치를 봐야 되겠죠. 이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이 지루해할지, 저 이야기를 하면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이런게 많이 두렵고 신경쓰일 거예요. 하지만 상담료가 개입되면 내담자는 자기 이야기를 자기 마음껏 다 할 수 있는 서비스를 구입하게 되잖아요. 그러면 상대방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 상대방의 기분은 어떨지를 눈치보거나 신경쓸 필요가 전혀 없죠. (물론 전 무료상담을 받기는 했지만 저 대신 서울시에서 어느 정도의 상담료를 드리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서 상담사가 믿을만한지 아닌지를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믿고 최대한 상담사를 활용하는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상담사와 케미가 너무 잘 맞는 것도 사실 좋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리 상담료가 개입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상담사와 내담자의 관계는 상담이 진행될수록 인간적인 관계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런데 저의 경우에는 상담사분이 저와 잘 맞기는 했지만, 상담사님의 주관이 또 있었고 그게 저의 생각이나 감정과 충돌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어요. 상담사님은 약간 이쪽으로 몰아가려고 하는데 저는 거기에 동의하지는 않는 상황요.


(상담사님의 저와 다른 견해가 저에게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고, 어쩌면 저 자신의 심리적인 방어 때문에 상담사님의 견해가 맞는데도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저는 제 심리상담의 주체는 저 자신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건 저한테는 답이 아닌거죠. 제가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는 그게 답이 되겠지만요.)

 

 그럴 때 상담사와의 관계가 좋은 편이었다면 저항하기 힘들 수 있어요. 자기 자신이 주도적으로 해나가야 할 상담의 과정에서 상담사의 눈치를 보고 상담사가 원하는 대로 바뀌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게 될 수도 있죠. 그런 것보단 차라리 상담사와의 관계가 적당히 좋고 적당히 거리가 있어서 아닌 건 아니라고 딱 말할 수 있는 사이인게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담에 관해서 미리 걱정하시기보다는 한번 부딪혀보시는게 어떨까 싶어요. "제가 못 보는 사각지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걸 좀 같이 찾아줄래요?" 이런 마음으로요.

 


8. 비자립 청년 마음치유 프로젝트 (114일)



 올해 참여했던 프로그램 중 가장 좋았던 것, 그리고 인생에서 지금까지 경험해본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은 비자립 청년 마음치유 프로젝트였어요. 청년재단과 공감인에서 주관한 프로그램이었고 8월 15일부터 12월 초까지 114일간 계속된 프로그램이에요. 참여대상은 저처럼 부모님과 함께 사는 비자립 청년들이었고 참여비용은 무료였어요. 대신 선정되기 위해서는 인터뷰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 사실은 이 인터뷰가 저에게는 조금 힘들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이 프로그램에 선발되기 위해서 제 과거나 현재 상태, 우울증, 인생의 망한(?) 정도까지 구체적으로 다 이야기해야 했으니까요. 인터뷰가 끝나고 자괴감, 수치심이 들었던 기억이 아직 나네요.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정말 굉장했어요. 저는 이 프로그램을 경험하면서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에 관해서 좀더 이해할 수 있었어요.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죠.


 참가비는 전혀 없었지만 프로젝트의 내용은 정말 고퀄이었어요. 프로그램들도 정말 좋았고 매번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이 제공되었죠. 프로그램 과정에서 필요한 것들(동화책이나 폼롤러 같은 것들)도 모두 선물받았어요. 그래서 끝날 무렵에는 저희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죠. "이렇게 다 퍼주시면 내년에 2기는 없는거 아냐?ㅠㅠ"


 프로그램 내용은 영화 치유, 동화책 치유, 6주간의 나편(치유밥상이 제공되며, 자신의 과거 상처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과정), 예술 치유(4주), 몸 치유, 삶 워크샵으로 구성되었어요. 프로그램들 하나 하나가 몰입도가 높은 내용들이었어요. 프로그램이 좋지 않았다면 매주 2번, 총 6시간 정도를 요하는 이 프로젝트에 시간을 낭비해가며 참여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내용 자체가 우울증의 치유에 도움이 많이 됐어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분들의 마인드도 좋았어요. 앞에서 이 프로젝트에 선발되기 위해 인터뷰할 때 제가 수치심과 자괴감을 느꼈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우리 사회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비자립 청년'들의 마음을 치유하려는 이 모임에서 한 가지 위험한 점은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태도에 따라 참여자들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이에요.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비자립 청년들이니까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이다, 불쌍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시선으로 비자립 청년들을 '도와'주려는 마인드였다면 저는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전 공감인의 힘을 이 부분에서 느낄 수 있었어요. 프로그램 운영자분들은 거의 공감인의 치유활동가분들이었는데 저희에게 전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어요. 그분들은 '나도 상처가 있는 사람이고, 당신들과 알아가고 마음을 나누려고 여기에 와 있다'라는 태도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셨죠. 저는 이게 가장 고마웠고, 공감인의 치유활동가들이 정말 공감인의 가치를 실천한다는 점에 관해서 더 믿음이 생겼어요.


 가장 좋은 건 친구가 생겼다는 거예요. 우울증은 정말 투병하기 힘든 질병이죠? 우울증에서 회복되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하고 공동체가 필요한데 우울증이라는 병은 사람과 공동체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어요. 우울증 때문에 사람을 만날만큼의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아서, 우울증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오는 카톡이든 전화든 연락 자체가 공격처럼 느껴지고 힘들어서... 우울증에 걸리면 사람을 멀리하게 돼요. 우울증이 장기화되면 친구가 거의 없어지게 되죠. 그러다보면 더 고립되고 외로워지고 자존감이 더 낮아지고... 우울증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점점 낮아져요.


 저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친구가 꽤 생겼어요. 114일간 서로의 상처나 속마음을 깊게 알게 된 친구들이죠. 다른 사람들에게는 제가 어떻게 비춰질지 몰라서, 다른 사람들이 부담스러울까봐 선뜻 이야기하기 힘든 것들을 이야기해도 괜찮은 친구들이 생겼다는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더라고요.


 예를 들면 우리 모임에서 몇명이 한번은 술을 마시러 갔는데 그날 집에서 아빠한테 카톡이 왔어요. 니 엄마가 너 데리고 집 나가겠다니까 와서 짐싸서 니 엄마랑 나가라고요.ㅎㅎㅎㅎㅎ (아빠가 화나면 좀 이래요) 다른 모임같으면 당연히 이 이야기를 할 수는 없고 '집에 일이 좀 생겨서 가야겠다'라고 했겠죠. 그런데 이 모임에서는 그냥 편하게 아빠한테 이런 카톡이 와서 집에 좀 가봐야 될 것 같다고 말이 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저에게 필요한 방식으로 공감, 위로를 받았어요.

  

 공감인에서 114일간의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참여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방법에 대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배웠다고 해서 완전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공감이라는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게 된 것 같아요. 이런 말을 하면 상처가 된다는 최소한의 것들을 배웠고, 충고, 조언, 비판, 평가하지 않으면서 대화하는게 맞다는 점에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조금씩 배워나가고 있는 과정 같아요. '앗, 지금 이 말은 충고로 느껴져요.'라고 말해도 서로 기분상하거나 어색해지지 않는 사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대화방식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 친구들과의 관계가 저에게는 더 소중해요. 보통이라면 오글거려서 잘 하지 않을 (그러나 충고, 조언보다 진짜 필요한) 말들을 서로에게 해주면서 심리적인 지지를 해주는 관계는... 제가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갖기 힘든 친구 관계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이 프로젝트가 종료되었어요. 대신 매달 한번씩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있어요. 매일 카톡을 나누는 친구들도 있고, 네이버 밴드에서 글을 올리면서 근황을 나누는 친구들도 있어요. 이 프로젝트에서 느낀 점들, 우울증에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느낀 부분들은 내년에 좀더 구체적으로 써보려고 해요. 아무튼, 저에게는 정말 인생 최고의 경험이었어요.   


 제가 듣기로는 비자립 청년 마음치유 프로젝트는 내년에도 열릴 수 있다고 해요. 제가 이 프로젝트에 신청했던 건 올해 7월쯤이었던 것 같아요. 공고는 공감인 홈페이지에 올라왔고요. 서울 거주자가 아니어도 되고, 참여하신 분들 중 한분은 청주에서 매주 올라오시기도 했어요. 혹시 비자립 상황에 있는 청년분들이 계시다면 메모해두셨다가 내년에 이 프로젝트가 열리면 꼭 참여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어요.



9. 마음기술 훈련 (6주)


 이건 자해와 명상에 관한 다른 글에서 어느정도 소개해드려서 패스할게요. 마음기술 훈련 수업을 들었던 곳은 서울심리지원 동북센터였고, 동북센터 홈페이지에 가시면 교육 신청을 할 수 있습니다. 수업료는 무료였어요. 이 마음챙김 명상 프로그램도 정말 좋아서 강추합니다.





 이렇게 2019년을 정리해봤어요. 혹시 한해를 헛되이 보낸 것처럼 느껴지신다면 2019년에 했던 일들, 참여했던 프로그램들, 했던 게임들, 봤던 영화나 드라마들... 무엇이든 한번 정리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보냈더라도, 하루종일 게임을 하면서 보냈더라도 우리 모두 잘 버텼고 잘 살았어요. 2019년 고생 많으셨어요. 2020년에는 뭔가 새로운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 또 기운 내서 같이 살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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