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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Jun 21. 2020

나를 들여다봐주는 사람...


구찬성, 나를 들여다봐주고 돌봐주고 지켜줘서 고마워.



 뒤늦게 푹 빠져버린 드라마, <호텔 델루나>.



'나를 들여다봐준다'는 말이 이렇게 와닿는건 처음이다. 공허한 카톡들... 내가 대놓고 힘들다는 말을 해도, 지나가듯 아프다는 말을 흘려도 거기에 대해선 아무 말이 없다. 나는 그저 남의 우울증 이야기, 남이 자기 친구한테 우울증 상담해준 이야기같은 것들을 가만히 들어주기만 한다.


 한참 자기 이야기를 하고는 대화의 끝에 이런 질문을 덧붙인다. "넌 요새 어떻게 지내?" 난 아까 말했는데. 힘들다고, 아프다고. 넌 정말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긴 한걸까.


 마음에 선이 그어진다. 얼음덩어리 속에 갇혀있는 듯한 지독한 외로움. 그냥 잘 지낸다고 하고 대화를 마무리지었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하는건 너무 어렵다. 징징대는 것에 질려서 날 떠나버릴까봐 두렵고, 나도 감당하기 힘든 바위를 갑자기 남의 머리 위에 떨어뜨리는 일이 될까봐 망설여진다.


 그래서 1000번쯤 힘들고나서야 겨우 한번 입 밖으로 내놓는다. 그나마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두려워서 웃으면서 말한다. 나 힘들다고.


 상대방이 실의 끝을 쥐고 잡아당겼다면 울고 있는 진짜 내가 뭉텅 끌려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내가 웃고 있으니까 장난인줄 아는건지... 아니면 내일도 출근해야 하니까 힘빼고 싶지 않은건지...


 사실 별일 아닐수도 있다. 내 손 잡아주고 울지 말라고 손수건 건네주는 사람이 있으면 금방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인생은 원래 힘든거고 난 씩씩해질 준비가 되어있으니까. 하지만 나를 들여다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뉴스에 가끔 '자살하기 전에 보내는 신호'같은 기사가 나온다. 갑자기 고마웠다는 전화를 한다거나 신변정리를 하는 것 등. 하지만 그런걸 볼 때마다 개소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때 알아본다고 막을 수 있을까. 벼랑 끝에 서기까지 무수히 많은 발걸음이 있었다. 웃고있을 때는 잘 사는 줄 알아서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았다. 만번쯤 상처받고 만번쯤 외로웠다. 진짜 나를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마음속에 하나둘 선이 그어지고 완전히 혼자 남겨졌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남은 한걸음을 떼려는데... 그제서야 자살신호라면서 알아봐준다고? 자살을 막고 우울증을 치료시킨답시고 병원에 입원시키고 약을 먹이면 정말 다 해결되는 걸까.



 그냥 웃고 다닐 때, 괜찮다고 말할 때 들여다봐줘. 사무실 책상 위의 화분을 봐주는 것처럼. 마른 나뭇잎이 없나 들여다봐주는거 잠깐이면 돼. 난 대답할 수 있는 식물이니까 요즘 힘든거 있냐고 물어봐주면 어디가 아픈지 말해줄 수도 있어.


 며칠에 한번이라도 좋으니까 가끔 생각날 때 물 주고 햇빛 잘 드는 창가에 놓아주면 돼. 난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아. 내 상처를 들여다봐주는 눈길에, 내 아픈 마음을 만져주는 말 한 마디에 녹아서 내 모든걸 다 주고 싶어하니까.


 제발.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들여다봐주는 척이라도 하는 가짜들에게 알면서도 속아주는. 그 마음을 알 것 같다. 결국 내 곁에도 약장수, 사이비 종교 전도자, 호구잡으려는 사기꾼만 남게 될까.


 내년에는 적극적으로 이상형을 찾으러 다녀야겠다. 다른거 아아아무것도 필요없고, 나를 들여다봐주는 사람이면 돼.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위로해줄 사람이랄까. 혹시 너 주변에 이런 남자 없어?소개시켜 줘!

 

 ...라고 말하면 친구한테 등짝 맞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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