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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Apr 21. 2023

도주할 자유

혼자서는 못하는 일

자살 외에는 답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때, 내가 가장 원했던건 도주할 수 있는 자유였다. 나는 나를 가두고 있는 환경, 나의 정체성이라고 하는 것들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나는 퇴적층 속의 화석처럼 내가 살아온 경험들과 나를 둘러싼 조건들에 짓눌려있었다. 남들에게는 자의식 과잉으로 보일수도 있고, 그냥 벗어나면 되는건데 왜 못 나오는건지 이해가 안될수도 있다.


하지만 밖에서는 잘 보이는 것들도 굴 안에 갇혀있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갇힌지 너무 오래되어서 빠져나오려고 시도할 힘도 없었다. 그게 나의 우울증이었다. 


때로 우리는 많은걸 가진 것 같은 사람들이 왜 떠나게 되는지 의문을 갖는다. 거기서 벗어나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데 왜...?그런데 벗어날 수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유일한 해답을 죽음에서 찾는 것일수도 있다. 내 경우에는 그랬다.


나는 내 삶을 가장 크게 누르고 있는, 심지어 이제는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아버지가 힘겹다. 아버지의 비뚤어진 가치관으로 세상과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이 질식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현실과 내 안의 아버지를 버릴 수가 없다. 잘못된 방식이지만 그게 진짜 자식을 위한 일이라고 진심으로 믿어서 한 일이니까. 그리고  안에 있는 아버지는... 어디서부터 아버지의 생각이고 어디까지가 진짜 내 생각인지 알 수가 없어서 어려울 때가 많다.


나는 내가 나온 학교가 버겁지만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 학교 나와서 왜 이런 일을 하냐는 질문을 수십번도 더 들었다. 학교와 직업에 등급이 매겨져 있어서 격차가 벌어지면 얼굴을 들고 살 수가 없나보다. 학교는 곧 내 수치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 역시 바꿀수가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우리는 정해진 길을 따라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들, 우리가 성취한 것들이 징검다리를 놓고, 우리는 그저 돌 위를 걸어간다. 칭찬도, 찬사도, 사랑도 우리를 구속하는 돌이다. 그 길에서 벗어나는건 실패가 되고 낙오가 되고 주위 사람들의 실망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살 방법을 모르는게 아닐까. 돌에서 내려올 방법은 죽음밖에 없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다.


어느 스터디에서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을 읽었는데 그때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를 숨막히게 하는 것들과 거기서 도주할 수 있는 방법같은 것들.


너무 어려운 책이었는데 내가 기억하는건 혼자서는 도주할 수 없다는 부분이다. 나 혼자 발버둥쳐봤자 소용이 없다. 우리는 손에 손잡고 같이 도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이 약 10명 정도라고 하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사실상 그들이 내가 생각하는 '세상'의 거의 전부다. 거기서 우리가 서로 약속을 한다. 당분간 지금과 다른 사람으로 살아볼건데 서로 웃지 말고 무조건 지지해주자고.


그러면 나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음치, 몸치라 남들 앞에서 노래부르는 거, 춤추는게 초등학교 때부터 컴플렉스고 아주 깊은 수치심을 이루고 있다) 모르는건 당당하게 모른다고 하고... 엄청 당당하고 밝고 재밌게 살아볼 것 같다. 이름도 바꿔볼까? 화장도 엄청 다르게 해볼까? 옷도 좀 야하게 입어볼까? 뭘 해도 내 '세상'에서 인정해주니까 난 진짜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


오늘부터 난 소심한 누구, 찌질한 누구, 인싸 누구, 아재개그하는 누구, 잊혀진 누구... 이렇게 성격, 포지션도 바꿀 수 있고, 입고싶지만 튈까봐 못입었던 옷도 입을 수 있다. 바보같은 모습을 보일수도 있고 잘난척도 할 수 있다. 우리 사이에 학벌, 전공이 없는걸로 하면 우리는 거기서 자유로워져서 아무거나 하고싶은걸 할 수 있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이니까 혼자서는 할 수 없다. 사회를 다 바꿀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손잡고 같이 변화할 몇명은 필요하다. 그러면 힘이 생겨서 우리는 이 깊고 단단한 지층을 뚫고 나올 수 있다. 그 속에서 고통받다가 죽는 대신에 도주를 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 변화도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했다. 변화된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 받아들여주는 사람들, 같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과 손을 잡을 때 나는 중력을 무시하고 떠오를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자살 강국이다. 그만큼 우리를 옭아매는 지층이 두텁고 깊다. 이제는 숨쉴 틈이 좀 필요하다. 사회가 당장 변할 수 없다면, 우리라도 연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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