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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의 힘

잘할 필요가 없었다

by 오렌지나무


우리는 보통 꾸역꾸역 뭔가 해나가는 것의 값어치를 잘 모른다. 나도 원래 안믿었고 인생은 뭔가 완벽하고 뭐든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어느정도는 그런 습관이 남아있다.


그래서 비록 내 기준이지만 '중간 수준'의 무언가, '낮은 수준'의 무언가를 내놓을 수가 없다. 그런 결과물을 남에게 보일 때 수치스럽고 괴롭다. 마치 그 결과물이 나 자신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아무 말도 안했는데 내 머릿속에선 '오렌지나무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이네'라는 상대의 평가가 울려퍼지는 것 같다. 내 머릿속에는 자존감을 깎는 그런 목소리가 항상 대기하고 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지 못하면, 결과물이 안좋으면, 해도 안될 것 같으면 아예 시작조차 안하려고 했던 경우가 많다. 낮은 단계에서부터 꾸역꾸역 뭔가 해나가는 대신에 나는 아무것도 안하는걸 선택했다.


다이어트 중인데 오늘 어쩔 수 없이 동기들과 아이스 초코와 케익을 먹어버렸어, 오늘 다이어트는 망쳤네, 저녁은 많이 먹고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하자... 라거나. 영어 단어 매일 100개씩 외우기 계획을 세웠는데 오늘 3개밖에 못 외웠네, 오늘은 그만두고 내일부터 다시 하자... 라거나.


그렇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모든 것을 '완벽하게 엄청 잘 해낸 날'은 없었던 것 같다. 우울증 때문도 있겠지만 나 자신도, 인생도 원래 완벽한게 아니라는걸, 일상은 원래 적당히 구질구질하고 찌질한 거라는걸 몰랐던게 아닐까.


직장에서, 인간관계에서 대충대충 해도 우리가 그만두지만 않으면 시간은 흐르고 뭔가가 쌓인다. 경력도, 노하우도. 하급, 중급의 결과물들도 어찌어찌 계속 하다보면 어느순간 나아지고 성공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우울증 기간동안 난 정말 하루하루 바보같이, 아무것도 못하면서 실패만 반복하고 살았던 것 같지만... 그래도 죽지않고 꾸역꾸역 살았다. 그랬더니 그 삶이 책이 되고, 지금 내가 살아가는 바탕이 되었다.


지하철을 타고 한 시간 내내 울면서도, 우리 학교에는 왜 뛰어내릴만한 곳이 없는지 한탄하면서도, 죽기 위해 차가 오는지 확인도 안하고 길을 건너면서도, 교수들에게 한심하다는 소리를 듣고 C로 가득한 성적표를 받으면서도 꾸역꾸역 대학원을 다녔다. 휴학을 거듭해 졸업도 5년만에 했다. 그랬던게 결국 석사 학위로 돌아오고 빈 경력에 대한 변명도 되고 이번에 취직할 때도 도움이 됐다.


난 아직 완벽주의에서는 벗어나지 못했다. 낮은 수준의 결과물을 내어놓고 '이게 나야!'라고 당당하게 말할 만큼 자존감이 높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꾸역꾸역의 힘은 알고, 믿는다. 스스로에게 꾸역꾸역 어떻게든 살다보면 뭐라도 될 거라고 자주 이야기해준다. 뭘 하든, 뭘 안하든 그냥 시간이 지나다보면 뭔가 쌓일 거라고. 그리고 나는 뭔가가 되어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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