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직업이 꽤 많다

내가 생각도 못한 직업들

by 오렌지나무


세상엔 직업이 꽤 많다.


이건 내가 마을에 처음 들어와서 놀랐던 부분이다. 예전엔 회사원, 자영업, 공무원, 전문직, 알바 개념의 일들 정도만 있는 줄 알았는데 마을에도 다양한 직업들이 있었다. 중간지원조직, 비영리단체 활동가, 구청같은 공공기관의 일자리 등등.


두꺼운 책의 페이지 틈새마다 일자리들이 한둘씩 끼워져있는 느낌이었다. 펼쳐보기 전에는 그런 것들이 있는 줄 전혀 몰랐다.


그때는 시험을 준비할 때고, 내 나이에 무경력, 무스펙으로 취직할 수 있는 곳이 없을 거라고만 믿고있던 때였다. 나이라는 코너에 몰린 내가 도전할 수 있는건 공무원, 전문직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을에서 활동하다보니 비록 계약직일지라도 사람이 먹고 살 만한 직업들이 꽤 많았다. 특정한 시기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에게만 열리는 기회들도 있었다. 알음알음 구해지는 자리들도 있었다. 굶어죽을걸 걱정했던 나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물론 임금도 낮고 안정적이지 않기에 사람들이 자주 바뀌는 계약직 자리들이 많긴 했다. 그렇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는 그쪽도 나쁘진 않았다. 오랜 우울증 끝이고 여러 면에서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정규직과 단단한 조직은 부담스러웠다.


비정규직, 느슨한 조직, 활동과 근무 사이 정도의 일, 계약기간이 끝나면 주어지는 방학(퇴직금을 피하기 위한 1~2월의 무업상태)... 이것도 나름의 장점은 있다. 따박따박 할말 할 수 있고, 동료와 억지로 친해지지 않아도 되고, 할 일만 딱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물론 이것도 직장 나름이겠지만.


그런걸 알게 됐을 때 마음이 좀 편해졌다. 내가 원하는 일,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먹고 사는게 가능할 것 같았다. 정말 한번도 꿈꿔보지 못한 삶이었다. 나는 내가 준비하던 시험에 합격하는 것 외에는 길이 없다고 믿었는데, 길은 많았다. 그것도 훨씬 재미있는 길들이...


그리고 나는 그런 길들을 개척해왔다. 재미있고 쉬운걸 하다가 재미있고 어려운 일로 넘어왔다. 여전히 계약직이고 불안정하지만 독립된 위치에서, 내 능력을 살려서 일하고 있다. 3년 전의 나, 10년 전의 나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앞으로의 인생은 또 어떻게 될까.


길을 잃었다. 그런데 잃은 곳에도 길은 있었고 본 적 없는 아름다운 꽃들도 있었다. 정해진 트랙을 그저 걸어가야 하는 삶에서 벗어나 내가 내 길을 만들면서 걸어가고 있다.


지금 길을 잃은 것 같다면, 어딘가에 꼼짝없이 갇힌 것 같다면, 혹시 주위에 다른 길도 있을 수 있다는걸 조심스럽게 이야기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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