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에서 말했다. 우울증이라고.

인식의 변화

by 오렌지나무


세상이 많이 변하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십여년 전만 해도 면접에서 우울증 이야기를 한다는건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지금도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우연히 내가 지원한 곳들이 온정적인 곳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전 직장, 그리고 현 직장의 면접에서 모두 우울증 이야기를 했다. 하고 싶어서 얘기한건 아니다. 나는 보통은 우울증을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는 편이지만, 취업 면접에서는 그러면 안된다는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내 경력단절은 적당히 둘러댈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보니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에 비는 기간이 5년씩은 되니까. 서류로 증명할 수 없는 어설픈 핑계를 대느니 정직한게 낫다고 생각했다.


항상 망했다는 생각을 갖고 떨면서 이야기했다. 우울증이 있었던 사람을 뽑아줄까? 당당하고 싶었지만 취업 앞에선 내가 을의 입장이다보니 그게 어려웠다. 어쩌면 우울증을 이야기한 것 자체가 당당했던 것인지도 모르지만.


대신 우울증이 어떻게 나았는지, 그 계기로 마을 공동체에서 어떻게 활동해왔고 지금은 괜찮다는 것도 어필하긴 했다. 우울증 이후의 공동체 활동 경력들이 내가 괜찮다는 증명이 되어주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우리 아빠도 이해하지 못하는 우울증 경험을 면접관들이 이해해주고 나를 뽑아준게 진심으로 고맙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사회로 돌아올 수 있게 해준 것에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


그리고 우울증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조금이나마 바뀌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으로, 인간관계나 업무에서 사고를 치기 쉬운 사람으로 보는게 아니라 잠시 아팠다가 회복된 사람으로 보아주는 것 같았다.


지금 난 3년차 직장인이고 정상적으로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우울증은 아직 재발하지 않고 있다. 아마 우울증이 있더라도 약으로 혹은 마음으로 조절하면서 별 문제없이 일하고 있는 직장인분들도 많을 것이다.


우울증이 꼭 대인관계나 업무에 지장을 가져오는 병인건 아니다. 관리도 가능하고, 아프다가도 또 나을 수도 있다. 치료만 잘 받고 있다면 별 문제가 없다.


편견을 내려놓고 우울증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나처럼 바닥에 곤두박질쳤다가도 제2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이들에게 주어지길 희망한다.


그리고 우울증을 이겨내고 면접장에 온 사람, 정신과에 다니면서 우울증을 관리하는 사람은 의지력 하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시시각각 목숨을 위협받는, 우울증이라는 치열한 서바이벌 게임의 생존자들이니까. 선입견이 없을수는 없겠지만, 이런 점도 고려해주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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