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으로 인한 오랜 무업기간에 있었던 사람이 취직을 하려면, 눈을 낮춰야 한다고 많이들 이야기한다.예전에 잘나갔던 기억들은 버리고 하찮아 보이는 일부터 시작하라고.혹은 적성이 뭐든지 일단 '기술'을 배우라고.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우리에게가장 중요한건 오늘 하고싶은 일을 찾는거다. 하고싶은 일을 해야 살고싶은 생각이 날 테니까. 일이 하찮고 어쩌고는 우리의 기준이 될 수 없다. 그건 오늘도, 내일도, 10년 후에도 당연히 살아있을 사람들의 기준일 뿐이다.
나는 처음부터 하고싶은 일을 찾았다. 처음 일자리를 찾을 때 내가 원한건 마을에서 사람들과 뭔가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 일에서 보람을 느끼는 것, (금액이 적더라도)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것, (계약직이라도) 매일 어딘가로 출근하고 하면서 일상이 유지되는 것,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 등이었다. 그런 일을 하고 싶었고, 다행히 그런 일자리를 찾았다.
누군가가 본다면 나는 취업에서 과거의 영광을 잊고 엄청 눈을 낮춰 성공한 우수 사례일지 모르겠지만... 난 내 기준에서 내 직업이 최고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가 하고싶은걸 할 수 있게 해주는 일자리니까.
우울증이 나아지면서 내 안에서 '기준'이라는게 좀 변했다. 예전엔 남들이 정하는 기준이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나를 살고싶어지게 만드는 것들이 중심에 있다. 아무리 좋은 거라도 내가 힘들고 피곤하면 나에게는 나쁜 일이다.
돈을 많이 줘도 내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방향과 다른 일은 싫다. 뭔가 공동체와, 공익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일에서 내가 보람을 느끼고 내 능력도 충분히 쓸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 경쟁이 치열해서 숨가쁘게 만드는 일은 아주 싫다. 나를 살기 싫어지게 만드니까. 각자 자기의 속도로 나아갈 수 있는 일이 좋다.
첫 직장도 그랬고, 지금 직장은 더 그렇다. 이 기준에 맞기 때문에 행복하게 다니고 있고 주 7일 출근해도 우울하지 않다.
낮은 데서부터 시작해라, 과거의 네가 아니라 현재의 (가진거 없는) 너에서 출발해라, (적성과 관계없이) 기술을 배워라, 뭘 해라...
이런 말들은 무례하고, 듣는 사람의 자존감을 꺾는다. 우울증에서 빠져나온 사람들, 우울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기준은 자기 자신이라야 한다. 우울증에 안 걸리고 살고 싶어지게 만드는 것들로 삶을 채워야 한다.
그게 뭔지는 자기만 안다. 우울증의 고통을 겪으면서 우리가 찾아야 하는게 바로 그거다. 내 삶에서 치워버려야 하는 것들이 뭔지, 내 삶에 심어야 하는 것들이 뭔지. 뭐가 날 아프게 하는지만 잘 관찰해도 반은 성공한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