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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y 04. 2023

학원, 반으로 줄이면 괜찮을까

청소년 자살 이야기

청소년들의 자살 문제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주위에서 아이들이 죽자 학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괜찮은지 물어보고 학원도 반으로 줄이고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사를 보면서 불편했던 점은 아이들이 단순한 학업 스트레스로 죽는다고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청소년들이 정말 학원 다니는게 힘들어서 죽는걸까? 국영수가 안외워져서 죽는걸까?


난 아이들이 죽는 이유 중에 '고립감'이 크다고 생각한다. 겉으로야 부모도 있고 친구도 있고 학교도 다니지만 마음으로는 고립되어있는 아이들이 많다. 한마디로 자기를 받쳐줄 안전망(사람)이 없다고 느껴지는거다.


부모는 내가 공부를 못하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사람인 것 같다. 친구들은 내가 못생기거나 재미가 없거나 흐름을 쫓아가지 못하면 나를 버릴 사람들인 것 같다. 사회는 내가 좋은 대학을 가지 못하면 나를 쓰레기 취급할 곳인 것 같다. 나를 이해해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 사회가 없다. 여기서는 누구든 고립되고 외로울 수밖에 없다.


물론 부모들은 언제나 1순위는 자식이지 공부가 아니다. 그런데 최후의 순간에만 공부보다 자식이 우선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성적이 떨어지면 등을 돌리고 말없이 저녁을 준비하는 모습, 누구는 너보다 잘했다며 자존감 깎이게 야단치는 모습, 그러다 상을 받거나 성적이 오르면 온 집안이 내새끼 내새끼 하면서 칭찬해주고 뭐 사줄까, 뭐 먹을래 물어보는 모습. 때로는 강하게 키운다며 자식의 장점, 좋은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일부러 더 몰아대는 모습.


일상의 단편적인, 아주 사소한 일들인데도 아이들은 이런걸 보고 부모는 자신이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게 된다. 남의 부모에게 뭐라할 생각은 없다. 나는 내 부모님이 그렇게 했기에 30대 중반까지도 아빠가 원하는 길을 가지 못하면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빠의 인생을 참 열심히 살아줬다. 내가 이 전공을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빠가 가장 좋아하니까 내가 해준다는 마음으로 전공을 선택했다. 스카이? 아빠가 내 자식의 학교는 그 정도 급이라고 하니까 거기 갈 때까지 책을 읽을 수 없는 정신으로 5수를 했다. 아빠가 원하는 결정적인 것, 그 직업만은 못 가져다줬지만 그건 나의 무의식적인, 유일한 저항이었던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기 위한.


아빠한테 뭔가 상을 갖다주고 좋은 성적과 학벌을 갖다주고... 나는 성과를 배달해주는 라이더였다. 그러면 고객이 맛있게 먹고 행복해하고 나를 인정해주고 칭찬해주는게 너무 좋았다. 내가 아빠한테 받은 사랑의 방식이 그랬다. 어릴 때, 세상에서 자식을 온전하게 사랑해줄 사람은 부모밖에 없으니까 나는 그 사랑에 매달려 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아빠가 진짜 나를 사랑한다는걸 믿게 된 건 내가 크게 실패한 후였다. 아빠는 나를 비난하지 않기 위해 최대한 애쓰는 모습을 보여줬고, 본인이 평생 바랐던 그 시험에 합격해도 별거 없다고 자기합리화했고 나에게도 믿게 만들려고 노력했다. 내가 그거보다 한참 못한 직업을 가졌을 때도 응원해주려고 애썼고 감정상 힘들 땐 차라리 나와 마주치는걸 피했다. 나에게 상처를 덜 주려고.


아빠가 나를 성과에 상관없이 사랑한다는걸 처음 알게된 건 시험에 실패한지 3년쯤 되었나 할 때였는데... 무슨 이야기 끝엔가 아빠가 거의 울듯, 눈물이 고인채로 목이 잠겨서 울컥했다. "니가 나한테 어떤 자식인데..."


나는 아빠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빠는 우는걸 약하다고 싫어해서 내가 울어도 야단치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아빠가 울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빠가 그 직업을 가져올 도구로서가 아니라 그냥 자식인 나를 사랑한다는걸 깨달았다.


평소에 아빠가 열심히 챙기는게 내가 머리를 감고난 후의 머리카락 수다. 머리가 많이 빠지면 걱정하고 덜 빠지면 기뻐한다. 내가 스트레스 안받고 괜찮다는 증거라고 좋아한다. 그리고 내 얼굴도 매일 살핀다. 가끔씩 엄마한테 그런다. "쟤 얼굴 엄청 좋아졌지?" 그러면 내가 우울증일 때보다 엄청 얼굴이 편하고 즐거워졌다고 두분이 같이 기뻐한다. 나는 이럴 때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언젠가 아빠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자식이지만 참 대단하다고. 남들같으면 폐인됐을 일인데 잘 이겨내고 이렇게 맞는 직업까지 찾고 잘 산다고. 나도 저렇게는 못한다고.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다고 했다. 폐인 안되고 알아서 잘 헤쳐나가줘서. 그거 하나는 진짜 고맙다고.


이 말들, 행동들 이후로 아빠와 어떤 문제로 어떻게 싸우고 어떤 막말(아빠는 화나면 막말을 한다)을 들어도 나는 아빠의 진심을 알기 때문에 자존감 깎이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다. 그리고 아빠는 내가 당당하고 떳떳한 모습을 가장 좋아한다.


청소년들 자살 예방... 나는 단 한가지면 된다고 생각한다. 최후의 순간에 나올 진심을 평소에 보여주는거. 학원? 100개를 보내도 상관없다.


나는 니가 공부 못하든 장애가 있든 뭘 하든 너는 내 새끼고 널 사랑한다, 그런데 내가 널 이런 세상에 낳은게 미안한데 이 사회가 경쟁사회라 니가 나중에 편하게 살려면 어느정도 공부는 해야될 것 같다, 학원 보내는 내 마음도 너무 힘들다, 너 피곤한 몸으로 다녀와서 야식 먹는거 보면 속상하다 등등... 이런 말을 하고 같이 상의한다면 학원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심이면 충분하다. 최소한 자살예방에서는.


그리고 당사자인 아이들에게도 이야기하고 싶다. 삶은 부모 때문에 사는게 아니라 내가 치킨 먹고 싶어서 사는 거라고. 삶은 내가 즐거운 일들을 하기 위한 도구이지 뭔가 위대한 업적을 그리기 위한 도화지가 아니라고. 아무거나 하면서 삶을 잘 사용해보라고.


부모님이 아니라도 너희들을 있는 그대로 예뻐하고 존재 자체로 아끼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른들이 많다고. 너희들이 그걸 느낄 수 있는, 너희들이 외롭다고 느낄 때 잡아줄 수 있는 공동체를 우리 사회에서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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