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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y 03. 2023

맘먹고 정신과에 갔는데...

첫 정신과 방문기

정말 이상한 일이다. 감기가 심하면 병원에 가는데, 우울증이 심할 땐 병원에 가기가 어렵다. 나는 엄청 간절하게 가고 싶었는데 못갔었다. 하루는 이대로는 자살할 것 같아서 병원 앞까지 갔는데 결국 그 문턱을 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마지막으로 병원에 갔을 땐 우울증이 어느정도 나은 상태였다. 그래도 병원에 가기 위해선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일단 병원비 검색. 돈이 없어서 3만원도 큰 돈일 때였다. 6만원이면 두달간 조금씩 부모님 방의 서랍에서 가져와서 모아야 했다. 그러니 병원비가 얼마 드는지가 큰 걱정이었다. 블로그 후기를 보니 처음에만 많이 든다는데 그 '많이'가 얼마인지 열심히 조사했다. (근데 병원마다 천차만별이었고 검사를 어떤걸 하냐에 달린 듯했다.)


그리고 의사가 어떤 사람일지, 나를 어떻게 대할지, 내 얘기를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불안했다. 퍼내도 퍼내도 구정물이 솟아나는 내 인생, 내 감정을 어떻게 평가할지, 시궁창 속의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혹시 나를 경멸하거나 보이는 대로 병신 취급하면 얼마나 아플지, 내가 견딜 수 있을지... 하는 걱정들을 했다. 막연하지만 강한 불안감이었다. 나는 피부가 벗겨진 것처럼 너무 너무 취약한 상태였으니까.


그래서 주변 병원들을 다 검색하고 병원 이름과 홈페이지 등으로 병원 분위기를 추측해보려고 했다. 어디는 카톡으로 검사안내 하는걸 보니 공장식이고 검사 많이 할 것 같은 곳, 어디는 이름이 구식인걸 보니 할아버지 의사가 있을 것 같은 곳, 또 어디는...


그렇게 며칠을 찾고 기록해두었다가 그냥 가장 자주 마주치던 곳에 갔는데 거긴 들어갈 수 없었다. 예약하지 않으면 당일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신과가 그렇다. 당일 진료는 안되고 예약이 필수다. 하지만 환자는 당장 아픈걸... 이렇게 결심하기까지도 정말 힘들었는데 내일이면 아침에 일어날 힘이 또 생기리란 보장이 없는데... 정말 많이 실망한 채 나와야 했다.


미리 찾아둔 곳 중에 다른 곳에 어렵게 전화를 했다. 오전 9시 반까지만 오면 당일 진료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런데 간호사의 목소리가 따뜻하고 온정적이었다. 통화로 내가 정신이 이상하다는거, 그래서 병원이 필요하다는걸 고백하는게 너무 힘들었는데 간호사의 상냥한, 그리고 걱정스러운듯 들리는 응대가 참 고마웠다.


그래서 시간 안에 그곳에 갔고 처음으로 정신과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어렵지 않았다. 처음이 가장 어려웠다... 지금은 집에 가는 기분으로 다니고 있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과도 잘 맞고 약도 잘 듣는다.


비용은 처음이면 검사도 하고 해서 아무래도 많이 든다. 검사+약(ADHD, 불안, 강박) 해서 초반엔 7만원 정도, 3~4번째부턴 3주치에 5만원 정도... 내 경우엔 그렇다. ADHD약이 조금 비싼 편같다. 그래도 내가 살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하면 전혀 비싸지 않다. 스벅 대신 정신과 간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쨌든, 오늘 핵심적으로 강조하고 싶은건 당일 진료는 거의 안된다는 부분이다. 내가 병원에서 기다리다가 당일 진료 안된다고 거절당하고 돌아가는 사람을 본것만 몇명이다. 숨을 몰아쉬듯 온몸으로 간절해보이는 그 사람들이 어떤 용기를 끌어내서 찾아왔는지 나는 알고있다. 예약을 잡아준다는 간호사의 말에 뒷걸음질 쳐서 돌아가는 그들이 언제 다시 병원으로 오게 될지...


그러니 무조건 전화로 예약하고 가야 된다는걸 기억하자. 너무 너무 어렵고 힘들게 갔는데 헛수고가 되면 안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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