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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렌지나무 May 02. 2023

우울증은 탈모로 온다

탈모, 생리통, 키

내가 우울증을 오랜기간 앓고 얻은건 탈모 증상이다. 미용실에서는 내가 모근이 원래 많은 편이라고 하고, 우울증 이전엔... 그 옛날엔 원래 숱이 많았다. 그런데 우울증 기간동안 머리가 숭덩숭덩 빠지다보니 숱 자체가 많이 줄어들었다.


여자도 유전이 있으면 잘 빠진다고 하는데 우리집은 탈모 유전이 없다. 예전에 유전자 검사를 받았을 때도 탈모 유전자는 없다고 나왔다. 그러니 원인은 스트레스뿐이다.


우울증은 항상 중증인건 아니다. 우울증 기간 중에도 아주 심한 기간이 있고 좀 살만한 기간이 있는데 이 두개가 간격을 두고 번갈아 온다. 심한 기간이 오는건 머리를 감아보면 안다. 머리카락이 한줌씩 빠져나오기 시작하면, 집 사방에 내 머리카락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어둠의 시기가 돌아온 것이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면서 확실히 좋아진 것도 바로 이 탈모 증상이다. 그때처럼 머리카락이 빠지는 일이 없어졌다. 요 몇년간 머리를 감을 때마다 뿌듯하다. 지금 잘 살고있는 것 같아서.


물론 이미 오랜기간에 걸쳐 진행된 탈모는 다 복구는 안된다. 많이 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머리숱이 적다. 가르마 쪽이 비어보이는 것도 어느정도 복구됐지만 여전히 있다. 그래도 요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우울증이 낫고 나서 생리통도 줄었다. 생리전증후군은 거의 없어졌다. 이건 진짜 신기한 일이다. 나는 생리전증후군이 너무 심해서 (아빠랑 싸우고 발작한 날은 어김없이 생리 전날쯤이다) 이것 때문에 충동적으로 자살할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생리통도 심하고 생리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자궁 적출도 생각했었다. (상냥한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을 거의 기절시킬 뻔했다...)


그런데 우울증 다 나았다고 좋아하던 몇달 후쯤, 생리기간이 그냥 휙휙 지나가버린다는걸 느끼게 됐다. 걸렀다게 아니라 매달 제 날짜에 하긴 하는데 내가 생리를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있었다. 왜냐면... 생리전증후군이 사라져서 생리기간이 다가온다는걸 잘 모르게 됐고, 생리 때도 한 이틀만 약간 아프고 (그나마도 약 먹으면 안아프다) 넘어갔기 때문이다.


난 생리전증후군은 우울증과 별개인 줄 알았는데 연동되는 거였나보다. 한달에 2주 정도는 생리전증후군과 생리통으로 고통받고 삭제되는 느낌이었는데 그게 사라지니 인생이 진짜 많이 편해졌다. 그 뒤로는 내 몸을 소중하게 대해주고 있다. 진짜 고맙다.


마지막으로는 키가 컸다. 30대 중반에...? (점점 약장수 느낌이 나는데...) 한 1~2cm 정도. 컸다기 보단 찾아낸 키 아닐까. 우울할 땐 움츠러들고 나도 모르게 구부리고 다니다가 이제 좀 당당하고 자신있게 다니니까 숨은 키가 나온 것 같다.


대학교 때 입었던 원피스들이 좀 짧아지고 무릎 가까이 오던 패딩이나 코트들도 조금 더 올라와서 입은 느낌이 다르다. (옷이... 빨아서 작아진건 아니겠죠...) 가족들도 내가 좀더 큰거 같다고 한다. 그래서 재봤더니 1.몇센치 정도 더 커졌다. 그거라도 안큰 거보단 낫지!


우울증이 나가고 나니까 몸으로 느껴졌다. 탈모 없음, 생리통 없음, 키 커짐으로. 정신의 고통이 몸에도 심한 고문이었나보다. 그래도 심각하게 망가지지 않고 버텨준 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내 몸의 못생긴 부분들도 이젠 미워하지 않고 고마워한다. 두꺼운 다리도 잘 버텨줘서 고맙고, 앞으로 숙이면 덩어리채 늘어지는 뱃살도 고맙다. 내가 살고싶은 마음이 들도록 열심히 잘 먹어줘서 생긴 거니까.


다만 중성지방이 300이 넘어서 충격받고 뱃살과는 지금 이별 진행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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