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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다수결은 항상 옳을까?

헌법 제72조, 우리나라에도 있을 수 있는 일

by 오렌지나무


2016. 6. 24.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결과로는 잔류파가 우세했지만 개표결과는 탈퇴 51. 89%, 잔류 48.11%로 탈퇴가 앞섰다.


이 국민투표 결과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국민투표의 절차를 규율하는 법은 EU Referendum Act 2011인데, 이 법에 국민투표의 법적 효과에 관한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리스본 조약 제50조 제1항에 따르면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원한다면 유럽연합에서 탈퇴할 권리가 있다. 제50조 제2항은 유럽연합을 탈퇴하려고 하는 국가는 유럽연합 이사회(European Council)에 이를 통지하도록 되어있다. 이번 국민투표 결과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탈퇴가 결정되었더라도 캐머런 총리가 바로 유럽연합 이사회에 탈퇴를 통지해야 할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민투표의 결과는 주권을 가지는 국민들의 의사의 표현이기에 정치적인 무게는 지게 될 것이다.



브렉시트가 결정된 후 세계 경제도 타격을 받았지만 영국에도 현실적인 문제가 닥쳤다. 파운드화의 가치는 10%이상 폭락했고 당장 금융업계에서만 2020년까지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브렉시트를 통해 달성하려는 이민자 및 난민 문제의 해결, 영국의 완전한 주권 회복 등의 목적이 있었음에도 이러한 현실 앞에 탈퇴 지지자들조차 주춤하는 모습이다. 탈퇴파에 속하는 다니엘 해넌 의원이 BBC 뉴스나이트에 출연해 브렉시트가 반드시 노동의 자유 이동을 끝내는 것은 아니라는, 노동의 자유 이동을 막아 이민자 및 난민 문제를 해결하자던 탈퇴파의 주요 주장을 철회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고도 한다.


투표가 마감된 후의 영국 구글의 상위 검색어들이 '유럽연합을 떠나면 어떻게 되나요?'나 '유럽연합이 뭔가요?'와 같은 것들이라는 점도 이번 국민투표가 브렉시트의 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충분한 이해 속에서 이루어진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한다.


출처: Google UK 트렌드에서 캡쳐


어쨌든 브렉시트는 거칠게 말하면, 국민들의 밥그릇을 더해주거나 뺏을만큼 중요한 일이다. 그런 문제에 대해 국민들의 72.2%가 투표했고 결과가 나왔다. 아슬아슬한 차이로 48.11%의 국민들은 원하지 않는 방식대로 흘러가는 나라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브렉시트에 반대했던 조앤 롤링도 '오늘처럼 마법을 원했던 적이 없다'라고 하며 충격을 표시했다.


내가 절대로 원하지 않는 일, 내 일자리에 심각한 위협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라 하더라도 국민투표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찬성하거나 국민에 의해 선출된 국회의원의 다수가 찬성하면 그 일은 현실이 된다. 가중다수결이라고 해서 2/3 이상의 찬성을 요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과반수를 넘기만 하면 된다. 1%의 아슬아슬한 차이라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다수결의 원칙이다.


다수결의 원칙은 전체를 위해 어떤 결정을 할 권한이 있는 자가 다수일 때 사용되는 방법이다. 왕정국가에서 왕은 혼자 왕국 전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왕국에서는 다수결의 원칙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소수의 귀족들이 결정권을 가지는 과두정 국가에서는 결정권을 가진 귀족들의 다수결이 필요하다. 다수결로 결정한다는 것은 곧 권력이 배분되어 있고 그 권력자들은 서로 평등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을 가졌기에 결정할 수 있고, 서로 평등하기 때문에 각자의 견해는 동등한 가치를 가져서 결정을 위해서는 다수의 찬성이 필요한 것이다.


그 권력을 소수의 귀족들에게서 국민 전체에게로 가져온 것이 국민주권의 원리에 기초하는 현대 민주주의 국가이다. 그리고 주권을 가진 국민들은 평등하다. 그런 점에서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결 원칙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국가에 관한 일들에 관해서 주권자인 국민의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안에 따라 국민의 다수결이 적절하지 않은 경우도 있고 국민의 의사를 매번 확인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기도 하다. 그래서 국민이 다수결로 선출한 국회의원들의 다수결로 결정하게 해놓은 것, 그것이 대의민주주의이다. 국회의원 선거에 있어서의 국민들의 의사의 다수와 그렇게 선출된 국회의원들의 의사의 다수라는 이중의 다수결을 통해 국민들이 직접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에 근접하게 국민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국가에 관한 일을 결정하는 다른 기관인 대통령은 단독기관이긴 하지만 대통령 역시 국민들의 다수결에 의해 선출된다. 또한 대통령에게는 필요한 경우 국민투표를 통해 국민들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72조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는 이번 영국의 브렉시트와 같은 사항들을 국민들이 직접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물론 이것은 대통령의 의무는 아니고 국민투표에 붙일지 여부는 대통령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제72조의 국민투표는 일반적으로 과반수의 투표와 과반수의 찬성으로 가결되는 것으로 본다.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처럼 국민들의 과반수의 의사에 의해 국가의 중요정책에 대한 찬반이 결정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제72조의 국민투표가 대통령을 기속하는지 여부, 즉 대통령이 이 국민투표의 결과에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런데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간단한 예를 생각해보면, 국회에서 다수의 의사로 소수의 국민들을 탄압하는 법을 만드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국회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이런 법을 제정하는 것은 가능하다. 다수의 국민들이 소수의 국민들을 탄압하기를 원한다면 그 법을 제정하는데 찬성한 국회의원들은 선거로 심판받지도 않을 것이다. 이와같은 다수결의 부작용을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헌법재판소이다. 헌법재판소에서는 국회가 만든 법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경우 그 법을 위헌으로 선언함으로써 소수의 국민들의 기본권이 다수결에 의해 침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다수결에 따르면 최종적인 결정은 다수의 의사대로 이루어지고 상대적으로 소수인 사람들의 의견은 무시된다는 문제가 있다.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도 잔류에 찬성하는 국민들이 투표자의 48.11%로 상당히 많은 수를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의 의사는 결국 무시되었다.


물론 어떤 사안에 대해 결정을 한다는 것은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나머지의 선택지들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탈퇴냐, 잔류냐 하는 문제처럼 양자택일해야 하는 경우에는 선택되지 못한 의견은 완전히 무시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시된 의견을 가진 국민들도 그 국가 안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인만큼 그들의 의견을 배제하는 것은 결국 선택되지 못한 사람들에게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국가에서 살아야 하는 고통을 가져다주게 되고, 결과적으로 봉합하기 어려운 사회적 갈등을 만들어낸다. 당장 영국에서는 잔류에 찬성하는 10대들이 투표 결과에 강력하게 반발하며 '우리는 무슨 일을 한 거지(What Have We Done)', '우리의 이름으로 하지 마라(Not In My Name)'와 같은 해시태그를 달고 있다. 재투표에 관한 청원도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미 10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서명했다고 한다. 국민투표의 결과 탈퇴가 결정되었지만 절반 가까운 국민들이 반대한 이상 이 문제는 향후 수년 내지는 수십년간 끝나지 않을 것이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결에 의한 결정은 피할 수 없다. 그런데 다수결이 상대적 소수에게 상처를 남기고 사회적 갈등을 불러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대화와 설득에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투표에 의해서, 국회의원들에 의해서, 대통령에 의해서 최종적으로 결정되고 그 핵심적인 수단은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다수결의 원칙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최후의 결단에 이르기까지 충분한 대화와 설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브렉시트 국민투표 후 국민들이 브렉시트가 영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해서 검색한 것, 10대들이 반발하는 것, 일부 탈퇴파가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는 것을 보면 충분한 대화와 설득이 있었는지 의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관한 국민 여론 조사를 앞두고 있을 때 흔히 그렇듯 감정을 자극하는 표어와 정보의 불균형, 충분한 이해와 토론이 이루어지기에 부족한 시간 속에서 결정의 순간을 맞이한 것은 아닌지.


빠른 결정이 필요한 사안이 아니라면 국민 모두가 사안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투표권이 없지만 앞으로 이 사회의 구성원이 될 학생들에게도 학교에서 토론할 수 있는 기회를, 직장이나 지역사회의 여러 공동체들에서도 면대면의 직접적인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추상적인 찬반 토론을 TV에서 듣는 것보다는 직접 상대방을 만나 자신의 입장에 대해 논거를 대고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고, 상대방이 자신을 설득하려고 하는 말을 듣고 이에 대해 반박하려고 하는 그 과정이 훨씬 문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자신의 의견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찬성파와 반대파의 주장과 논거, 외국에서 바라보는 객관적인 관점, 최대한 정확한 예측 등의 정보는 미디어에서도 이미 충분히 제공하고 있지만 이런 정보들을 모으고 적극적으로 알리기 위해 시간과 비용을 투자하는 것은 또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국가를 위해 더 타당한 선택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선택을 지지할 수 있도록 돕고, 어느 쪽이 더 옳다고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이라면 자신의 의견과 반대로 결정되더라도 그 결정에 최대한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도 헌법 제72조의 국민투표가 있기 때문에 중대한 국가의 방향을 국민들이 직접 결정해야 하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다수결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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